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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완 Jul 17. 2024

독린이의 금서 총균쇠와 데미안

 2024년 6월 24일부터 4일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 국제도서전을 다녀왔습니다. 현장에 도착해서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의아함을 느꼈고, 관람객의 연령대에 놀랐습니다. 멸종위기의 독서인구가 종이책의 종말을 슬퍼하며 궐기대회라도 하기 위해 모인 걸까요?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했음에도 입장에만 40분이 걸렸습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가족단위의 관람객과 중장년층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한 저의 편협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서울 국제도서전은 MZ들의 놀이터였고, 축제를 방불케 하는 열기에 당황하다 마지막에는 안도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MZ들은 독서를 힙한 행위로 여긴다고 합니다. 힙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고유한 개성과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최신 유행에 밝고 신선하다 인데요. 접근성이 용이하며 어떠한 노력도 필요하지 않은 영상물이 넘쳐나는 시대이기에 책을 읽는 것이 고유한 개성이 되어버린 시대입니다. 독서가의 한 사람으로서 독서가 힙하다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지만, 드문 행위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K팝 공연장이 아닌 도서전을 찾은 MZ들을 보며 고맙고 대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독서인구의 감소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어린 시절의 잘못된 독서 습관과 어른 독린이들의 잘못된 책 선정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독서가가 되기 위해서는 첫 책으로 총균쇠와 데미안으로 대표되는 인기도서와 서양고전을 읽지 말아야 합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 10년 연속 대출 1위라는 광고 문구에 현혹되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총균쇠는 분명히 훌륭한 책이지만 초보 독서가를 독포자(독서포기자)로 이끄는 치명적인 독약입니다. 

 총균쇠를 제대로 이해하고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몇 년에 걸친 사전 독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책의 분량 또한 많아 책을 읽는 것이 습관으로 몸에 베지 않은 독린이들은 내용에 질겁하고, 책의 두께에 질리고 맙니다. 인삼도 열이 많은 사람에겐 약이 되지 않듯이, 소위 말하는 고전이라고 모두에게 좋은 책은 아닙니다. 독린이들은 우선 쉽고 재미있는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픽 노블이나 만화책도 좋습니다. 소설의 경우에는 외국 소설 특히 출간된 지 오십 년이 지난 명작의 반열에 오른 소설은 절대 금지입니다. 그 소설들이 명작에 반열에 오른 이유는 당대를 살아가는 해당국가의 성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초판 발행일은 1774년입니다. 이 소설은 당대의 젊은이들에게 자살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어린이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 결코 아닙니다. 베스트셀러 소설분야에서 빠지지 않는 헤르만헤세의 데미안도 독린이에게 독이 되는 책입니다. 1차 대전을 배경으로 철학적인 성찰을 다룬 이 위대한 책은 반드시 독서가가 된 후에 읽어야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저의 집에는 늘 책이 굴러다녔습니다. 저는 소년중앙과, 디즈니 동화, 만화로 된 역사책을 재미있게 읽으며 독서의 재미를 깨우쳤습니다. 관심이 가는 책을 읽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책, 좋은 책을 발견하게 되는 제3의 눈이 개안되며, 끝내 고전에도 다다르게 되는 것이 순서입니다. 


 TV에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같은 고전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가슴이 털컥 내려앉습니다. 다음 날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겠지만, 뭐 읽을 만한 책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던 독린이가 그 책을 읽게 된다면, 또 한 명의 예비 독서가를 잃게 될 테니까요.


 그럼 도대체 뭘 읽으라는 말이냐! 대책도 없이 잔소리만 하지 말라는 성인 독린이들에게는 국내 소설가인 김애란, 박상영, 권여선의 책을 추천합니다.  한국인의 정서와 현실이 투영된 한국 작가의 문학으로 책과 친해지고 나면, 인문학책을 읽는 것도 한결 수월할 것입니다.  

 청소년들에게는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를 추천합니다. 아몬드는 국내에서 이미 40만 부 이상 팔렸고, 일본에서 서점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감정이 없는 청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소설인데, 청소년 소설이라고 얕보고 읽기 시작했다 코가 납작해진 재미와 작품성까지 잡은 훌륭한 책입니다. 

 손원평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가슴이 심쿵했습니다. 손 작가는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책 읽는 기쁨을 알게 해 주기 위해 모든 영상물 제작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제가 최소 열 살 많은데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금전적 유혹을 뿌리치고 책을 책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그의 낭만을 추앙합니다.

 넷플릭스 다큐시리즈 “도시인처럼‘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1925년의 뉴욕 4번가는 헌 책방이 넘쳐났다고 합니다. 서점 주인들은 자영업자 이전에 맹렬한 독서가였다고 합니다. 2024년도에 뉴욕 4번가에는 단 한 곳의 서점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서점 주인은 수백만 달러의 매매제안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책을 팔아서 수백만 달러를 절대 벌 수 없지만, 자신의 취향과 낭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낭만이란 단어가 힙하게 느껴지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저는 도서전에서 인파가 몰린 대형출판사의 부스들을 지나 중동의 오만이 참가한 부스를 찾았습니다. 저는 오만부스에서 히잡을 두른 직원들의 안내로 16세기에 오만에서 제작된 지리책과 의학책을 보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내부를 둘러보고 나니 놀랍게도 오만의 부스는 책을 든 사람들로 둘러 싸여있었습니다. 오만의 여성작가 ‘조카 알하르티’ 사인회를 기다리는 행렬이었습니다. 그의 작품 ‘천체’는 2019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분 수상작이었습니다. 저도 책을 구매 후 그 줄의 끝에 섰고, 작가가 도착하기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앞 뒤의 사람들과 오만과 책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제주도에서 도서전 관람을 위해 올라온 MZ국어 선생님, 삼십 년 넘게 오만과 무역을 해온 베이비부머 선배님과 X세대 아저씨가 스몰토크의 향연을 이루었습니다. 책이라는 매개체가 없었다면 삭막한 강남의 한 복판에서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더디지만 시간을 들여 읽는 과정의 즐거움과 책을 읽은 후의 기쁨을 사랑하고, 책을 힙하게 즐기는 청년들과 꾸려나갈 세상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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