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것은 추억
영상 촬영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아이들 졸업 전에
추억으로 남길 영상을,
찍는, 그런 활동이다.
사실 딱히 이유는 없다.
굳이 지금 영상을 찍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대부분 독서,
남은 교과서 진도,
혹은 자유시간을 줘도 된다.
그런데 왜, 나는 영상을 찍을까,
찍으라고 시킬까, 스스로 수차례
질문했다.
납득이 되어야
설득할 수 있으니.
마침 '이별'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며 세월을 돌이켜 봤다.
헤어짐이 예정된 만남.
끝이 정해진 인연.
지지고 볶다가도
1년이 지나면 흩어져버리는.
진흙처럼 진득하다가도
모래알처럼 스치듯 사라져 버리는.
특히 아꼈던 아이들에 대한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빛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졌다.
졸업하면 아이들은 떠나지만
그럼에도 1년은 더 근무해야 하는
나는, 녀석들을 추억할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
어떤 교육적 목적을 다 떼어버리고
진심으로 솔직한 마음이다.
영상 모둠을 짜고,
서로 팀이 되기 싫다며 아우성치고,
나는 그 사이에서 적절히 중재하고.
영상 주제를 정하기 위해
서로 시시덕거리고 낄낄거리며
'이거 될까?'
'되겠냐?' 하며 이야기 나누고.
추운 바람, 휘날리는 낙엽, 늦가을과
초겨울 어딘가에
교정을 누비며 곳곳을 담아낼.
그 모든 과정이 너무 좋아서
그저 그 모든 순간에 함께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너희들이 떠나간 자리에,
너희들을 추억할 무언가를 갖고 싶어서."
라는 오글거리는 멘트를 듣던 녀석들은
더 이상의 질문 없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다
모둠별로 돌아다니며
적절히 아이디어를 주기도 하고
짐짓 훼방을 놓기도 하고
때로는 필요한 대본을 인쇄해 주다가도
불현듯 애틋해
사진도 찍어주고 찍히곤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감정 중에
지금 내가 아이들에게 느끼는 감정의 이름을 붙인다면
무엇이 될까.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 감정의 이름을
붙이고 싶다.
아마도 이 활동이 끝나
영상이 상영될 12월 중순 즈음에는
알 수 있겠지.
겨울이다.
모든 것이 움츠러드는
와중에
마음속 작은 씨앗이,
싹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