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좋아해!!

[오늘은 수업 없음!]

by 안녕

[쌤! 저 부탁이 하나 있어요!]

[네네. 쌤. 뭐요?]

[저... 축제 때 공연해도 돼요?]

[오~~~ 멋져 멋져! 나 너무 좋아! 뭐요? 춤? 노래?]

[음. 일단 노래인데, 혼자여도 무조건 할게요. 혼자 올라가도 좋으니 저 무대 한 꼭지만 주세요!]

[혼자서~~~~? 대박~~~? 나 완전 좋아~~ 알았어요. 쌤 공연은 무조건 하는 걸로!]



6월이었다. 뜨거운 햇살이 슬슬 거리를 점령하고, 후덥지근한 바람이 살결에 닿아 온몸이 끈적거리는 그 여름의 초입에 나는 덜컥, 공연을 해보고 싶노라 말을 뱉어버리고 말았다. 누가 시킨 것도, 같이 하자고 먼저 제안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순전히! 절대적으로! 나 스스로 한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노래를 잘하느냐? 전혀. 오히려 못하는 축에 속한다. 퍼포먼스가 대단하냐? 그것도 절대 아니다. 오히려 막대기가 움직이는 느낌을 주는 편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설이기 싫었다.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은 느낌에 일단 저지르고 만 것!



나조차도 놀란 이 사건의 발단은 2년 전 ‘그날’로부터 시작된다



때는 바야흐로 2023년 12월.



찬바람 부는 겨울 즈음에 교사용 메신저가 하나 도착했다.



[축제 무대에 참여하실 선생님을 모집해요! 이번엔 ‘복면가왕’을 할 예정인데요. 저희 함께 참여해서 즐겨 보아요!]



무조건 참여하고 싶었다. 나란 사람, 원래 이런 거 나서는 거 좋아하는 사람. 멍석 깔아주면 조금 부끄러워하다가 뭐라도 해보는 사람.



게다가 1학년 애들 너무 예쁜데, 담임은 아니지만 내가 자유학기제 담당교사로서 진짜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고 이것저것 체험도 시켜주었는데, 걔들 자유학기 1년을 내가 엄청 고민했는데, 그래서 정도 정말 많이 들었는데 아이들에게 이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온 메시지이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저도, 조심스레 참여해도 될까요?]



라는 메시지로 시작된 복면가왕 준비. 얼굴을 가리고 노래를 부르다 막판에 공개되는 그 짜릿함! 벌써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이제 막 친해진 귀여운 1학년 애들 앞에서 얼굴이 짠- 하고 공개되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와~~~ 하고 환호성은 크겠지? 비밀리에 준비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설레는 마음으로 근무를 했더랬다.



그런데!



슬픈 소식은, 예고도 없이 찾아와 나를 덮쳐버렸다.



평소 밤늦게까지 일하던 습관 때문이었을까. 하루에 네 잔씩 마시던 커피 때문이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과 위경련이 찾아왔다. 가만히 허리를 펴고 서 있을 수가 없어 몸을 새우등처럼 굽혀야만 버틸 수 있을 정도였다. 쉴 새 없이 구토를 할 것 같았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다. 결국 버티다 못해 병원에 가 수액을 맞고 말았다.



바늘조차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팔뚝과 손등에 피멍이 군데군데 들어있는 것을 보며, 똑- 똑- 하고 떨어지는 수액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음이 이상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아프면서까지...?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출근을 하자마자 담당 선생님께 메시지를 드렸다.

[선생님. 정말 죄송해요. 며칠 전부터 너무 몸이 안 좋아서 수액을 맞았는데요..... 아무래도 건강이 우선인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마음을 전달할 첫 번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약 그 무대를 준비했다면 난 축제날 병가를 냈을 테니까.



정확히 한 달 후, 축제가 열렸다. 강당에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이 귀여웠다. 이제 막 1학년 티를 벗어던진 녀석들이 공연을 열심히 보는 모습을 보며 살짝, 아쉽기도 했다. 특히 복면가왕 무대가 공개 됐을 때, 그리고 원래는 내 짝꿍 선생님이었던 분이 다른 분과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봤을 때, 마음 한편이 저릿, 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사실은 내가 하려고 했던 무대야, 얘들아. 하고 외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그렇게 2023년을 떠나보냈다.


2025년이 됐다.

다시 녀석들을 만났다.

한층 더 성장한 녀석들은 1학년 때보다 훨씬 큰 감동을 주었다. 능글맞아지면서도 예의를 갖출 줄 알았다. 수업은 때때로 지루하고 가끔은 마음 아픈 순간도 있었지만 대부분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아몬드>를 주었는데도 아직도 읽지 않은 C(너 솔직히 말해. 라면받침으로 쓰지. 이 자식아.), 가끔 내 마이쮸를 말도 없이 집어가는 J, 수업 시간에 자꾸 허공에다가 손가락 피아노를 치는 C, 애니메이션 좋아한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놀림받는(?) 목소리가 진짜 좋은 K.



자고로 나란 사람, 마음이 있으면 그걸 어떻게든 표현하는 게 맞다고 보는 사람. 편지를 쓰든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표현을 해야 상대방도 안다고 믿는 사람. 1반부터 5반까지 학급 전체에게 편지를 써 주고, 가끔은 1:1로 편지를 써 주어도 채워지지 않는 이 마음을 어떻게 전하면 좋을까?



그때 마침 축제가 떠오른 것이다!

그래! 축제! 나 2년 전에 못한 거 올해 꼭 한다! 하고!



곡 선정도 일사천리였다. QWER의 <고민중독>이 딱이었다. 담당 선생님께 한 자리를 부탁해 놓은 게 6월이었으니까 공연이 있는 9월까지 정말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연습했다. 매일 출퇴근 길에 매일 노래를 듣고 가사를 외우고 무대 구성을 생각했다. 특히, 템포가 빠르고 가사가 외우기 어려워 고생했다.



학교에 마스크를 쓰고 다녔던 것도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연습하기 위함이었다. 웬 여자가 입만 벙긋거리면 미친 것 같으니까 마스크 속에 얼굴을 숨기고 계속 계속 연습했다. 전주 끝나고 노래 들어갈 타이밍, 간주 끝나고 2절 들어갈 타이밍을 정말 맹연습했다.



설거지는 아주 훌륭한 보컬 트레이닝 시간. 저녁밥 먹고 설거지를 할 때면 스포티파이로 1곡 반복 걸어 놓고 무한 연습했다. “어떤 인사가~”라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옆에서 딸도 따라 부를 지경. 결국 우리 딸도 가사를 다 외워버렸다.



신기한 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는 점. 오히려 완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어 철저히 비밀에 숨겼다. 아마 그날 공연에 내가 오르기 직전까지 담당샘 4명 정도만 알고 나머지는 다 모르셨을 것이다. 가장 친한 선생님들도, 교장, 교감 선생님들도 모르는 상태로 그렇게 철저히, 완벽히 비밀에 숨겼다. 결국 대기실에 얼쩡거려서 들켰지만. ㅠ.ㅠ



처음엔 마지막 가사 “좋아해!”부분에서 마이쮸를 뿌려주려고 했었다. 그런데 장소가 장소인 데다 아이들이 그거 받겠다고 모이다가 다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바꾼 게 손 편지. 그런데 그건 또 시간이슈가 있을 것 같아서 패스. 결국 고민하다 급하게 헝겊 꽃으로 골랐다. 9개를 주문해서 하나는 딸 주고, 나머지 8개를 아이들에게 주기로 결정. 대충, 2절 중간부터 돌아다니면서 주면 되겠다 싶어 담당샘이랑 서로 말을 맞춰 두었다.



그런데!

웬일.



막상 리허설 때문에 무대를 가보니 이게 생각보다 규모가 너무 큰 게 아닌가. 아니 무슨 결혼식장인 줄 알았다. 무대가 객석과 가까울뿐더러 메인 화면에 전광판. 군데군데 TV까지! 기에 눌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 이 무대를 내 실력으로 채울 수가 있나? 심지어 난 공연만 하는 게 아니라 1부 처음에 발표까지 있는데. 내가 이 두 개를 완벽히 소화하는 게 가능한가?



발표 연습을 핑계로 무대 곳곳을 돌아다녔다. 스태프 분께는 마이크를 쥐고 객석으로 내려오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공연팀 아이들이 리허설을 할 때 나는 머릿속으로 무대 동선과 꽃을 주는 위치, 꽃을 주고 싶은 아이들을 어림잡고 있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는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면 되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즐기는 일만 남았다.



공연 당일.

최대한 티 안 나게 깜짝 이벤트를 해주고 싶었으나 태생이 미리미리 대기해야 하는 성격이라 아마도 대기실에 있던 공연팀들은 대충 눈치챘을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한다는 것을. 그래도 시침 뚝 떼고 머릿속으로 연습, 또 연습했다.



드디어 내 차례.

준비한 꽃을 들고 들어가는데 처음에 내가 나가는 줄 몰랐던 아이들이 한 템포 늦게 나를 발견하고 환호해 주기 시작했다!



와~~~~~~~~!!



조명이 환해 객석이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아이들이 좋아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가운데 앉은 2, 3학년의 얼굴이 유난히 빛나보였다.(고 믿고 싶다. ㅎㅎ)



“여러분! 이 노래는 제가 가르치는 모든 아이들에게 바치는 노래입니다! 잘 들어주시고, 많이 호응해 주세요!”

가 원래 준비한 멘트였다. <고민중독>이라는 가사가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내용이 가득 담겨서, 2, 3학년들에게 특히 지금의 3학년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



헌데, 무대 올라가니까 뭐 생각 안 난다. 그냥 “수업하는 거보다 천배는 더 떨려서 심장이 터질 것 같으니까 가사 알면 많이 따라 불러 주세요!”하고 시작한 것 같다.



와~~~~



소리와 함께 전주가 시작되는데 이런. 시작 지점이 안 들린다. QWER! 하고 몇 초 있다가 “어떤 인사가~”를 불러야 하는데 환호에 안 들린다. 되는대로 감으로 믿고 부르는데 중간부터 가사가 기억이 안 난다. 다행히 아이들이 불러주는 소리에 감을 잡고 이어 불렀다.



이건 뭐 내가 노래를 부르는 건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건지 모르겠고, 무대는 생각보다 넓은데 가만히 부를 노래는 아니니까 어정쩡하게 돌아다니면서 부르기는 해야겠고, 지금 내가 이렇게 움직이는 게 화면으로 송출될 거라 생각을 하니 떨려 죽겠고, 하는 마음에 1절이 끝났다.



2절 시작 후 “쏟아지는 맘을 멈출 수가 없을까!” 부분에서 꽃을 주려고 마음먹었는데 그걸 딱, 캐치한 담당샘이 나에게 꽃을 건네주었다. 이제부터는 (노래도 끝나가고) 무대에서 뛰어다닐 차례!



눈에 보이는 아이들에게 꽃을 하나씩 건네주었다. 1반의 M, 2반의 K, 1반의 B, 5반의 L, 그리고 2학년의 K, 마지막으로 3학년의 Y에게 꽃을 건네고 올라오는데 뭐랄까, 이런 기분은 다시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그 작은 꽃 하나 받겠다고 손을 뻗어주는 아이들,

내 비루한 노래를 제 목소리들로 가득 채워준 아이들,

그리고 열심히 호응을 이끌기 위해 돌아다닌 MC들, 그 모두에게 너무 고맙고, 고마웠다.



노래는 막바지로 흘러갔다.

개인적으로 <고민중독>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의 “좋아해!”다. 이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까 엄청 고민했는데 결국 ‘좋아해!!’하고 소리 지르는 것으로 결정! 결과적으로는 대성공. 대만족이다.



정말 그 3분의 시간만큼은 하늘을 떠 다니는 기분이었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핑-퐁-하고 주고받은 느낌. 교사로서 처음 느끼는 감정.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있었다.






신규 때에도 동기 선생님들과 축제 무대에 섰었다.

2017년에도, 그리고 2022년에도 춤을 추며 무대에 섰었다. 그때에도 공연을 하고 나면 뿌듯함을 느꼈다. 그런데 이번은 차원이 다르다!



훨씬 더 오래도록 고민했고, 훨씬 많은 연습을 했다. 훨씬 깊이 생각했으며, 사소한 포인트를 챙기려고 노력했다. 나 혼자 올라선 공연이 초라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3학년을, 그리고 나의 첫 학년부장 시절 제자 2학년을 아끼는 마음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축제가 끝난 지금도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어설프지만 풍성했던, 부족했지만 완벽했던 그 순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나에겐 아주 오래된 소망이 있다.

내가 만난 아이들이 먼 훗날 나를 기억할 때



“아. 나 중학교 때 국어쌤, 진짜 좋았는데. 그 쌤이랑 했던 시간이 정말 재밌었어.”



하는 말들이 나왔으면 하는 것. 그래서 우리가 함께 한 그 시간들이 아이들의 삶에 가장 ‘반짝이는’ 순간으로 남았으면 하는 것.



나의 공연이, 나의 노래가, 나의 작은 꽃 한 송이가

녀석들에게 훗날 기억할 추억의 한 조각이 되었다면

정말 그랬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5화사건의 전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