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건의 전말

by 안녕

<차라리 선 넘는 드립이 낫겠어>는 ‘상처’에 대한 기록이었다.

’ 살아오면서 나에게 상처가 된 말‘이라는 주제로 쓴 글.


금요일 아침에 J와 잠시 만나 서로 써온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기분 좋게 헤어진 참이었다.

선생님은 말보다는 이상하게 행동에 상처를 받더라,

근데 괜찮겠지, 뭐, 하면서.


2교시는 무난하게 넘어갔다.

적당히 떠들고 적당히 집중하는 아이들 틈에서

나 역시 적당히 장난치고 강조하며

한 시간을 훌쩍 보냈다.


문제는 3교시였다.

이상하게 3월부터 들어가기만 하면 심장이 턱, 막히는 반이었다.

분명 하나하나 보면 이야기도 잘 나누고

마음도 따뜻한 녀석들인데

모아 놓으니 거대한 벽처럼 다가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이라 어색해서 그러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는 마음으로 1학기를 버텼다.

나쁘지 않은 시간들,

하지만 썩 힘이 나지도 않은 시간들로 채워진

그 반의 수업 때문인지

자꾸만 마음이 작아졌다.


말썽꾸러기가 있느냐? 놉.

오히려 반대였다. 필기해, 하면 필기를 하고

중요해, 하면 별표를 쳤다.

내 말을 놓칠까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하나, 문제는 너무 조용했다.

조용해서, 분명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공부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이런 식.

“모둠활동을 해봐.”하면,

모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니라

제 몫의 학습지를 했다.

서로 생각을 나누어봐,라고 하면

제가 적은 답을 보여주었다.

물론, 다른 반도 그렇게들 한다.

그러면 나는 다가가서 장난도 치고

진지하게 조언도 하며 최대한 방향을 이끌어준다.


그런데 그 반은, 그 조차도 잘 통하지 않았다.

어떤 마음인지 알 길이 없도록

입을 꾹, 다물었다.

어렵니? 하면 무응답.

이해했니? 하면 무응답.

적막한 교실엔 내 숨소리만이 울려 퍼질 정도였다.


그래도 늘 그럭저럭 시간을 채우고 수업을 마쳤다.

그런데 금요일은, 그럴 수가 없었다.


마음이 약해진 상태였다.

하필이면 글의 주제가 ‘상처가 주는 비언어적인 행동’에 대한 것들.

마음이 말랑해진 상태에서 만난 녀석들의

행동은 자꾸만 눈에 밟혔다.


“모둠별로 퀴즈를 맞혀서 우승팀에겐 마이쮸를 줄게.”


묵묵부답.


“모둠별로 자리를 돌려 앉아봐.”


드르르륵.


“00 이는 자리가 애매하니 저리로 갈까?”


조용히 자리를 옮기기만 함.


“얘들아. 1번 문제는 정답이 뭘까?”


딱, 두 명이 손을 들었다.


문제는 계속 진행되는 수업 속에서도 딱, 두 명만 손을 들었다는 것.

위축됐다.

애들이 재미없어하는구나,

아, 수업 망했다,

재미없구나, 작년에 재밌게 배워서 이젠 내 수업이 재미가 없구나.

이걸 어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별의별 잡생각이 다 들었다.

농담을 해도 웃지 않고

수업 이야기를 해도 반응이 없다.

미칠 것 같았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

정말 이게 맞을까,

내가 이렇게 이 반 수업을 해도 되나,

안 되겠다, 이 거 애들한테 솔직하게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가

수업이 딱 10분 남았을 때였다.


깔끔하게 이야기하고

남은 시간 동안 교과서 진도를 나가려 했다.

그러니까 내 의도는 분명


“얘들아. 아우~ 너네 말 좀 해. 답답해 죽겠어. 너네 수업 진짜 힘든 거 알지?”


였는데. 분명 그랬는데.


“얘들아. 하. 선생님이 이거 말을 하고 넘어가야 너네 반 수업을 할 것 같아.”

로 시작한 나의 속마음이 줄줄줄 흘러나오자마자,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오 마이갓. 여기서 울면 최악인데.

이게 울 일은 아닌데, 나 자신 왜 그래?

미쳤어? 하는데 눈물이 이미 멈추지가 않는 상태.

그러면서도 말은 해야겠어서

일단 막 뭔가를 말을 했는데

대충 이런 내용.


“아. 너희반 진짜 수업하기 힘들어. 내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모둠을 하라고 해도 안 해, 강의를 하면 자거나 딴짓을 해, 이해를 했는지 물어보면 대답도 안 해.

너희 1학년 때는 안 그랬잖아. 그런데 왜 그래? 도대체 뭐가 문제야? 대답 좀 해줘. “


하면서 눈물이 막 투투투 툭, 떨어지는 게 아닌가.

조절이 안된 눈물은 폭우 쏟아지듯 흐르고.

아이들은 당황하고.

그나마 그 반에 나랑 가장 가까운 S한테

그 와중에 “너 J한테 말하면 죽는다!”

이러면서 웃어넘기려는데

또 눈물이 멈추지를 않고.


결국, 화장실로 도망가서 간신히 진정을 하고 나서야

일단락되었다.

아이들에게 비밀을 부탁했지만

어디론가 퍼져 그 이후 4,5,6교시는 꽤 적극적인 반응에

힘입어 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하나, 나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음.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가르친다는 것은 지식을 알려주는 것 그 이상이라고 믿고

늘 아이들과 ‘국어’를 매개로

삶을 연결 짓고자 노력했다.


아이들 1학년 때 했던 모든 활동의 중심엔

아이들과 나의 관계가 있었다.

내가 무슨 멋들어진 수업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라는 선생님을 만난 아이들에겐

내가 ’ 선생님‘이 아니라, ’ 좋은 어른‘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뭐 그런 마음도 있고

아이들 하나하나와 선생님의 삶이 맞닿은 수업이

얼마나 의미 있는 울림이 되는지 믿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는 아이들과의 관계가

수업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사람.

아이들과 친밀해지고,

가까워지는 그 순간 수업의 시너지가 생긴다고 믿는 사람이다.

고생스러워도 글을 쓰고

편지를 건네고

수업 자료에 녀석들과의 추억을 싣는 것도

그 이유다.


그런데 유난히 올해는 여러 면에서 힘이 든다.

한 해를 걸러 만난 아이들과 보낸

즐거웠던 기억에 의지하며

올해를 보내고 있지만

수업의 재미?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물론 몇몇과는 티키타카가 잘 되긴 하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그 반에서 아이들과의 라포는 글쎄?


중3이라 그런지,

내 능력 부족인지.

아니면 내가 너무 환상 속에서 아이들을 만난 것인지.

그걸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난, 요새 정말 매일매일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다.

앞이 보이지 않고, 매일 손에 들린 손전등 하나로

한 치 앞만 겨우겨우 내딛는 마음이다.

솔직히 애들 앞에서 자주 쪼그라든다.

이런 기분이, 신규 이후 오랜만인듯하다.


내가 울자, 아이들은

“선생님, 울지 마요!” 하며 날 달랬지만

아이들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고

아마 그 반 수업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여전히 녀석들은 답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 반에선 내가 가장 목소리가 큰 사람으로

교실엔 내 숨결이 떠돌 것이다.


어떻게 해야,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그 답을 모르겠다.

어쩌면 이 학기가 끝이 나, 아이들이 졸업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답을 못 찾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는 하지 않을 것인데,

가령 다른 반은 하고 그 반은 하지 않는,

다른 반은 게임을 하고 그 반은 강의만 하는.

그런 식의 수업은 하지 않을 것인데

마음에 세워진 거대한 장벽을,

녀석들과 나와의 거리를

어떻게 허물 수 있을까, 그게 참 고민이다.


생각을 정리한다고

글을 늦게 올렸는데

결국 정리는 안되었고

답은 없다.


인생이 수학이라면

정답으로 가는 공식이 있겠지만

그럴 리 만무하니

그냥 부딪히며 찾아볼 수밖에.


마음은 무겁다.

이 마음도 모르고

가을 아침 하늘은 맑고 푸르다.


잠시 하늘을 빌려,

마음속 어두운 구름 걷어내고

오늘을 살아야지.




추신:


이런 고민을 말하면

누군가 말한다.

애들 원래 그래.

조용한 게 낫지.

시끄럽고 소란스러우면 그건 얼마나 힘든지 알아?


당연히 안다.

내가 말하는 건

시끄럽고 조용하고의 차원을 떠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가 가능한

수업을 하고 싶다는 것.


그런데 지금은 그걸 못하고 있다는 것.


욕심을 내려놓을지.

고작 교과 선생 주제에

요새 아이들에게 그런 거 기대 말고

적당히 지낼지,

아니면 그래도 한 걸음씩 가볼지,

아직 고민 중이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4화[번외] 차라리 선 넘는 드립이 낫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