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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꾸 Aug 24. 2020

시리도록 아름다운 산토리니

여행 읽기

 새하얀 벽들은 눈부시게 빛났다. 흰색이 이토록 아름다운 색이었던가. 거기에 푸르른 바다를 닮은 파란색 지붕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 산토리니는 흰색과 파랑이라는 더없이 훌륭한 색의 조합만으로도 여행자들의 설레임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산토리니. 그곳은 내게 '환영(幻影)'과 같은 곳이었다. 가버리면 실체가 없어질 것만 같아 아끼고 미루고만 있던 여행지였다. 특별한 여행만이 자격이 있다 생각했었다. 그래서 결혼식 날짜보다 산토리니행 날짜를 먼저 잡아버렸다. 남편은 그런 내가 자기와 결혼이 하고 싶은 건지 산토리니가 가고 싶은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고 한다. 산토리니는 나의 신혼여행지로 한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당당히 선발되었다.    


절벽을 따라 자리 잡고 있는 장난감처럼 예쁜 집들, 시원한 박하향이 나는 듯한 푸르고 넓은 바다가 황홀했다. 저녁이면 부드러운 음악소리와 달그락 거리는 식기 소리가 레스토랑 밖으로 흘러나왔다. 까만 밤하늘에 뿌려져 있는 별을 보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골목 사이를 걸었다. 그곳은 눈이 시리게 아름답고 꿈꿔오던 모습 그만큼 충분히 감탄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끼던 사탕을 다 까먹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은 지울 수가 없었다. 현재는 그토록 달콤하고 행복했지만 이제 더 이상 꿈을 꿀 그곳이 없어져 버린 미래에 대해 빈 가슴이 요동을 쳤다.    


 산토리니를 여행한 지 딱 십 년이 되었다. 그곳은 더 이상 내게 잡히지 않는 무지개 너머의 이상적인 곳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설레고 그립고 사랑스러운 장소임은 틀림없다. 사라진 막연한 동경 대신 행복한 추억들이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언젠가 다시 한번 그곳에 가게 된다면 들뜬 마음에 미처 마주하지 못했던  작은 섬의 속살들을 찬찬히 느끼며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다.


오늘따라 그 푸른 바다가 마음 시리도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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