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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완 Jul 30. 2024

AI가 탐내지 않는 유일한 봉우리

 1997년 IBM의 슈퍼 컴퓨터 ‘딥 블루’가 체스 세계 챔피언을 꺾었을 때 인간은 흥미로움을 느꼈다. 그러나 2016년 알파고가 최고의 바둑 고수 이세돌을 이겼을 때 느낀 감정은 경외감과 두려움이었다. 바둑은 체스보다 경우의 수가 훨씬 많고 인간의 직관이 필요하기에, 인간 외의 그 어떤 존재로부터 정복되지 않을 영역이라고 여겼다.


 명확한 도덕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음에도 기업은 인공지능의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인류가 당면한 기후위기나 버튼 하나로 공멸이 가능한 전쟁의 위험은 뒤로 미루어 둔 채이다.

 2023년 초,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하라리 등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기업가와 세계적인 석학, 심지어 딥 러닝의 창시자로 알려진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 등 천명이 넘는 전문가들이 6개월간 인공지능의 개발을 멈추기를 제안했었다. 이 제안을 한 이들은 인공지능 개발에 뒤쳐진 경쟁기업인들이 아니었고, 가치 있는 제안은 늘 그래왔듯 제안으로 그쳤다.

 이미 인간은 많은 분야에서 기계로 대체되고 있으며, 그 속도를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빅테크 기업으로 대표되는 자본가들은 인류의 발전이라는 모호한 가면을 쓴 채 AI 개발이라는 급발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살아가기 위한 밥벌이에 대해 고뇌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다가올 미래에 사라질 직업과 유망한 직업이 화두에 오르는 이유이다.

 2023년 한국은행은 ‘AI와 노동시장 변화’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의 내용에 따르면 고학력, 고소득 근로자일수록 AI로 대체될 위험이 더 크다고 분석했다. 많은 이들이 자식의 미래 직업으로 선호하는 의사, 회계사, 변호사 등이 포함된다. 또한 화학공학기술자, 발전장치 조작원, 철도 기관사, 재활용 처리 장치 조작원 등도 AI노출 지수가 높은 직업으로 꼽혔다. 반대로 AI 노출 지수가 낮은 직업으로는 성직자, 가수, 등의 직업이 거론되었다.

 2024년 7월, 국책 연구기관인 KDI에서는 더 충격적인 예측이 포함된 보고서를 발표했다. 향후 6년 안에 현재 존재하는 직업의 90% 이상이 AI와 로봇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것이다. KDI 또한 고소득 고학력 업종이 자동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는데, 이 연구에서는 정치인보다 자동화될 가능성이 낮은 직업으로 작가를 꼽았다.


 두 기관의 연구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현재 돈이 되는 직업이 AI로 대체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지금의 발전 속도라면 AI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어 보인다. 다만 오르기를 거부하는 봉우리는 정복되지 않을 것이다. 감정도 없고 피로도 느끼지 못하는 AI가 탐내지 않는 봉우리는 자금 투자대비 손익이 크지 않은 영역이며 예술도 포함될 것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며 평생의 업으로 삼고자 하는 입장에서 출판업계의 불황이 걱정스러우면서도, 인공지능 업계의 관심 밖이라는 점은 다행스럽다.


 인간은 태초부터 쓰고, 그리고, 노래하며 살아왔다. 예술 활동은 애초부터 금전적 이익을 기반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하며, 기술의 발전과 상관없이 어리석은 탐욕으로 위태로운 세상을 자초하는 인간이라는 종이 멸종되지 않은 것도 예술의 존재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의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그 일을 인간으로부터 빼앗는 것을 발전이라고 정의한다면, 세상을 발전시키는 것은 인공지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을 영속시키는 것은 아무도 오르지 않으려는 봉우리를 묵묵히 오르는 사람들일 것이다.


 2024년 7월, 계산이 맞지 않는 일상을 짊어지고 아무도 오르지 않으려는 봉우리를 올랐던 예술가가 우리의 곁을 떠났다.

스무 살에 작사, 작곡한 ‘아침이슬’로 청춘의 등불이 되었지만, 정작 자신의 청춘은 불 아래 암흑에서 보낸 사람, 그 노래는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라고 덤덤히 말하던 천재 작곡가,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위한 합동결혼식을 위해 축가 ‘상록수’를 만든 뭣이 중요한지와 멋을 알던 아저씨, 모두가 잡기 위해 안달인 명예를 못 본채 하고, 꿈을 위해 자본에 구걸하지 않았으며, 젊은 예술인과 어린이를 위해 학전 극장을 적자 운영하던 사리에 어두웠던 경영인. 늘 무대 뒤에 서 있길 바랐지만, 세상 누구보다 빛났던 그의 이름은 김민기이다.

  SBS에서 방송된 3부작 다큐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무려 3%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다큐는 그의 인생처럼 시청률로 측정할 수 없는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는 추억과 희망을 되살려주었고,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참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민기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그와 청춘을 보냈던 이들과 현재 청춘을 살아가는 이들이 함께 애도하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졌다. 스무 살의 청년은 학전 극장 앞에 마음으로 깊게 눌러쓴 손 편지를 남겼으며, 고초를 치를 것을 알면서도 무대에서 아침이슬을 불렀던 이수만은 유족의 거듭된 거절에도 불구하고 오천만 원이 든 부의금 봉투를 남기고 떠났다. 한국일보의 조사에 따르면 장례기간 동안 방송 3사의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튼 노래는 김민기의 노래였고, 멜론에서는 전주 대비 27배가 증가한 수치로 아침이슬이 재생되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추모열기에 유족은 성명을 발표했다. 익명을 포함한 모든 부의금은 사회에 기부할 것이며, 아버지의 뜻에 따라 어떤 추모행사도 진행하지 않겠다고 한다. 자신이 한 일들이 그저 삶의 기록으로 남기를 바란다는 고인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장례기간 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위로에 자식들은 그저 ‘우리 아버지 참 살다 가셨네’라는 기분이 들어 웃음과 눈물이 함께 나는 시간이었다는 소회를 남겼다.


 김민기가 생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을 위해 만든 ‘봉우리’라는 곡이 있다. 내 귀에는 어쩐지 자신의 생애 성과나 성공을 남기거나 거두지 못하고도 유의미한 삶을 이어가는 모두를 위한 위로처럼 들려 소개한다.

<봉우리>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를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 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 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 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말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 올 때는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 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 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 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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