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를 반강제적으로 선정한 것은 약간의 장난과 오기 때문이었다. 과연 그 말의 저의는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도 찾아보고 싶었고.
시작은 아주 사소했으나 초기 진압에 실패해 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 지금 나는 교권 추락, 무너지는 교실 (?) 한가운데 서 있다.
일일이 나열하자니 마음이 찢어진다. 말로 듣던 것을 글로 적어보니(조금 전에 내가 들은 말을 다 적어 봤다.) 더 마음이 아파서 적지 않기로 한다. 가끔 점심 먹다가 다른 선생님들에게 요새 3학년 애들이 나를 아주 만만하게(?) 본다며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다들 놀란다.
- 헐. 정말요? 그 예쁜 애들이?
- 쌤. 괜찮아?
선생님들의 진심 어린 걱정이 무색하게 사실 난 큰 타격감은 없다. J에게는 상처를 받았다고 했지만 사실 상처 1도 안 됐다. 그런 말을 들은 수업 상황에서 별다른 지도를 하지 않고 같이 와하하, 하며 웃어넘긴 이유는 딱 하나다.
라포.
녀석들과 나 사이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그러니까 우리 사이에는 ‘라포’가 형성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순간 (편해서) 장난치고 싶은 마음에 그리 말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니 기분 나쁠 것도 없어졌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나 정말 녀석들을 많이 예뻐한다. 녀석들 특성상 낯도 많이 가리고 선생님들하고 친해지는 것도 오래 걸리는데 그래도 한 번 마음 주면 되게 오래도록 안 떠나는 애들이라는 걸 안다. 나 역시 2023년에 처음 녀석들 가르칠 때에는 애들이 말도 없고 다가오는 것도 없어서 힘들었는데 친해지고 나니 정이 많이 들어서 2024년으로 올라갈 때 솔직히 많이 아쉬웠다. 추억을 더 쌓을 걸, 하고. 그 애정이 아직도 남아서 오늘(9월 18일 목), 안 가도 되는 동인천 학생문화회관에 가서 공연까지 보고 왔다. 나는 담임도 아니라 굳이 안 가도 되는데 애들이랑 티키타카하는 게 좋아서 갔다. 공연도 뭐, 썩 괜찮았고.
무튼, 그렇다. 그렇다 보니 그 말들이 놀랍기는 하나 큰 상처는 아니었다. 특히 나한테 ‘어쩔티비’라고 한 녀석은 작년 내내 학교에서 만나면 가르치지도 않는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해주곤 했다.
‘우린 친구잖아.’라고 말한 녀석은 어떤가. 그 녀석은 내 책에 등장하는 녀석이다. 난 그 녀석의 글이 좋고, 약간의 드립이 좋고, 말발이 좋다. 가끔 겸손함을 모르긴 하지만, 열여섯은 그럴 수 있으니 오케이.
‘피해망상’도 마찬가지. 이건 솔직히 조금 순간 놀라긴 했지만 걔 입장에서는 말이 거칠 뿐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단박에 파악했기 때문에 오케이다.
어쩌라고요,라고 말한 녀석은 더더욱 괜찮다. 녀석에게 위트가 생겼다. 1학년 때에는 조금 어려운 아이였는데 이제는 국어 부장도 하고, 너스레도 떨도 성실하게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나에 대한 호감(?)은 모르겠으나 아이가 성장 모습에 감동 중이니 오케이.
나도 예전을 생각해 보면 그랬다. 난 학교 선생님들은 다 싫었고, 학원 선생님들에게 그렇게 장난을 치곤 했는데 장난을 친다는 건 그 선생님이 편하다는 것이고, 편하니까 좋다는, 뭐 그런 감정으로 학원을 다녔다. 가뜩이나 공부하기 싫고 학교는 답답한데 내가 약간의 희생양이 되어 아이들 숨통을 트이게 해 준다면야 기꺼이.
누군가는 분명 그러다가 선 넘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할 거다. 그런데 난 글쎄, 믿는다. 녀석들이 막 ‘선’을 넘을 거라는 생각은 잘 안 든다. 아직 꼬꼬마 초등학생 느낌 날 때 봐서 그런지, 1년 동안 자유학기제 한다고 이곳저곳 데리고 다녀서 그런지, 아직도 어린애들 같다. 그런 애들이 뭘 하면 얼마나 할까 싶다.
그러니 괜찮다. 아직까지는. 오히려 좋다.
나란 사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되게 모범적인 사람처럼 생겼지만 사실 엄청난 장난꾸러기. 한번 친해지면 걷잡을 수 없이 말로 괴롭히는 사람. 여태까지는 그런 말 상대가 없어서 못했는데 녀석들 덕분에 요새 수업할 맛이 난다. 나의 장난기를 건드렸으니 나도 만만치 않게 말로 갚아줄 수 있으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글의 시작이 ‘교권 침해 어록’이었지만 사실 그런 말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수업에 대한 ‘태도’이다. 정확히 말하면 언어적 표현보다 비언어적 표현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든다.
요새 계속 글로 풀어내고 있지만 수업이 엄청 힘들고 괴롭다. 뭔가 지금 내 수업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느낌인데 그때마다 아이들의 비언적인 표현이 닿을 때면 좀 힘들다.
사실 애들이 매일 6~7시간씩 집중하기란 쉽지 않다. 나 역시 교직원 연수나, 외부 출장을 가면 연수를 듣다가 졸거나 솔직히 몰래 폰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사람이 이상한 게 내가 열심히 준비한 걸 안 들어준다고 생각하면 그게 그렇게 속상하다.
며칠 전의 일이다. 새롭게 나가는 문법 단원이 진짜 노잼이다. 나는 사실 문법도 좋아해서 그런 거 분석하는 맛을 느끼는 편인데 내 교직생활 통틀어서 문법 좋아하는 애들 거의 못 봤다. 역시, 우리 애들도 마찬가지라 잔뜩 긴장하고 들어갔는데 역시나, 대부분 졸린 눈을 하고 억지로 필기를 하고 있다. 대답을 하라 하는데도 묵묵부답. 이해를 했는지 물어보면 ‘네.’ 하는데 진심인지는 모르겠고. 등에선 땀이 주르륵 흐르는데 아직 시간은 20분이나 넘게 남았고.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수업을 듣는 듯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고. 나는 그러면 그 모습에 흔들려 내 페이스를 잃고 뭔가를 더 과장하거나 포장하려고 하고. 그런 악순환 속에서 수업을 마쳤다.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교실문을 나서면 꼭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 아. 국어 수업 진짜 노잼
- 지루해. 졸려.
- 국어 지겨워.
(그러고 보니 피해망상 맞나? ㅋㅋ) 교무실에 가서도 한참을 그 기분을 떨쳐내야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을 많이 쓴다. 어떤 선생님들은 그냥 쿨하게, 애들이 힘들 수도 있지, 하며 생각을 정리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게 안 된다. 내 수업에서 자는 거? 조는 거? 떠드는 거? 딴짓하는 거? 그런 게 용납이 잘 안 된다. 여기 학교 와서 정말 많이 유연해진 건데도 지금 3학년 애들이 1학년 때 나랑 얼마나 재밌게 수업했는지 알기에, 그와 다른 모습을 보이면 그게 좀 그렇게 많이 서운하고 섭섭하고 그렇다.
그러니까 난 사실, 말보다 행동에 더 상처를 받는다. 아주 어릴 적부터 감각이 예민해서 주변 상황을 잘 캐치했다. 담임할 때에는 아침 조회시간에 쓱, 둘러보며 아이들 컨디션을 체크했다. 문제 있는 아이들이 눈에 바로 들어왔다. 덕분에 많은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그 능력이 요새는 참 힘들다. 예민하다 보니 아이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한다. 웃으면 나도 힘이 나고, 반응이 없으면 나도 기운이 없다. 특히 너무 조용하면 미칠 것 같다.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다. 차라리 그냥 개드립이라도 쳐 주었으면 좋겠다. 어쩔티비, 저쩔티비 해도 되니까. 제발. 너네들이 보는 밈 나도 다 알거든? 하며 주접떠는 게 낫지 싶다.
그런데 태생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많은 학년이다. 무덤덤하고 어떻게 보면 무심하다. 짜식들이 마음이 없는 것 같지는 않은데 표현이 거의 없다. 표정이 없으니 마음을 종잡을 수 없다. 감수성 풍부한 F인 선생님은 미치고 팔짝 뛰겠다.
그래서 난 매일 4시간씩 교실에 들어가서 상처를 받고, 교무실에서 가서 후시딘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고 집으로 간다. 한 주에 20시간. 꼬박 20시간을 그렇게 보내면 마음은 너덜너덜해져서 더 이상 뭔가를 할 힘이 없다.
자존감은 떨어지고, 수업을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도대체 어떻게 가르쳐야 잘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 방향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그래서 요새는 지금 3학년 애들 담임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녀석들이 보이는 비언어적 표현을 조금은 유연하게 해석할 수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욕심이다.
매주 20시간 만나는 선생님이 의미 있게 기억되고 싶은 욕심.
끽해야 중학교에서 국어 가르치는 선생님이 그래도 의미 있는 수업을 해주고 싶은 욕심.
그 때문에 자꾸만 아이들의 눈빛에 말에 행동에 상처를 받는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 14년 차의 나는 여전히 개복치다.
내일, 1반, 3반, 4반, 5반의 수업이 있다.
그중에 나를 힘들게 하는 반도 분명 있다.
차라리 장난을 치고 드립을 쳐도 좋으니
내일은 부디, 제발. 자는 애들, 딴짓하는 애들 없었으면. 제발.
추신 : 이 내용은 9/18 목요일 밤에 쓴 글이에요. 이 이야기를 공개하는 이유는, 이 이야기 이후- 그러니까 이걸 쓰고 정확히 그 다음날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에요.
심각한 건 아니었지만
아직도 마음은 싱숭생숭하네요.
그저 편히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