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젊은 작가상 수장자인 김기태 작가의 첫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중 '보편 교양'에는 교양 수업의 일환으로 고전 읽기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등장합니다. 선생님은 사비를 들여 수십만 원어치의 책을 구입하고, 방과 후에도 수업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입시 교육을 받느라 정작 교양을 쌓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열 권의 책을 세심하게 준비하였습니다. 사건의 갈등은 그가 선정한 고전 중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비롯됩니다. 학교에서 최상위 권의 성적을 유지하던 은재의 아버지가 우려를 표한 것입니다.
교사가 편향된 가치관으로 수업을 진행한다는 학부모의 이의제기를 소설이 아닌 뉴스로도 접한 적이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아인슈타인을 제치고 BBC에서 선정한 지난 천 년간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꼽혔으며, 자본론은 한국의 교수와 지식인들에게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 1위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소설의 제목처럼 마르크스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보편의 교양입니다. 그러나 소설 속 은재의 아버지처럼 마르크스와 자본론을 여전히 금서 취급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학업에 충실하느라 보편의 교양도 쌓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마르크스와 자본론이 오늘날 지닌 억울한 멍에와 편견은 공산주의를 이용하여 국민을 약탈하고 자신의 잇속을 채운 공산국가의 정치가들 때문입니다. 종교가 신성한 종교인인 아닌 자들에 의해 더럽혀진 것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페루의 수도 리마의 도심에는 3미터 높이에 길이가 무려 10킬로에 이르는 일명 수치의 벽이 있습니다. 국경선도 아닌 이 기괴한 벽은 부촌과 빈민촌을 가르는 경계입니다. 헝거 게임이나 설국역차 같은 영화나 소설이 아니라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벽입니다.
21세기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빈부격차입니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느냐보다 개인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던 시절의 자본주의는 순식간에 세계를 사로잡았습니다. 장점이 극대화되며 건강해 보이던 자본주의가 꽃 피던 시기에는 빈부의 격차가 21세기처럼 크지 않았습니다.
청년실업, 자영업의 몰락, 그로 인해 이어지는 저출산 문제의 뿌리는 빈부격차입니다. 자본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소수가 자본을 독점하면 다수의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그 과정에서 인간성은 상실될 수밖에 없습니다. 노력과 성실의 가치가 폄하되어 노동의 존엄이 파괴되었고, 공정함은 실종되었습니다. 버려야 할 것은 공존할 수 없는 좁은 탑 위에 오르겠다는 이기심이고, 수정되어야 하는 것은 능력이 시스템 그 자체입니다.
고도로 성장한 자본주의는 수치의 벽을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게 구축했습니다. 한국을 비롯하여 자본주의가 정점에 달한 국가 중 보이지 않는 수치의 벽이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페루 리마의 벽이 낭만적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두렵습니다.
온난화로 인류의 생존이 불가능해지기 전에, 빈부의 격차로 생존이 무의미해질까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