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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보자 Mar 01. 2020

서울에서 집 구하기

내 집은 어디에 있을까

서울에서 살아갈 생각을 했을 때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은 주거 문제였다. 집을 구해야 짐도 갖다 놓고 잠도 자고 씻고 출퇴근도할 수 있기에 가장 급하게 해결해야 될 문제였다.


부동산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니 몇 년 사이에 아파트 가격이 급등한 강남은 말할 것도 없고, 사무실 주변의 아파트는 대부분 9억이 넘었다. 보는 순간 한 숨을 내쉬었고,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투룸이나 오피스텔로 목표를 바꿨다.


하지만 집을 알아보고 계약하는 과정은 부먹으로 먹을지 찍먹으로 먹을지를 결정하는 것처럼 나름 심각하지만 순간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기에 우선은 동생네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다행히도 동생은 결혼 후 일상의 터전을 서울로 바꿨고, 여기서 몇 년째 잘 살고 있었다. 내가 살게 되어 제수씨가 혹시 불편할 수 있는 것도 고려해서 상경하는 첫날, 봉투에 진심 어린 마음을 담아 제수씨에게 전달했다. 보름달처럼 밝은 표정을 보아하니 먹혔다는 확신이 들었고, ‘이제 편하게 있어보자’라는 생각을 하며 여유 있게 집을 알아보려 했다.


그런데 웬걸 박 씨 물고 돌아온 제비가 행운을 갖고 오듯 봉투 들고  내가 오니 동생 집에 경사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제수씨의 임신. 그 날 저녁 축하의 파티를 했지만, 다음 날부터 나는 바빠졌다. 여기서 오래 머물다간 객식구에서 존재 자체가 민폐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력하게 왔다.


집 구할 때 고려해야 될 조건들에 대하여 검색해봤다. 채광, 결로, 소음, 편세권, 스세권, 맥세권 등등 개인의 취향에 따라 우선시하는 사항들이 백만 가지였다. 이렇게 따지다간 올해 안에 집을 구하지 못할 듯싶었다. 그래서 나름의 기준을 정하기로 했다.


깔끔한 투룸

내가 근무하는 곳은 5호선의 심장 같은 역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이 역은 심장에서 순환하는 혈관처럼 양 노선에 타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많다.


유동인구가 그리 많다 보니 당연히 전세도 비쌌다. 웬만한 매물은 3억~4억 이상이었다. 아파트도 아닌 빌라나 오피스텔 가격이 이리 비싸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저 정도 가격이면 내가 살았던 도시의 위치 좋은 곳에 아파트를 한 채 살 수 있는 돈이다.


역시 서울의 집 값은 지렸다.


어쩔 수 없이 원룸에 살아야 하나 고민이 시작되었다. 전에 살던 곳이 원룸이었다.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날 가능성이 있었기에 잠시만 살려고 했다.


하지만 인생이란 예측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계획을 틀어지게 만드는 것이기에 그곳에서 3년을 살게 되었다. 처음에 원룸에 살 때는 짐이 별로 없었다. 살다 보니까 꼭 필요한 것들이 점점 늘어났고, 갖고 싶은 것들도 하나 둘 씩 사게 되면서 어느새 더 이상 물건을 놔둘 공간이 사라져 버렸다.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이리저리 고민을 하며 나름 만족스레 살아왔지만, 원룸 생활은 너무 답답하다는 생각도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그래서 원룸보다는 투룸에서 살고 싶었다. 투룸이 안된다면 1.5룸이 마지노선이었다. 자는 곳과 옷을 비롯한 잡동사니들이 있는 곳이 분리되었으면 싶었다.  


물론 인테리어 관련 앱을 보면 오픈형 원룸 같은 곳을 참으로 실용적이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서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회사 근처에는 합리적 가격대의 커다란 원룸이 없었다. 우선 원룸의 전세보증금이 2억 원대였다. 방 한 칸에 2억 원이라니.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슬퍼진다. 그래서 회사 근처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역세권

회사 근처에서 살지 않기로 결정했기에 지하철로 출퇴근을 해야 했다. 물론 가까우면 좋겠지만, 중심가에서 가까울수록 가격대가 비쌌기에 적정 가격을 찾아서 점점 멀어지는 것은 어느 정도 감수하려 했다.


내가 집을 구하는 사실을 알고 사람들이 팁을 하나씩 줬다. 무조건 가까운 역세권을 알아보기보다 멀더라도 지하철 환승하지 않는 역세권이 좋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 말에 대해 실감하지 못했는데, 출퇴근하면서 환승이란 것이 얼마나 사람 지치게 하는지 몸소 알게 되었다.


무조건 5호선 근처의 집이어야만 했다. 동쪽 끝으로 가도, 서쪽 끝으로 가도 5호선만 탈 수 있으면 되었다.


집을 구하다 알게 된 사실은-서울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강남 보다는 강북이, 강동 보다는 강서가 집 값이 싸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강서 방향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공덕을 지나 목동을 지나 적정 가격대의 물건을 찾으러 다음 역으로 향할수록 내 출퇴근 시간도 늘어만 갔다.



주차 가능

작년까지는 차로 출퇴근했다. 내가 살았던 그곳은 서울처럼 교통망이 촘촘하지 않아서 가장 빠른 이동 수단이 자차였다.


올해는 전과 달리 차를 사용할 일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았다. 지하철이 이동함에 있어 가장 빠르고 시간을 맞출 수 있었고, 도로 위의 자동차는 너무도 많아 느렸다. 게다가 난 차가 막히면 괜스레 기분이 불편해지는 성향이라 특정 시간대에 운전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한동안 집과 회사만 오갈 나의 미래가 너무도 선명했기에 내 차는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수면을 취할 운명이 되었다. 그래서 안심하고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3가지 조건만 충족하면 되었기에 매우 간단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집을 알아보는 과정이 그리 쉽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개념과 공인중개사분들이 생각하는 개념에 확연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투룸이라고 소개해 준 곳은 중간 사이즈의 원룸을 정확하게 반으로 나눈 느낌이었다. 집으로 데칼코마니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분 거리에 있다는 역세권이라고 소개해 준 곳을 가보면 내 걸음걸이로 17분이나 걸리는 곳이었다. 서울 공인중개사분들은 축지법 스킬이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주차 가능하다고 알려준 곳은 틀린 말은 없었다. 다만 7~8가구당 차량 1대를 될 수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먼저 주차한 차가 어딘가로 나가기 위해서는 뒤에 주차한 차주분한테 차 좀 빼 달라고 양해를 구해야 했다. 물론 차를 이용할 일이 그다지 많을 것 같지 않지만 나갈 때마다 "죄송한데 차 좀 빼주시겠어요."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퇴근 후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한 집을 찾았다. 이 곳은 출퇴근 시간이 도보 시간을 제외하고 지하철로만 30분이 걸리는 곳이었다. 도어 투 도어로는 45분 정도. 원래 계획에서 많이 벗어났기에 스스로 납득할만한 이유를 만들어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1시간 출퇴근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야
회사 근처에 살면 야근 많이 할 수도 있어


직장 동료들이 왜 거기까지 갔냐고 물을 때마다 이런 대답을 했지만, 곧바로 다른 반박이 들어왔다.


그건 원래 서울에서 살던 사람들 얘기고,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다 여기 근처서 살잖아


거기 산다고 안 부를 것 같아? 최소한 수원에서는 살아야 안 부르지


그들이 이렇게 말을 하면 난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기에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도 않는 모드로 전환해 버렸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어찌할 수가 없다. 난 계약금을 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후회가 1도 안된다. 집도 마음에 들었고, 주변에도 스타벅스도 있고, 다이소도 있고, 있을 건 다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았던 곳에서는 스타벅스 있으면 좋은 동네였다. 순도 100% 자의적 기준이지만. 나중에 서울은 동네마다 스타벅스가 있고, 3개 이상 되는 곳도 부지기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서울의 클라스는 달랐다.


집을 알아보는 과정이 번거롭고, 좌절도 겪게 했지만, 그럼에도 첫 서울살이라는 로망이 날 설레게 한다.


살 다 보면 보이지 않았던 문제점들도 보이고, 생각보다 많은 불편함도 느끼겠지만, 반대로 몰랐던 장점들도 알게 되고 소소한 꿀잼들도 알아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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