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이들과 추억을 떠올리며-
“말 나온 김에 다음 달에 같이 가는 거 어때요? 다들 캘린더 확인해 봐요!!”
정말, 느닷없었다. 신림동에서 백순대 볶음(!)을 먹다가 아주 즉흥적으로 잡힌 2박 3일 여행 일정!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 모이자는 약속은 모두가 바빴던 나머지 겨우겨우 2개월 전에 예약했던 것과는 달리, 멀리 지방 여행 약속을 이렇게나 단숨에 잡을 수 있는 건가? 다행히 그 자리에 있던 4명 모두 일정이 비어있었고, 우리는 다시 그곳을 가보기로 했다.
우리의 2박 3일 여행지는 5년 전에 함께 갔었던 팔공산 갓바위와 청도 운문사였다. 특히 다들 운문사를 그리워했는데, 그중 한 명은 도량에 들어선 순간 포근한 누군가의 품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며 그곳에 대한 좋은 기억을 지니고 있었다. 그동안 아주 많은 절에 갔었지만 운문사에서 예불을 모시고 기도했던 시간이 가장 좋았다던 이도 있었다. 이번에도 운문사에 가면 예불 시간에 꼭 동참해야 한다는 약속을 서로가 서로에게 하면서 여행 일정을 기약했다.
동행한 멤버들은 조계사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가까워진 도반들이다. 나의 불법 인연이 시작되었던 곳, 내가 어렸을 때 뛰어놀았던 운문사를 어른이 되어 절에서 만난 친구들에게도 꼭 소개하고 싶었다. 이들이 첫 번째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서울에서 차량으로 5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먼 곳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설렌 마음을 안고 운문사로 향했다.
5년 만에 다시 간 운문사는 여전했다. 여전히 아름다웠고 편안했고 정갈했다. 도반들은 운문사 도량을 찬찬히 참배하고, 개인 기도를 하면서 차분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금요일 근무를 마치고 대구로 내려와서 팔공산 갓바위와 운문사 사리암에도 다녀왔기 때문에 일정이 조금 힘들기도 했다. 그런데도 운문사에서 저녁예불은 물론이거니와 다음날 새벽예불에도 동참했다. 수십 명의 비구니 스님들과 함께 예경을 하면서 누군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마음이 환희심으로 가득 채워졌다고도 했다.
이 공간에 무엇이 깃들어 있었기에 이들을 환희심과 감동으로 물들게 할 수 있었던 걸까.
내게는 이번 여행이 남다르게 기억된 순간이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나눌 때, 그때 느껴진 묘한 감정을 알아차리게 됐기 때문이다.
좋은 건 혼자만 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습관처럼 해왔다. 나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뭔가를 할 때, “좋은 건 함께 해야 더 좋잖아요”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을 냈던 적이 많았다. 인연이 닿는 대로 소개를 하거나 권유를 했던 것이다. 권유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이 시원찮더라도 딱히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내가 개입할 수 없는, 상대방의 인연일 테니까.
각자의 취향과 성향은 다르기 때문에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를 고집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나는 선호하지만, 상대방은 그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은 일을 도모하기란 쉬운 게 아니다. 서로의 마음이 어긋날 수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에게 소중한 존재인 그들도 똑같이 좋아한다는 건 조금 다른 이야기다. 서로의 공감 포인트가 같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는 것 같다. 혹은 감동 포인트가 비슷하다거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전제로 만나는 관계에서만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는 함께 하는 시간을 기꺼이 내지 못할 테니까.
여행하는 2박 3일 내내 우리는 그랬던 것 같다. 비슷한 포인트에서 감동을 하고,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조금 더 많이 살피고 있었다. 이번 여행만 그랬던 건 아니었다. 가끔 절에서 무언가를 할 때, 혹은 절 밖에서 만남을 가질 때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나는 저항하거나 거부하는 마음보다는 가까이 두려고 하거나 애정을 쏟으려는 마음의 비중이 더 큰 편이다. 그래서인지 ‘좋아하는 일’과 ‘소중한 사람’, 이 두 가지의 조화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상당한 것 같다. 그 일이 왠지 더 의미 있는 것 같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해주는 그들이 왠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운문사에 다시 같이 와 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이곳을 함께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뒷풀이 겸 맥주잔을 기울이던 중에 그들에게 했던 고백이다. 취중진담이었다.
“다음에도 올 수 있어. 1년에 한 번씩은 같이 올 수 있으니 오고 싶을 땐 언제든지 이야기해.”
술잔을 기울이다가 주고받던 이 대화는 지금도 여전히 진하게 기억되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기쁨. ‘네가 하는 일이 틀린 게 아니야’라며 지지받고 응원받는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지난 여행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서 있으면서, 비슷한 밀도의 마음을 가진 이들과 가진 소중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