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완 Sep 22. 2024

누구나 각자의 산이 있습니다.

 누구나 올라야 할 산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언인지 모르는 아이는 너무 많은 짐을 배낭에 구겨 넣습니다. 자신보다 체격이 더 큰 옆집 아이보다 무엇이건 더 많이 채워놓고 안도합니다. 그러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아이는 산의 초입에서 지쳐버리며, 한 치 앞의 바닥만 보고 걷느라 시력은 퇴화되고, 마음만 급해집니다.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청년이 된 아이는 ‘짐을 줄이면 수월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땅만 보고 걷느라 불필요한 짐을 버릴 지혜와 남과 다른 관점을 가질 용기를 잃어버렸습니다. 스스로 사유하는 것은 서툴고, 남을 따라 하는 것은 쉽기 때문입니다. 몸은 자랐지만 어쩐 일인지 산행이 더 고되게 느껴지고, 짜증만 밀려옵니다.


 중년이 된 아이는 산 중턱의 샘에 이르러 쉬어가기로 합니다.

물을 마시며 사유하다 마침내 깨닫습니다. 같은 산을 남보다 빨리 올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산을 오르면 된다는 것을. 

 다른 산에서 여전히 땅만 보고 걷는 이들이 쉬지 말라고 소리치지만, 그 소리는 더 이상 닿지 않고, 메아리가 되어 사라집니다. 이제는 다른 산을 오르는 타인의 속도나 그들이 메고 있는 배낭의 크기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불필요한 짐을 버리고, 힘들면 쉬어가자 산을 오르는 일이 수월해졌습니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퇴화된 줄 알았던 시력이 회복되며 자신이 오르고 있는 산의 아름다운 풍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산행 중 다시 만나게 될 깔딱 고개도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저 한 발씩 내딛다 보면 느리지만 힘겨운 고개는 반드시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산을 오르는 이유를 스스로 찾은 늙은 아이에게 등산은 즐거운 일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정상에 오른 머리가 하얗게 센 아이는 늙어버린 두 발을, 거칠어진 두 손으로 보듬어줍니다. 길을 잃어 산속을 헤맨 적도 있지만, 나침반도 없이 여기까지 온 자신이 대견합니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자 편안한 졸음이 몰려옵니다. 정상에 자신보다 빨리 도착한 이들은 이미 잠들어 있습니다. 

'다들 수고했네 그려.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 없는 산행이었기를.'

 누구나 올라야 할 각자의 산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산을 인생이라고 부릅니다. 산을 오르는 일이 무의미한 고생이 될지, 숭고한 고행이 될지는 각자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