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주요성분은 수분이지만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물욕, 승부욕, 명예욕, 성욕 등의 각종 욕망이 아닐까? 그 중 나는 식욕이 다른 욕망 보다 월등하다..
한끼는 대충 먹자 라는 말을 야근 하자는 말보다 더 경멸하며, 잠은 호텔에서 못 자더라도 호텔 뷔페 가는 돈은 아끼지 않는다. 택시비 만원의 호출버튼을 누르기 전에 망설이던 손가락이 고급 스시 앞에서는 거침이 없다.
유달리 약한 후각과 남달리 강한 식탐의 융합으로 못 먹는 음식이 없고, 새로운 음식에 대한 도전에도 거리낌이 없다. (파충류는 좀……별루다)
이런 내가 10살 때 까지는 도무지 음식을 먹으려고 하지 않아 엄마가 나를 따라다니며 뭐라도 먹이려고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엄마는 이때의 트라 우마 때문인지 아직도 내게 밥은 먹었냐? 왜 이렇게 말랐냐? 아침을 안 먹어서 얼굴이 상한 것이 아니냐며 난리법석을 떤다.
이등병 이후로 나는 한 번도 정상 체중 이하로 내려 간 적이 없으며, 월급의 상승곡선처럼 미세하게 매년 인생 몸무게를 갱신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얼굴이 상하기는 했지만 절대 못 먹어서 그런 건 아니다.
1년 남짓한 캐나다 어학 연수를 마치고 와서는 처음으로 70키로 대를 찍었고 영원히 60키로 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도 몸이 버겁다고 느껴진 이때도 엄마는 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 애 꼴이 말이 아니라고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만드셨다.
결혼 후에는 엄마의 말랐다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억측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고향집에 내려가기 전에는 일부러 고기를 먹고 내려가고 옷 매무새에도 신경을 쓰지만 엄마의 걱정은 멈추지 않는다. 내가 100키로가 넘거나 청바지를 다려 입고 가도 멈추지 않은 걱정이라 아내도 나도 이제 그냥 지구가 자전하면서 공전하는 자연의 법칙처럼 받아 들인다.
그러던 어느 해 늦여름 엄마의 생신을 맞아 고향에 내려갔다. 엄마는 본인 생일인데도 나의 얼굴을 살피더니 어쩐 일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고향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이제 제법 익숙해진 솜씨로 엄마가 문자 메시지 메 보냈다.
“이번에는 얼굴이 참 좋아 보여서 내 기분도 좋구나. 새 아가가 잘해줘서 그런 가부다. 둘 다 고생한다.”
아내와 나는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혹시 엄마의 심경에 어떤 변화가 생긴 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될 정도였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아내가 화장대에서 웃으며 말을 했다.
“여보! 이제 상주 갈 때 마다 이 미백용 썬 크림 바르고 가요.”
여름에는 자주 썬 크림을 바르는데 그 날은 아내의 미백용 썬 크림을 바르고 고향 집엘 갔던 것이다.
이제 엄마의 걱정을 덜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