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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완 Jan 27. 2024

복원된 사진첩

장맛비가 세상을 전복시킬 듯 내리던 날 

우산을 너를 그 거리에서 보았지.

그날의 음영과 너의 우산, 나를 보던 첫 시선은 

아직도 그 거리에 남아있지.


세월은 사람을, 시간은 사랑을 변하게 한다는 걸 부정했었지만,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단단했던 약속들은 

어른이 되었다는 착각이 잉태한 오해와 함께 증류되고야 말았어.

옅어진 추억과 어쩐지 선명해지는 미안함만 남은 그 거리도 디지털화된 세계에 감금되었지.


그날 같은 비가 내리던 날, 복원된 사진첩을 열었어.

오래된 기억이 여리게 재생되며 시간이 빠르게 역류했지.

추억은 증폭되고, 나쁜 기억들은 미화되며 비도 거세졌어.


시간이 왜곡되어 가는 순간 초인종에 소스라치게 놀랐지.

그 소리는 세계로의 복귀를 알리는 소리였어.

온몸에 일상을 이고, 우산을 채 나를 바라보는 사람.

피곤하면 쌍꺼풀이 생기는 나의 사람이 우리 집 앞에 서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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