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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꾸 Sep 06. 2020

찬란했던 그 시절을 다시 한번..

여행 읽기

앙코르와트 투어는 아직 밤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어두운 새벽에 시작되었다. 알람 소리에 옷을 주섬주섬 몸에 끼워 넣고 전날 약속한 툭툭이 기사를 만나러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호텔에서는 조식 뷔페를 먹지 못할 우리를 위해 정성껏 도시락을 싸서 건네주었다. 6만 원 남짓되는 돈으로 누리는 5성급 호텔의 호사라니.. 캄보디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밖에 툭툭이 기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우리가 호텔 정문을 나오는 것을 보자 반갑게 손을 흔들며 툭툭이에서 내렸다. 

어둠에 잠들어 있던 하늘이 점차 푸른빛을 띠며 밝아왔다. 툭툭이는 사방이 큰 나무로 우거진 숲길을 가로지르며 시원하게 달렸다.  상쾌한 새벽 공기가 콧구멍으로 들어와 머릿속을 몸속을 구석구석 정화시켜 주었다. 


40여분을 달려 툭툭이는 베일에 갇혀 있던 신비로운 앙코르와트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이제 곧 해가 뜰 시간이라 일명 포토존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도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해가 떠올랐다. 구름이 많아서 빠알갛고 동그란 해를 보지는 못했지만 일출의 기운이 앙코르와트에 내려앉는 것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신비롭고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일제히 한 손에 든 카메라를 치켜들어 올렸다. 나도 시시각각 변하는 일출광경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았다. 


뜨거운 해가 어느 정도 우리 머리 위에 떠올랐을 때쯤 사람들은 각각 흩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도 호텔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아침 요기를 할 작정으로 앙코르와트 입구 쪽 벤치를 찾아 나섰다. 그런 우리를 졸졸 따르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관광객들에게 목걸이를 파는 동네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의 떡진 머리와 씻지 않은 꼬질꼬질한 얼굴을 보니 아직 그들이 자고 있어야 할 너무 이른 시간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중에는 아동이라고 부르기에도 너무 어린 유아들도 섞여있었다. 형과 언니를 따라 이 꼭두새벽에 일터로 출근을 한 아기들. 

그동안 동남아를 여행하며 무수히 많은 아이들이 교육보다는 노동으로 그들의 유년시절을 소모하고 있는 것을 보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유난히 더 기가 찼다. 그 연령이 어려도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말도 못 배운 아기들이 우리에게 목걸이를 사라고 큰 눈을 껌벅이며 들이밀었다. 가난은 이토록 슬프고 마음 저리는 것이다. 


우리가 주는 돈이 그들에게 독이 될지 득이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여행자들이 건네는 1-2달러의 달콤함은 그들에게 교육의 희망과 동기를 오히려 잘라버릴 수도 있었다. 구걸하며 누리는 만족이 그들 인생에 발전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선뜻 지갑을 열기가 힘들었다. 


오만가지 생각으로 입구를 빠져나와 벤치를 찾아 앉았다. 호텔에서 싸준 도시락은 부족함이 없었다. 빵과 과일, 음료수와 디저트까지 혼자서 다 먹기에 양이 차고 넘쳤다. 벤치 위의 진수성찬을 즐기려고 하던 찰나, 계속해서 우리를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우리의 도시락에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서 있던 세 명의 여자아이들.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그들은 거침없이 다가왔다. 손으로 배가 고프다는 시늉을 하며 음식을 먹고 싶다고 표현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의 도시락을 원하는 아이들은 그 소녀들 뿐만이 아니었다. 

하.... 그 시선에 둘러싸여 불편한 식사를 시작했다. 소녀들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다. 마음이 복잡했다. 한없이 불쌍하기도 하고 이러한 상황이 화가 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뭐라 설명하기 힘든 뒤죽박죽 된 감정을 음식과 함께 삼켰다. 하지만 삼켜도 삼켜도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가 않았다. 

도시락을 다 비우는 걸 포기하고 우리는 입을 대지 않은 깨끗한 음식들을 따로 담았다. 끝까지 무표정으로 음식을 응시하고 있던 소녀들을 불렀다. 그리고 우리가 담은 음식을 건네고 나머지는 모아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자리를 일어났다. 


다음 장소로 가기 위해 툭툭이를 탔다. 음식 주변으로 모여 있는 소녀들이 보였다. 그중 한 명이 쓰레기통을 뒤져 방금 우리가 먹다 버린 음식을 꺼내는 것을 보았다. 숨이 턱 막혀왔다. 

평소에 우리가 남기고 버리는 음식의 양을 가늠해보았다. 한 곳에선 차고 넘치는 것이 다른 쪽에선 적은 양도 이토록 간절하다. 이 모순과 불공평을 직시하는 것이 힘겨웠다. 많이 가진 쪽이 나와 우리 아이들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또 한없이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툭툭이는 왕왕 소리를 내며 달려 나갔다. 앙코르와트가 점점 멀어져 갔다. 한 때 찬란한 번영을 누렸던 왕조의 산물인 거대한 사원 앙코르와트. 그 눈부신 역사의 흔적 앞에서 그들의 후손들이 관광객들에게 구걸하며 생을 이어간다. 참 아이러니 하기 짝이 없다. 

그들의 선조들이 일구었던 화려했던 그 시절을 동경하며 그들이 언젠가는 다시 빛날 수 있는 날이 오게 되기를 바란다. 앙코르와트가 그들에게 그 힘을 전해줄 수 있는 열쇠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희망하며 멀어지는 앙코르와트의 풍경을 그리고 그 앞에 소녀들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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