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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 Aug 21. 2024

보물상자를 열어보며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

"그 시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라면 스님들과 손편지를 주고받았던 때를 기억한다. 예쁜 편지지를 모으고, 250원짜리 우표를 늘 마련해 두었던 사춘기 소녀 시절."


사랑을 사랑으로 보는길을 보여주는 들이 모인 곳이라 생각는다여기에 담겨진 처럼 난희의 마음에도 -우리 모두는 하나의 고리로 이어져 있기에사랑과 이해와 아름다움이 가득 가득 넘치길 부처님 <>에 <기도한다늘 맑아라네 영혼이 슬프지 않도록... ”


25년 전, 그러니까 열 한 살, 열 두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작은 시집과 함께 받은 엽서에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짧은 편지가 쓰여있었다. 예전에도 이 편지를 좋아했었는지,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흐른 지금까지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보니 의미가 더 깊이 새겨진다. 그저 좋아했던 메시지를 뛰어넘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그래서 나와 주변과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나의 공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따뜻함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읽곤 한다.


어렸을 적에 한 개쯤은 있었을 자신만의 보물상자를 기억하는가. 가장 아꼈던 생일 선물, 일기장, 누군가와 주고받은 편지 등 소중한 무언가로 상자 안을 가득 채우곤 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열어보지 못하게 자물쇠로 잠궈 놓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 잘 숨겨두었을 테고.


나에게도 보물상자가 있다. 그 안에는 단 한 가지 물품으로만 가득 찼는데, 그게 바로 손편지다. 열 한 살, 열 두 살 사춘기 소녀가 출가한 지 2년, 3년도 채 지나지 않은 사미니 스님들께 받은 수십 장의 편지. 그 편지가 나에게는 보물이었던 셈이다.


그 시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라면 스님들과 손편지를 주고받았던 때를 기억한다. 예쁜 편지지를 모으고, 250원짜리 우표를 늘 마련해 두었던 사춘기 소녀. 1주일에 한 번씩 스님들에게 쓰는 편지로 그 당시의 즐거움을 그러모았다. 지금은 편지, 더군다나 우표를 붙여서 우체통에 넣어야만 상대방에게 전해지는 손편지가 옛 추억으로만 남겨져 버렸지만.


스님들에 대한 호기심이 컸던 나는 스님들의 생활, 공부, 일상에 대한 질문을 편지에 모두 쏟아냈다. 그리고 1주일 정도 흘러서 내 손에 쥐어진 답장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아주 친절하고 따뜻하게 적혀져 있었다. 때로는 나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주저리주저리 편지로 써서 남겼던 기억도 있다. 돌아온 답장에는 늘 ‘란희 부처님’, ‘사랑하는 란희야’라는 존중과 애정의 말씀이 늘 담겨 있었다.


나에게는 늘 친구 같았고, 때로는 언니였고, 엄마의 빈자리까지도 채워주었던 분들, 그들이 남긴 편지는 어른이 된 지금 더 와닿는 말씀이다. 모든 편지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스며 있었고, 따뜻함과 존중이 늘 함께였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분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출가자’라고 대답한다. 가장 닮고 싶은 사람, 그와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도 마음속 가장 깊숙한 곳에는 출가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평범하지만은 않은 미래의 모습을 왜 늘 품고 있는 걸까. 오랜 시간동안 의문을 가지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본 적이 있었다. 그 언젠가 과거부터 그 모습을 보며 자랐고, 가장 아름답고 훌륭했던 그들 덕분에 내가 살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어렴풋한 답만 내려놓고 ‘알 수 없음’의 영역으로 밀어놓았다.


한때는 그들을 참 많이도 그리워했었다. 길을 가다가 비구니 스님들과 마주치면 ‘혹시나 예전에 함께 했었던 스님일까?’라는 생각에 한 번씩은 더 눈을 맞추려고 했다. 옛날 휴대폰 번호를 찾아보며 스님들과 연결이 닿기를 애태웠던 적도 있다. ‘스님들 덕분에 제가 이렇게 잘 자라서 신행생활 열심히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라며 고마운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10년, 20년이 지난 세월에 그들을 다시 만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그분들을 마냥 추억하거나 그리워하지만은 않는다. 그들이 떠오를 때마다 나에게 전해준 그것. 그것이 무엇인지를 내 안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이제 막 출가한 그분들의 가장 아름답고 수승했던 마음.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그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되새겨 보는 길일 것이다. 사춘기 소녀에게 전해주신 그분들의 마음을 지금 내 삶에서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요즘이다.�


"그 언젠가 과거부터 그 모습을 보며 자랐고, 가장 아름다웠던 그들 덕분에 내가 살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어렴풋한 답만 내려놓고 ‘알 수 없음’의 영역으로 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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