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한밤중의 대소동
지난주부터 자꾸 친정엄마가 떠올랐다. 함께 식사한 지 이 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자꾸 생각났다. 좋아하시는 딸기를 사다 드리든지 식사를 함께해야지 마음만 먹다가 지난주는 내 생일, 이번 주는 아들 생일인지라 아들과 시간을 보냈다. 성과급이 나올 예정인지라 아들에게 재킷과 바지, 캔버스화를 생일선물로 사줬다. 경제활동을 하고 있어도 엄마에게 선물 받으니 기분이 좋은지 내가 보낸 이모티콘에 모처럼 귀여운 이모티콘으로 답이 왔다.
흐뭇한 여운을 안고 수업에 활용할 온라인 연수를 받던 중 갑자기 배가 고팠다. 저녁을 건너뛰었더니 배가 고파 아주 오랜만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다 먹었는데 밤중에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친정엄마기에 늦은 시각인지라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걱정을 안고 전화를 받았다.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고 119대원이라는 것이다. 말인즉슨 엄마가 코피를 많이 흘려 119를 불렀는데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상주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 가서 처치를 받아보고 안 되면 큰 병원에서 레이저로 시술을 받아야 한다며 내게 병원에 올 것을 요청했다.
나는 허겁지겁 대충 옷만 입고 차를 몰고 상주 적십자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내가 주차함과 동시에 구급차가 도착했다. 엄마는 휴지로 코와 입을 막고 있었는데 입 안에 피가 흥건했다. 구급차에서 직접 내리는 것으로 보아 의식은 있는 것 같아서 화들짝 놀랐던 가슴이 한결 진정되었다. 이미 많은 코피를 쏟은 엄마는 겁에 질려 있었다. 119대원의 말로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코피가 난 거라고 했다. 대원들은 내게 엄마를 인계하고 돌아갔다.
의식이 있고 밖으로 피가 나는 게 내 짧은 의학 상식으로 뇌출혈이나 심각한 질환은 아닌 것 같았다. 엄마에게 말을 걸어보니 뜻도 알아듣고 대답도 하기에 정말 아무 것도 안 했는지 물어봤다. 119에는 갑자기 코피가 난 거라고 했다는 데 내 물음에는 쌀가마니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전 이빨 세 개를 뺐다고 했다. 뒤따라온 사촌오빠는 며칠 전부터 작은엄마가 마당에서 뭘 들고 왔다 갔다가 하기에 저러다 몸살 나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아마도 무리해서 코피가 난 것 같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종합해 보니 코피는 과로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그렇지만 우린 의사가 아니기에 단정은 금물이었다. 응급의가 지혈약을 묻힌 거즈를 콧속 깊숙이 넣어 처치하고 우린 경과를 기다렸다. 병원에서는 보호자 한 명만 남고 나머지는 밖으로 나가라기에 나만 남고 사촌오빠 내외는 돌아가셨다. 물티슈를 사서 피 묻은 엄마의 얼굴과 손을 닦아드리고 곁에서 엄마를 지켰다. 출발했다던 남동생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엄마가 소변이 마렵다기에 부축해서 화장실로 가서 바지를 내리고 속옷까지 내리려고 하자 황급히 내리며 변기에 앉았다. 무엇이 그리 부끄럽고 수치스러운지 그 심리가 전해져 나도 당황했다. 엄마는 늘 그랬다. 나 어릴 때도 부엌에서 목욕할 때면 깜깜한 데서 하고는 몸을 가리고 보여주지 않았다. 내 나이 불과 몇 살 되지도 않았고 게다가 딸인데 뭐가 그리 부끄러웠던 건지 나는 한 번도 엄마의 알몸을 보지 못했다. 그러니 나도 그런 면에서는 솔직하지 못했고 스스럼없이 다가가지 못한 것 같다.
벗은 몸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주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왠지 모를 거부감, 혹은 거리감을 두는 것 같은 엄마가 약간은 어색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처럼 다른 집의 모녀들처럼 허물없이 알몸도 보여주고 속 얘기도 하고 그런 사이가 되지 못했다. 그런 거리감을 좁혀보고자 온천에 갈 것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엄마는 다른 핑계를 대며 거부했다. 몇 년 동안 요양병원에서 기저귀를 차고 있는 친구의 엄마가 있었는데 친구는 병원에 방문할 때면 엄마가 개운하도록 물티슈로 구석구석 깨끗이 닦아준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과연 우리 엄마라면 자기의 몸을 내게 맡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엄마가 미처 속옷을 다 내리지 않고 볼일을 봐 속옷이 젖을까 봐 그게 걱정이었다. 내 걱정과는 별개로 엄마는 볼일을 다 마치고도 누가 보자고 하기라도 한 것처럼 황급히 옷을 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어쩌겠는가. 한편 그 정도로 급박한 상태가 아니기에 본인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리라. 병원 와서 물 한 모금 삼키지 않은 엄마는 두 시간 남짓 응급실에 머무는 동안 소변보러 세 번을 간다고 했고 나는 혹시 엄마가 넘어지면 큰일인지라 팔짱을 끼고 최소한의 걸음을 옮기며 천천히 화장실로 안내했다.
한참 후에 남동생이 도착하고 코피가 멈추지 않자 병원에서는 큰 병원으로 갈 것을 권했다. 대구에 있는 대학병원에 전화하니 응급실 이비인후과는 진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토요일 밤중에서 일요일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비인후과는 응급을 다툴 일이 크지 않은 것이다. 의료파업으로 가뜩이나 진료가 어려운 상황에서 팔다리 부러진 게 아니라면 응급실에 가본들 뾰족한 수가 없기에 남동생네 집으로 모시기로 했다.
물티슈로 연신 입 안의 피를 닦아내던 엄마는 당신의 처지가 비참하게 여겼는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이미 아플 때마다 비슷한 모습을 봐온 나는 울지 말라고 달랜 후 괜찮을 거라고 토닥였다. 울거나 신경 쓰면 더 안 좋으니 마음을 편하게 가지시라고. 그런 내 말에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픈 엄마를 본다는 건 가슴에 고인돌만큼 커다란 바윗덩이로 누르는 심정이다. 게다가 적지 않은 연세에 계속해서 코피를 쏟으면 혹시나 쇼크가 오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다.
남동생 차를 탄 엄마께 나는 휴지와 거즈와 물티슈를 챙겨드리며 괜찮을 거라는 안심의 말을 전했고 차는 떠났다. 딸인 나보다 아들을 따라가는 것이 엄마에게는 심적으로 더 든든할지도 모를 일이기에. 집으로 돌아오는 그 잠깐의 시간에 나는 마음이 착잡했다. 최선을 다해 엄마를 위했는데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수준이 아니면 서운함을 눈덩이처럼 쌓아놓고 표현했기에 나는 상처받고 지쳤었다. 사소한 감기에도 아이처럼 엉엉 울며 죽을 것 같다는 표현에 놀라서 달려가고 병원에 모시고 나면 약만 먹어도 낫는 증상일 때 그 허탈함.
잠 한숨 못 자고 엄마께 달려가고 병원으로 모시고 진료받고 그게 반복되다 보니 나중에는 그 죽을 것 같다는 말이 양치기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어요.”
라는 거짓말처럼 무감각해졌었다. 정작 나는 아무리 아파도 엄마께 아프다는 말도 도움의 손길도 요청한 적이 없다. 당신의 아픔만 중요하고 자식의 아픔은 외면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했기에 나는 어떤 힘든 상황이 닥쳐도 엄마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해결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엄마가 내게 무관심하고 냉정하게 대해도 나는 그럴 수 없다. 아프다면 달려가서 병원으로 모시고 가끔 맛있는 것 사서 사다 드려야 내 마음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병원으로 달려가면서도 엄마의 상태도 걱정이 되었지만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평소에 늘
“나는 괜찮으니 엄마에게 잘해라.”
라고 하시던 아버지의 음성과 표정이 보였고 처음으로 나를 책망하시는 것 같았다. 엄마에게 잘하라는 말씀이 귓전에서 들리는 것 같아 나는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을 안으며 캄캄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벽 늦게 잠들었다가 오전에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어떻게 보면 사서 병을 만든 엄마 덕분으로 우린 야단을 떨고 잠을 설쳤다. 대전에 있는 병원에 레이저로 시술하는 예약을 하러 간다며 일하지 마시라고 그토록 신신당부해도 듣지 않는 엄마 때문에 힘든 남동생이 하소연한다. 잠시 후 엄마에게서도 전화가 오고 나는 제발 아들이나 자식들 말 좀 새겨들으시라고 좀 강하게 말씀드렸다. 엄마도 이번 일로 놀랐는지 내 말에 알았다고 하시며 나보고 고생했다며 자식밖에 없다고 말씀하신다.
늙는다는 건 단순히 얼굴에 주름살이 골짜기처럼 패이고 머리가 하얗게 세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늙는다는 것은 질병이나 사고를 동반한다. 자신의 의지로 몸을 마음껏 움직일 수 없고 먹어야 할 약의 숫자가 늘어간다. 그리고 혼자 남겨진 외로움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함을 안고 살아야 한다. 사회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지만 노인에게도 젊음이 있었고 꿈을 꾸고 희망을 품은 적이 있었다. 늙어버린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 유쾌한 이는 없을 것이다. 어느덧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 느꼈을 그 허무함이 가엾고도 가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