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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욕구, 건강하게 소화 완료!

나도 모르게 빠졌던 인정중독에서 죽기 살기로 빠져나왔다!

나는 원칙을 거스르는 것을 싫어하고 모범적인 성향이다. 학창 시절 리더직도 늘 맡아왔고 각종 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했고 성적도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선생님들, 교수님들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들으며 자라왔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인정욕구가 참 강했구나. 난 인정중독이었던 걸까?'라는 걸 인지하게 된 것은, 인정 욕구가 좌절된 시간들 덕분이었다.


한국대학생인재협회(이하 '한대협')에서 나의 인정욕구는 완전히 박살 났다. 꽤 오랜 시간 상사에게 인정받아보려고 애썼지만, 항상 좌절됐다. 반복적으로 혼났다. 공개적으로도 혼나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몇 시간이고 혼났다. 수치스러웠다. 이렇게 수위가 높은 비난을 들을 만큼, 내가 잘못한 것인지 생각해 보면 더 억울하고 속상했다. 매 기수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고자 계속 새로운 시도를 했건만, 건강을 해쳐가며 잠을 줄여가며 노력했건만, 내 여가 시간을 포기하며 살았건만, 당장 눈에 보이는 결실은 없었다. 힘이 쭉쭉 빠지더라. 반대로 한대협이 잘돼서 150명 이상 넘게 정착했을 때도 불안했다. 이게 유지가 안되면 또 비난이 쏟아질 테니까. 때로는 '결과'로 인한 칭찬을 듣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결과를 내야만 유지가 되는 칭찬이니까. 


그 시간 동안 내가 붙잡은 건 하나님이었다. 울부짖으며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다. 정말 나 때문에 한대협이 안 되는 거냐고. 어느 날은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다. 하나님이 나를 안아주시는 느낌과 함께 "내가 네 신실함을 안다. 때가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니 인내하거라."라는 메시지가 내게 들어왔다. 그 말씀을 듣고 얼마나 더 울었는지 모른다. 큰 위로가 됐고 하나님께서 나의 노고를 알아주시니 감사했다. 기다리면 된다고 하시니 소망이 생겨서 힘이 났다. '그래.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 주셨으면 됐지, 사람의 인정이 뭐가 중요한가.'라는 담대함이 생겼다. 


또 내 리더십에 대한 의심과 회의감을 확실히 없애버린 일이 있다. 매년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에서 새해 말씀을 각자 뽑는 시간이 있는데, 2016년, 2017년, 2년 연속 동일한 말씀을 뽑았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5:16)" 나를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셨다고 거듭 말씀해 주시니 내 자리에 확신이 생겼다. 사람이 쉽게 흔들 수 없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해 주시려고 나를 세우셨다는 말씀이 큰 힘이 됐다. 나를 고생시키시려고 세우신 게 아니라, 나를 복되게 하시려고 세우셨다는 것을 거듭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내 마음이 소생케 되었다. 지금도 이 말씀은 내 마음을 기쁨으로 충만케 한다.


결론은, 사람한테 인정받는 것이 목표가 되면, 마음이 병든다. 위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을 모두 느끼게 될 것이다. 수치심, 좌절감, 억울함, 무기력함, 우울함, 불안감, 부담감.. 어느 것 하나 유익한 감정이 없다.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이 한두 번은 가능할지 몰라도, 지속적으로 만족시키긴 어렵다. 그리고 그 어려운 걸 해낸다고 해도, 그는 '내가 실망시키면 어쩌지'라는 불안감과 압박감 속에 산다. 또한, 내가 인정받고자 하는 사람의 기준이 계속 올라가기도 하고 기준 자체가 변덕스럽게 변하기도 하기 때문에 그 장단에 맞추다간 비참해진다. 예를 들면, 상사가 100을 요구해서 겨우 100을 달성하면, 100은 당연해지고 그다음에는 200을 요구하는 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이 계속 올라가는 것이다. 그걸 쫓아가다간 그 끝없는 굴레 속에 병들고 말 것이다.


사람 말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걸 목표로 삼고 살게 된 이후, 이전보다 훨씬 건강하게 살고 있다. (혹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전지적 존재가 있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하나님이 애정 어린 눈으로 날 항상 보고 계신다는 사실이 나를 열심히 일하게 한다. 주님이 봐주고 계신 것만으로도 내 노력이 헛되지 않기 때문에 일할 때 신이 나기도 하고, 나태함을 경계하는 마음도 든다. 또한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하나님이 나를 세우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사람을 두려워할 것도 없더라. 사람들의 거슬리는 말들에 대해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내 감정을 건강하게 해소할 줄 아는 것 같다. 불쾌하면 불쾌하다고 상대방에게 부드럽게 말할 줄도 알고, 불쾌한 감정에서 예전보다 빨리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내가 네 신실함을 안다. 때가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니 인내하거라."

나는 이 말씀을 하나님이 올해도 내게 해주실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그러실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신실하게 살고자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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