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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완 Sep 20. 2024

누가 나의 아저씨를 죽였나?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좋아했다. 극 중 주인공 박동훈(이선균 분)은 나와 동갑인 1974년생이었고, 같은 직장인이었다. 그래서일까?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세상 고난을 다 짊어진 듯 축 처진 어깨로 등장하는 출퇴근 지하철 신에서 강한 기시감을 느꼈다. 선혈이 낭자하는 영화, 도덕과 염치가 사라져 버린 세상을 닮은 드라마가 승승장구하는 삶에서 나의 아저씨는 고요한 정원 같은 존재였다.

 드라마가 종영되고 몇 년 후, 배우 이선균의 삶도 막을 내렸다. 가정을 버린 파렴치범이라는 대중의 비난과 마치 불구경이라도 난 듯 타인의 몰락을 뉴스랍시고 실시간으로 내보내는 일부 언론의 꼴값에 그를 추모하는 이들의 말과 글은 삼켜졌다. 

 그의 불륜은 명백한 잘못이지만, 그의 죄를 단죄할 수 있는 사람은 그의 아내와 가족이어야 했다. 전 국민이 그의 사생활을 들여다볼 권리도 필요도 없었다. 법을 이용하는 기관의 망신주기 식 수사와 개인의 통화내용을 뉴스시간에 송출한 것이 (보도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아깝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결정적 이유라는 것을 부인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는 법치에도 어긋나며 도덕적으로도 최악의 행태였다. 살인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인격살인이 가장 저질스럽다.


연예인의 사생활이 의심스러운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봉준호감독과 윤종신 등은 수사 당국 관계자들의 철저한 진상규명 촉구, 언론의 자정 노력과 함께 보도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기사 삭제 요구, 문화예술인 인권 보호를 위한 현행 법령 재개정 등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매일 같이 쏟아지는 또 다른 자극적인 뉴스와 새로운 먹잇감을 찾은 까마귀 떼의 이동으로 공중 분해됐다.

 2024년 KBO(한국프로야구)는 세계최초로 AI심판을 도입했다. 인간 심판을 대신하여 AI가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뛰어난 IT기술력과 그간 경기도중 수 없이 불거진 볼 판정으로 인한 문제를 감안하면 납득이 가는 시행이다. 이 뉴스를 보다 문득 AI의 도입이 시급한 분야는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과 법을 관장하는 분야에 전격적으로 AI가 도입된다면 어떨까?

모두가 아는 비밀이지만 법 앞에 인간은 더 이상 평등하지 않다. 일부 언론은 강자를 위한 나팔수에 지나지 않는다. 죄를 지은 자의 배경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며, 권력에 복종하지도, 자본에 머리를 조아리지도 않은 채, 죄 자체로만 인간을 벌하는 것은 더 이상 인간에게 무리다. 그러나 AI에게는 쉽고도 명료한 일이다. AI의 도입을 반대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더 이상 법과 언론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체감하는 다수일까? 더 이상 법과 언론을 악용하지 못하게 되어 불편함을 느끼게 될 소수일까?


 연예인의 사생활을 대하는 자세로 정치인의 정책을 살펴봐야 한다.

수도승도 아닌데 자신감이 넘치면 싸가지 없다며 저격하고, 수녀도 아닌데 거침없이 표현하면 걸레라고 수군댄다. 죄가 있으면 법의 처벌을 받고, 죄가 없어도 밉보이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

 자신의 인생을 파괴하는 정치인의 불법에는 관대하고, 자신의 여가를 풍요롭게 하는 그들의 사생활은 막 대한다. 자신이 선출한 폭력적인 정치인은 두려워하고, 자신의 관심을 갈구하는 연예인은 멸시한다. 지나가는 남의 집 개한테도 안 그런다. 팬심을 먹고사는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쓰레기 같은 말에도 저항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는 저항하지 못하는 상대에게 말을 싸지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강한 권력의 부당함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고 강수연 배우의 말처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비겁하게는 살지 말자.

 말을 똥처럼 싸지르지 않으려면 뉴스나 정보의 이면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느리지만 독서나 여행 등의 다양하고 건강한 인풋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풋이 부족하면 빈약한 아웃풋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는 자신과 사회 모두에게 재앙이 된다.


 자본의 통제를 받는 기사 한 줄과 우매한 다수의 주장만을 습자지처럼 빨아들인 이들의 말은 확신에 차 있다. 자신이 경험한 좁은 세상이 우주라고 믿기 때문이다. 판단도 빠르고 판정도 신속하니 시원시원해 보인다. 그러나 빠르게 쏟아낸 쾌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수많은 양서를 읽고, 한 분야의 대가가 되어 세상을 두루 경험한 현자의 말은 모호하면서도 조심스럽다. 그래서 느리다. 우주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음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쓸데없다는 연예인 걱정이 아니다. 한 인간이 죽기 전 느꼈을 공포와 외로움에 대한 공감과 한탄이다.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하지 않는 세상이라고 불평한다. 한 번의 실수도 용서하지 않는 이들이 스스로 만든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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