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의 시작

나의 이야기

by 안녕

“글을 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의 내밀한 글쓰기 프로젝트는 푸르름이 익어가는 5월, 교무실 책상에 살포시 놓여있던 편지 한 통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망설이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일은 늘 레고블록처럼 쌓여갔으며 개인적인 삶엔 1분 1초의 여유도 없이 해야만 하는 것들이 가득했다. 심지어 남학생과 1:1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 자꾸만 멈칫, 하게 됐다.



고민이 길지 않았던 것은 글쓰기 메이트이자 나의 제자 J라는 아이를 믿었기 때문이다. 녀석과 함께라면 어쩌면 색다른 글쓰기를 할 수 있겠다, 메마른 그때의 내 마음에 감성 한 스푼, 심어줄 수 있겠다 싶기도 했고. (J는 내 편견을 깨 준 남학생 세 명 중 한 명이다.)



주제는 ‘사람’이었다. 마침 졸업을 앞둔 녀석은 자신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적고 싶어 했다.



매주 2회, 함께 정한 주제에 관한 글을 써 메일로 주고받았다. 만남은 불규칙적이었으나 꾸준했고, 더러는 밀리기도 했으나 멈추진 않았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은 소중한 글감이 되었다. 함께 아는 사람, 나만 아는 사람, 혹은 친해지고 싶은 사람. 뻔할 것 같았던 주제는 각자의 손끝에서, 각자의 삶 속에서 새로운 옷을 입고 글로 탄생했다.



이따금씩 새벽 2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도착한 글을 읽으며 나는, 신규 시절로 돌아갔다가 중학생이 되었다가 때론 먼 훗날의 나의 모습을 앞서 보기도 했다. 체력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마음은 풍요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아이들 앞에선 짐짓 어른스럽게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정말 마음을 터놓는 사람은 고작 2명도 채 되지 않는다. 젊은 시절, 사람이 좋아 경계 없이 사귀던 관계가 상처가 되어 돌아오자 마음의 문을 많이 닫았다. 일로 만난 사람들에게는 결계를 높이 세우고 곁을 주지 않았다.



글을 쓰며 마음속 깊이 숨겨둔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말로 표현하지 못해 응어리져 굳어 버린 감정을 꺼내 글로 표현할 때면 찢어질 듯 아파 왔다. 어떤 때에는 에세이로 풀어내기 힘들어 소설의 틀을 빌려온 적도 있다. 소설 속에선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았다.



여름방학 때 썼던 글은 쓰면서 날아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시절 작품 속에서 나는 혹은 나의 사람들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고, 격 없이 놀기도 했다. 그 안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나의 사람들을 보며 흐뭇함을 느낄 때면 시간은 어김없이 새벽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른’이라는 위치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갈수록 마음속엔 생채기가 났다. 제대로 연고 한 번 발라주지 못한 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방법을 배웠던 나에게 J와의 글쓰기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덕분에 수십 년 전 토닥이지 못한 나의 마음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전한다. 덕분이다.



교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 깊어졌으니 이것은 부작용이다. 글을 쓰는 4개월 동안 가르치는 일보다 쓰는 일이 너무나 좋아 홍역을 치렀다. 언제고 교사를 그만두게 된다면 8할이 지금 이 글쓰기 때문이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평생 혼자의 힘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다. 내가 잘해서, 내가 잘 나서.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롯이 ‘나’만 바라보던 내 곁엔 나의 사람들이 언제고 함께 했음을, 이제는 안다.



앞으로 펼쳐질 글들은,

나와 나의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의 여정이다.



그리고 겨우, 이제 시작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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