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짬뽕 한 그릇으로 나누는 의미
어제저녁엔 좋아하는 회를 실컷 먹고 기분 좋게 맥주를 마시고 솜사탕 같은 포근함을 안고 하루를 마감했다. 아침 일찍 눈을 떠 글 한 편 남기고 아침을 준비했다. 웬일인지 아들도 일찍 눈을 떴다. 어제 회와 생마늘과 맥주로 위장을 혹사했는지 위장이 편하지 않다.
어제 장 본 것으로 소고깃국을 끓이고 가리비를 찌고 소 염통을 삶고 돼지목살을 구워서 아들에게 먹였다. 장을 봤지만 막상 밥상을 차리니 별로 먹을 게 없는지라 겸연쩍음에 장 봤는데 먹을 게 별로 없다는 말을 변명처럼 슬쩍 흘리는데 아들은 군소리 없이 잘 먹는다. 밥 한 그릇과 고기 구운 것을 거의 다 먹더니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한다. 어느새 아들은 예의 바른 청년이 되었다.
밖은 비가 오고 이기지 못하는 맥주의 후유증으로 불 켜진 매트 바닥에 누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침 먹고 간다는 아들은 기척이 없다. 아들에게 밥을 먹여 보내고 싶은 마음에 비몽사몽 한 목소리로 아들에게 "밥 차려줄까?"라는 말만 몇 번이나 하고는 일어나지 못했다. 잠시 후 씻는 소리가 들리고 드라이어 소리가 들리더니 집에 간다는 아들. 가면서 짬뽕을 먹고 간단다.
그냥 보내려니 왠지 아쉬워 세수도 하지 않고 옷만 대충 걸치고 아들을 따라나섰다. 속이 편하지 않았지만 아들과 밥 한 끼라도 더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다. 아들도 굳이 만류하지 않아 중식당으로 향했다. 아들이 먹고 싶다는 소고기짬뽕을 시켰다. 음식이 나왔는데 그릇 크기가 커다란 양푼이다. 그릇 크기에 놀라고 양에 놀라다가 고기를 건져 아들에게 주니 거부하지 않는다. 다른 부모와 별다를 것 없는 행동을 무의식 중에 하고는 그 평범함에 흐뭇하다.
아들 말대로 짬뽕은 간도 딱 맞고 재료도 신선하고 풍부하다. 특별한 대화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지만 기회가 있으면 밥 먹을 기회를 만들고 싶다. 아들이 어릴 때는 돈벌이에 매달리느라 방치하다시피 했다. 한창 엄마의 손이 필요한 시기에 아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생각을 하면 나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휩싸인다. 아들에게 비어 있던 시간을 보상한다고 하지만 기실 그것은 나를 위한 보상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식사가 내게는 순간순간이 의미롭고 소중하다. 함께 있는 시간, 함께 있는 공간, 함께 먹는 밥으로 알게 모르게 가족의 정이 소리 없이 쌓이는 것 같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을 위해 아들이 결혼하기 전 기회가 있으면 밥을 먹고 싶다. 물려줄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기에 밥이라도 사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 밥을 사줄 능력이 되어서 흐뭇하다. 식사가 끝나고 근처 빵집에서 빵을 몇 개 사줬다. 사소하지만 소소한 정을 나누고 싶어서. 혼자 보내지 않고 짬뽕이라도 나눌 수 있어서 무척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