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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리 Oct 09. 2023

시내림의 밤

#12

2023.9.30

제목: 시내림의 밤

뭐라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이건
신내림 아니 시내림이다

하필이면 이렇게 밤늦게 아니 새벽에
곯아떨어져 있는 게 자연스러울 시간에

시가 불현듯 찾아왔다 내리 삼일째
내 집처럼 신발을 벗고 들어앉은 손님에게

졸린 눈과 쓰린 속으로 차를 한 잔 내온다
보답으로 쓱 내민 빈 종이 같은 화면에

눈이 맑아지고 정신은 기민해지며 손가락은
입 밖으로 나올 말보다 빠르다

요가를 하려고 깔아놓은 매트 위에 누웠는지
앉았는지 알 수 없는 자세로 시는 쓰인다

오장육부가 공장 문을 닫아 시스템을 점검하고
뇌 세포들이 소중한 체력을 기르는 시간에 기어코

내려온 시를 조심조심 받들어 모신다 피로한 건
잊은 얼굴로 웃으며 장박도 가능합니다 시 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편히
머물다 가세요
흐아아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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