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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꾸 Aug 02. 2020

루앙프라방

여행읽기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조용한 골목길들을 지나 메콩강 옆으로 줄지어 늘어선 식당 중 한 곳으로 들어갔다. 

 라오스는 볶음밥이 참 맛있다. 한두 가지 채소와 달걀이 다인 것 같은데도 신기하게 감칠맛이 나고 입에 착착 붙는다.  볶음밥과 몇 가지 다른 음식들을 주문하고 앉았다. 식당 옆으로 흙빛 메콩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강물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없이 앉아있었다. 

  방금 막 잠을 깨서 그런지 아직 꿈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다른 테이블에도 게으른 여행자들이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혼자 혹은 둘씩 앉아있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대화보다는 침묵의 시간을 가지며 흐르는 강물을 보고 명상에 빠져있었다. 


 여기는 그런 곳이다. 떠들썩한 대화보다는 공기 속에 떠다니는 적막함이 어울린다. 휘황 찬란 화려함보다는 소박한 흙길에 더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래서 이곳 루앙프라방에선 여행 계획 따윈 없었다. 사실 꼭 무엇을 봐야 한다는 곳도 없는 것 같았다. 

 오늘처럼  게으른 늑장을 피우며 일어나 대충 눈곱만 떼고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동네 주민처럼 돌아다닌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식당에 들어가 두 시간 동안 밥을 먹는다. 이곳 식당들은 탁자 앞에 큰 빈백을 놔둔 곳이 많았다. 거기에 비스듬히 기대고 누워 기둥에 걸린 티비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할 일 없는 백수가 따로 없다. 티비에는 주로 미국 드라마 프렌즈가 약속이나 한 듯이 방영되고 있는 곳이 많았다. 

 그것도 지겨우면 숙소에 와서 한국에서 가져온 책을 읽는다. 그러다 푸른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평화로운 낮잠을 잔다. 골목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나지막한 말소리와 큰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바람의 소리가 기분 좋은 자장가가 되어준다.


 저녁이 되면 하루 중 가장 분주한 야시장 구경을 나갈 수 있다. 갖가지 수공예품과 미술품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고 무엇보다 길거리 음식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낮이면 백수처럼 백주대낮에 게으름을 피우다 해가 지고 나면 낮잠으로 충전한 체력을 야시장을 돌면서 다 써버 린다. 

그러다 너무 피곤하면 우리 돈으로 만원도 안 되는 금액으로 최상의 마사지를 받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여행자의 좋은 시절이다. 굳이 바쁘게 무엇을 보러 다니기 위해 열심일 필요도 없고 비싼 가격 때문에 원하는 메뉴 중 몇 가지만을 골라야 하는 고민도 없다. 적당히 심심하고 적당히 무의미하다. 몸은 나른해지고 정신은 가벼워진다.     

 루앙프라방에서의 시간은 내가 살아온 시간의 속도와 다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기 나라에서 시간에 쫓기며 살아온 사람들도 이곳에 오면 느린 시간에 맞춰 생체리듬과 행동들이 다시 세팅된다. 이곳은 주민들도 여행자들도 바쁜 사람이 없다. 루앙프라방을 둘러싸고 있는 신비한 힘이 시간을 붙잡아 두고만 있는 것 같았다.     

 루앙프라방에서 무엇을 보았냐면 특별히 본 것이 없고 무엇을 하였냐면 역시 딱히 뭘 한 것도 없다. 하지만 그곳에 다시 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대답은 yes이다. 이런 느낌은 나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며칠간 일과도 없이 어슬렁거려봤던 여행자라면 같은 마음일 것이다. 여행지의 낯섦을 주는 동시에 왠지 모를 친숙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

조용하지만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던 곳. 

루앙프라방... 루앙프라방. 그 이름도 부를수록 참 매력적인..... 루앙프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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