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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완 Jul 08. 2024

고통과 행복의 교집합; 달리기

 19세기 초, 영국정부는 늘어난 죄수들의 관리로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영국의 토목기사인 월리엄 큐빗이 트레드밀이라는 형벌기구를 발명하였고, 이는 영국 전역의 감옥에 순식간에 보급됩니다. 트레드밀은 죄수들을 통제하기 안성맞춤의 기구였습니다. 죄수들은 트레드밀에 오르는 것에 끔찍한 공포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장시간 산이나 계단을 오르는 것에 버금가는 육체적 고통도 끔찍했지만, 아무 의미도 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심리적 고통 또한 컸다고 합니다. 트레드밀은 그렇게 죄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19세기말에 이르러서야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라며 모든 감옥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트레드밀은 오늘날 러닝머신의 기원입니다. 죄수의 형벌용 기구가 현대인의 건강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19세기 감옥 안의 트레드밀 위에 올라있는 죄수들과 21세기 헬스클럽의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현대인의 뒷모습은 감시자와 복식을 제외하면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2024년 대한민국의 달리기 인구수는 어림잡아도 수백만에 이른다고 합니다. 주말의 공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도심을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 이상 외국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닙니다. 러너들이 자주 찾는 여의나루역은 58개의 물품보관함과 탈의실, 파우더 룸을 갖춘 모습으로 탈바꿈하였고, 인기 있는 마라톤 대회는 참가신청 자체가 어렵습니다.

 달리기 인구의 급증은 건강에 대한 관심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육체적 고통이 반드시 수반되어 한때 죄수들의 형벌의 도구였던 달기기에 현대인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달리기에는 원초적 기쁨이 존재합니다. 달리는 동안 흐르는 땀을 통해 일상의 스트레스가 몸 안에서 빠져나가며, 기구나 기계의 도움 없이 짧은 시간에 이르는 극한의 육체적 고통은 일상의 고뇌를 잊게 만듭니다. 달리고 난 후 찾아오는 심리적 평온함은 고요의 바다에 비견될만하며, 무엇 하나 쉽게 내어주지 않는 현대사회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드문 행위입니다.


 그런데 건강에도 좋고 기분도 좋아지는 달리기와 등산을 왜 회사와 학교에서 하면 질색할까요? 오래 달리기를 싫어하던 소녀들이 거리와 마라톤 대회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으며, 산을 좋아하는 아저씨인 저도 회사에서 하는 등산은 청계산을 오르는 일조차 버거웠습니다. 왜일까요?

 내가 정한 목표에 이르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육체적 고통에 대해서는 심리적 저항감이 없지만, 남이 시키는 일을 하며 겪는 작은 고통에도 크게 반발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같은 달리기이지만 내가 선택하면 21세기의 힙한 러닝이 되고, 남이 강요하면 19세기 감옥의 트레드밀이 되는 이유입니다.


 최근 밝혀진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행복과 고통을 같은 곳에서 처리한다고 합니다. 오십 년을 살아오며 뒤늦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통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며, 고통의 크기가 클수록 행복의 크기도 커진다는 것입니다. 고통이 없는 삶에서 행복과 성취감을 맛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고통 없이 무언가를 얻을 수는 있지만,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짜릿하지도 않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치안 등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면에서 선진국에 완전히 진입한 한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이 불행한 이유는 경쟁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신경 끄기의 기술’의 저자 마크 맨슨은 한국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라고 평했는데, 그 또한 과도한 경쟁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불행한 사람은 자신의 행복이 아닌 남을 이기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경쟁을 위해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버려야 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할 타인을 제압해야 할 대상으로 선정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타인과의 경쟁이나 시선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의 취향과 마음을 먼저 살피며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오늘을 사는 사람입니다.

 혼자 달리는 사람들은 당연히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며, 러닝 크루들도 취향을 공유하며 연대감을 느끼기 위함이지 상대를 이기기 위해 달리지 않습니다. 달리기는 물질만능주의가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한국인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행복을 얻기 위한 몸부림이자, 경쟁지옥에서 잠시라도 해방시켜 주는 독립운동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남이 시킨 일을 할 때 또는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할 때 고통스러워합니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어찌 된 일인지 우리 지시하는 인간은 늘어만 가고, 자유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멸종되어가고 있습니다. 

 혹시 맑은 날에도 우울감이 느껴지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도 가슴이 답답하거나,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잠들기가 어려운가요? 성능 좋은 운동화도 멋진 트레이닝복도 필요 없습니다. 청바지에 단화면 충분합니다. 그저 현관문을 열고 나가 달려보세요. 자신의 체력에 맞게 하루하루 달리다 보면 드림캐쳐도 잡지 못한 행복이 스며들지도 모릅니다. 달리는 사람들도 행복해지기 위해 작정하고 달린 것이 아니라, 그저 호기심에 혹은 자기 마음이 시키는 대로 달리다 보니 행복해진 사람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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