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안에서 정치 이야기는 어떻게 소비되었나
문장의 짜임을 가르치는데
매번 교과서나 문제집에 나오는 흔한 예시 문장을
활용하기 싫어 만들어낸 수업이었다.
모둠별로 명사, 동사, 형용사를 적어 칠판에 붙이면
그 단어밭으로 문장을 만들어 보는.
마침 가장 힘들다 느끼는 반의 수업이었다.
하필이면 2주 전에 수업 중 울다 끝나버리고 난 후의 첫 수업이었다.
아직 갈팡질팡하고 있는 와중에 수업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추석 연휴 전 날, 5교시.
할까 말까 망설이다 그 반만 안 하는 것이 찜찜하여
밀어붙이기로 했다.
조용하긴 하지만 할 땐 열심히 하는 녀석들이니
이 수업만큼은 잘 해낼 거라 믿는 마음도 컸다.
오늘은, 울지 말고, 아이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보리라. 애쓰면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 하곤
마음을 다잡고 다잡으며 교실로 들었다.
평소 무척 조용한 녀석들은
내 수업 안내를 듣자마자 열심히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서로 단어를 찾고, 고르고, 나와 붙이는데 열심이었고
문장을 만들 때에는 상의를 하며 최대한 다양한 문장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다소 잔인한 단어나 예시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떤 반이든 한 두번씩 나오던 것이라
적당히 봐주며 넘어간 것도 있었다.
특히 지난번, 수업 중 울어버린 후 첫 시간이라
조금 더 허용해 준 것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아이들이 웃으며 (반응하며) 수업하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믿었다.
아이들이 만든 문장을 칠판에 적었다.
한 문장 공들여 분석했다.
"이 문장은 주어, 서술어가 한 번씩 드러나니 홑문장,
이 문장은 두 번 이상 드러나는데 대등하게 이어진문장. 알겠지?"
설명 중간중간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얘들아. 이상한 단어 없어?" 하고 물으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아 괜찮겠지, 생각하곤 넘겼다.
"이 수업은, 너희들이 교과서에 나오는 문장만 분석하기엔
식상할 것 같아 준비한 수업이야. 오늘 홑문장, 겹문장의
차이를 이해했으면 좋겠어. 오늘 수업 끝!" 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아이들도 좋아했고, 반응도 나쁘지 않아
겉으로 보기엔 분명 썩 성공한 수업임에 틀림없었다.
쉬는 시간. 아이들이 모두 나간 교실에서
나는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마치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 옆 반의 한 녀석이 불쑥 들어오기에
슬쩍 물었다.
"수형아. 혹시 000이 무슨 뜻이야?"
했더니 아이의 얼굴이 순간 굳는다.
선생님, 하며 설명해 주는 내용을 듣고 나는
그만 그 자리에 굳어 버리고 말았다.
믿기 어려워 복도에서 놀고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
그 외의 몇 단어를 물어보니 하나같이
뜻을 설명해 주며,
그 단어는 수업 시간에 쓰기엔 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유난히 열심히 참여하며 학급에서 공유된 단어는
사실 사회 지도층 인물과 관련된 단어였던 것.
공적인 공간인 교실, 그것도 나의 수업 시간에
사적인 공간에서 공유되는 단어가
수업 자료로 쓰인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그 단어들이 쓰인 문장을
정말 성심성의껏 분석하고 만 것이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이상한 건 없느냐는 물음에 침묵으로 답한
아이들의 반응만 믿고서.
순간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차, 싶었다.
내가 도대체 한 시간 동안 뭘 한 거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우리나라의 교사는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
교육기본법에 명시되어 있는 조항에 따라
나는, 나의 정치적 의견을 수업 장면 속에
드러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짓궂은 제자들은
항상 나에게
"쌤, 파란색이 좋으세요? 빨간색이 좋으세요?"
"쌤, 왼쪽이 좋으세요? 오른쪽이 좋으세요?"
하며 농담 섞인 말을 건네곤 한다.
그럴 때면 적절히 받아주며 넘어갔는데
그 이유는, 그것은 몇몇의 아이가
수업 이외의 장면에서 물어보는
농담(?) 같은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모두에게 공유하고 가르치는 공적인 순간,
그러니까 본격적인 수업 장면에서
그런 질문이 나올 때면
열여섯 즈음된 아이들은
스스로 정리해주곤 했다.
"야. 그런 걸 왜 물어봐." 하면서.
아이들의 정치적인 입장은 존중한다.
저마다 사고의 틀이 갖춰지고 있는 아이들이
다양한 뉴스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기르는 건, 솔직히 완전 대 찬성이다.
무언가를 강요할 생각은 1도 없다.
나와 아주 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MJ, J에게도 정치 이야기는 묻지 않는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를 바랄 뿐.
그러나
그것이 수업 장면으로 들어온다면
그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모두가 합의한 상태에서 본격적으로
그 '논제(정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몇몇만이 그 내용을 이해하고,
대다수는 그 내용을 잘 모르며,
심지어 수업의 호스트인 '내'가 아예 모르는,
그런 내용을 다루는 것은
분명 적절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것은 정치적 입장이 어떤 쪽이든 마찬가지가 된다.
몇몇에게는 즐거움을 줄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불쾌함을 줄 수 있기에.
때문에 수업이란 공적인 장면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주제의 것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호스트의 통제 아래
조절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태껏 나의 수업은 이 원칙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원칙이 무너진 현장에서
나는 바보같이 서 있던 꼴이었다.
아이들이 즐거워 하면 됐다고 믿으며.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것은, 여태껏 겪었던 부끄러움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어떻게든 짚고 넘어가야겠다 생각이 들어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
좀 전의 수업 장면에 대해 물어보니
대다수가 단어의 뜻을 알고 있었다.
'괜찮은 것이냐'는 나의 질문에 묵인한 것도 맞았다.
"너희들의 정치적인 의견은 선생님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야. 하지만,
수업 중에 쌤이 알지 못하는 내용이
공유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앞으로 그러지 말자."
하며, 급하게 교실을 돌아 나왔다.
아이들은 다시 와글와글 떠들기 시작했고
뛰어놀기 시작했다.
말은 했으나 개운하지 않았다.
찜찜했다.
왜냐하면,
그 수업 속에서,
내가 수차례 확인을 요하며, 괜찮은 거냐고
물었을 때, 괜찮다고 말해준,
정말 내가 아끼는 녀석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녀석을 찾았다.
"얘들아. 000 어디 있는지 알아?"
"아마. 3층에 있을 걸요?"
늘 자주 가는 반 앞에 있으리라.
황급히 가던 방향을 틀어
그곳으로 가니,
작은 벤치 앞에 녀석이 앉아 있었다.
"너. 너 이 녀석. 쌤 좀 잠깐 봐." 하며
녀석을 불러 복도 끝으로 걸어가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건 뭐, 속상함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 아닌가.
"너. 진짜 쌤이, 진짜 실망이야."
하는데 그냥 눈물이 막 고이는 것이 아닌가.
울면 안 되는데, 나는 선생님이니까
최대한 감정을 덜어내고 담백하게
지도해야하는데 이게 뭔가, 내가 왜 자꾸 얘들 앞에서
이렇게 무너지나, 싶어 어떻게든 꾹꾹 참으며 말을 이었다.
"00아. 정말, 쌤은 정말. 하... 정말. 실망했어."
녀석도 얼굴이 벌게져 있다.
더 말을 하고 싶은데
그곳에 있다가 진짜 펑펑 울 것 같아
황급히 자리를 떴다.
수업 2분 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쌤, 안녕하세요,
명절 잘 보내세요, 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교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왜 이러지?'
가만히 앉아 진정을 하려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할 일이 많은데,
당장 수행평가 채점,
수업 자료 준비 등,
할 게 많은데
이럴 때가 아닌데.
쏟아지는 눈물을
휴지로 찍어 누르고
가만, 가만 숨을 쉬었다.
그 사이 6교시 시작을 알리는
타종이 울렸다. 타들어 가는 내 마음도 모르고
수업은 시작되어 버렸다.
추신: 꼬박 하루를 깊이 생각하며 지금은 마음이 많이 정돈되었습니다.
이 글은 특정 학생이나 학급의 행동을 비난하거나 탓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교사로서 교실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돌아보고 스스로 성찰하기 위한 기록에 의의가 있습니다.
글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 모두 제게는 여전히 소중하고 아끼는 제자들입니다. 특히 '실망이야'라고 말했던 녀석에게는 퇴근 길에 따로 메시지를 보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답니다. 한 사람의 한 면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
한 달 하고도 반 정도 묵힌 글을
세상에 내어 놓는다.
그날의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깊이 패인 상처가
쓰릴 정도로 아프지만
이젠 웃으며 대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섬세함 때문에 더 아픈거라면
무뎌지기 보다는
차라리 매일 조금씩 더 아프기를 택할 나이기에
그 날의 기억을 용기 내어 공개한다.
그러니까, 그 날은 2025년 10월 2일,
오늘은 11월 13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