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친구를 다시 만나면서-
15년 만의 만남, 아주 오랜만이었다. 어색함은커녕, 연락을 끊고 지냈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는 예전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야간자율학습 메이트로, 거의 단짝처럼 지냈던 친구였다. 선생님들도 모두 퇴근한 시간, 친구와 나는 매일 밤 10시까지 남아 공부를 했다. 친구들 3~4명만이 남아 자율학습실을 지키며 쌓은 추억도 많다. 공부도 하고, 간식도 나눠 먹고. 공부가 잘되지 않던 날에는 운동장 한가운데에 누워서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기도 했다. 각자의 꿈을 키워갔고, 서로의 꿈을 지켜주기도 했던 소중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다수의 친구들은 고향에서 멀지 않은 대학으로 진학을 했다. 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내가 선택한 학교는 고향과 아주 동떨어진 곳이었다. 서로의 거리가 멀어짐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연락은 끊어졌다. 대학 생활과 바빴던 사회초년생을 지나오면서, 고등학교 때 추억은 ‘그랬던 친구들이 있었지’ 정도로 묻혀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15년 만에 학창시절 친구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내내 어렸을 때의 시간, 추억, 또 다른 친구들의 이름과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만남은 1시간 정도로 짧았다. 각자가 보낸 15년의 세월을 이야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살아온 시간의 반절 가까이를 건너뛴 대화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떻게 재회할 수 있었을까. ‘언젠가는 만나겠지’라며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그 만남을 기대하거나 기다렸던 적이 있었다고는 할 수 없다. 지내는 환경이 너무나 달라졌고,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안부조차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끔 SNS에 올라오는 소식을 보며, ‘다들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며 잘 지내고 있구나’하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사실, 친구가 먼저 용기를 내어주지 않았더라면 이뤄지지 않았을 만남이었다.
15년이라는 시간을 건너오면서 우리는 각자 다른 경험을 하며 자신의 삶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분명 다른 삶,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왔지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그 어떤 만남보다 더 편안했고, 자연스러웠고, 따뜻했다. 교복 입고 다니던 여고생 시절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마냥 과거에만 머무르지는 않았다. 대화 속에서 ‘지금’의 우리를 서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짧았던 대화를 뒤로하고 멀지 않은 날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을 하며 서울로 올라오던 길.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모든 만남에는 이별이 있다’는 이 말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헤어짐도 자연스러운 것, 아쉬워하지 않아도 되건만. 좋은 인연과의 이별 그리고 멀어짐은 쓰라림으로 얼룩지는 것 같다. 이별은 어떤 특별한 계기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다. 무덤덤하고 그저 그랬던 관계였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애정을 갖고 온 마음을 쏟았던 관계에서는 헤어짐에 ‘쿨’할 수가 없다.
친구와의 이별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래서인지 헤어짐에 대한 저항감은 없었다. 각자의 변화에 적응하는 게 우선이었던 나머지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있었다. 재회의 순간도 이별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웠다. 겉으로 보기에는 친구가 먼저 SNS로 연락을 해준 덕분에, 그리고 내가 고향에 갈 일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만남이 성사된 것 같다. 하지만 어린 시절, 우리를 가로막았던 무언가가 사라졌기 때문에 다시금 ‘만남’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예전에 비해서 관계를 대하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긴 했다. 그러나 좋아하는 인연과의 관계를 붙잡아 두려는 마음, 좋았던 순간에 머무르고 싶어라 하는 마음은 쉽사리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관계의 끝맺음이 오는 '상실감'이 두려워서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오랜 친구와의 재회는 헤어짐이 ‘완전한 끝’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모든 만남에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헤어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와의 멀어짐이 아쉽고 슬프다고 해서 헤어짐의 이유를 유추하며 미련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말도 있지 않나. ‘만나야 할 사람은 꼭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 꼭 만나야 할 사람이라면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겨놓았을 때 재회의 순간도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설령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소중한 관계였다면 그때 그 만남이 남기고 간 여운으로도 삶의 의미가 충분할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