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어?”라는 질문에 대답이 퍼뜩 떠오르지 않았다.
햇볕이 따뜻했던 어느 초봄, 점심시간. 카페 야외 테라스에 앉아 좋아하는 라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어쩌다보니 대화의 흐름은 연애, 결혼 뭐 그런 주제로 이어졌으니 그 맥락에 맞는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너무나 오랫동안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였기에 그럴싸한 답변이 생각나지 않았다.
“음... 키는 나보다 커야 해. 커피와 책도 좋아했으면 좋겠어. 가치관이 맞는 사람이면 더 좋겠지?”
대충 생각나는 대답을 죽 늘어놓고서는 너무 상투적인 답변이 아니냐며 깔깔거리다가 대화를 마쳤다.
시답잖게 끝맺음을 지은 대화였지만, 며칠간 마음속을 맴돈 주제이기도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어했더라.’
만남은 이성 간에만 이뤄지는 건 아닐테니 조금 더 넓혀서 생각을 해보게 됐다.
나는 어떤 사람들과 만남을 가질 때 즐거워했던가. 꼭 좋아하는 감정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이 끌렸던 사람은 있었을 텐데. 무엇을 지닌 사람에게 마음이 이끌렸던가.
한 후배 녀석이 떠올랐다. 독서 모임을 통해서 더 가까워진 후배이다. 첫 모임에서 그는 책에 대한 소감과 함께 자신이 지내 온 시간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홀로 지냈었다고 했다. 갈수록 짙어지는 암흑 같은 시간, 무기력과 무의미함에 뒤엉켜 지낸 시간들. 가장 가까이에 있던 가족들의 걱정은 응답이 없는 메아리나 다름없었다. 이유도 모른 채로 지독하게 혼자였다고 했고, 그래서 어둡고 암울했을 것이다.
그랬던 그가 자기 밖으로, 세상으로 나오게 된 건 갑작스럽게 떠올랐던 한 생각 때문이었다고 했다. 더 이상 이 상태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 아마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시간을 보낸 결과였을 테지. 그렇게 나오게 된 자기 밖 첫 세상은 어느 사찰이었고, 그 인연으로 인해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겉으로는 아주 밝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늘 웃음을 주는 후배였다. 그랬기에 힘들었던 시간을 이야기하던 후배를 태연하게 바라보고는 있었지만 내심 놀라기도 했다. 그가 이곳에서 함께 어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는 이 시간이 그가 가진 아픔을 스스로 치유하는 한 과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은 지금도 여전히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다독이는 시간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 녀석을 볼 때마다 내 안에서는 뭔가 모를 애틋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돌아보니 마음이 이끌렸던 사람은 그 후배 녀석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를 혼자 모시면서 부모님이 떠맡긴 빚을 20년 가까이 갚았다던 한 선배도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상경을 해서 겪었던 고생스러움을 듣게 되었을 땐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매우 외향적이고 늘 에너지가 넘치던 한 선배도 있는데, 첫 만남에서 나는 그와는 결코 가까워질 수 없을 거라고 혼자서 선을 그었더랬다. 그의 외향성이 지나치다시피 할 정도여서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한참 시간이 흘러 우연한 기회에 깊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 자신이 살아 온 이야기, 자신이 겪은 아픔 그리고 지금의 마음가짐. 지나칠 정도로 외향적이었던 그의 모습이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했고, 그의 어린 시절에서 나의 어린 시절이 비춰지기도 했다.
사람 간의 ‘끌림’, 그 끌림은 의도적일 수 없다. 불꽃이 튀는 것처럼 번쩍이는 만남일 수도 없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분명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채로 ‘그냥’ 마음이 끌리는 게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런데 끌림의 과정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사람에게서 나의 모습이 느껴진다거나 나와 닮은 무언가가 서려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경우다.
모두가 힘든 시기를 겪는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마음이 이끌렸던 그들은 힘듦을 하나의 과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힘들었던 시간을 아픔과 상처라고만 여기지 않고,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자양분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유독 그들에게 더 이끌렸던 이유는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마음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들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내 안에서 그들의 마음을 읽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