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들이 6~7살일 때 코로나였다. 그래서 둘째가 6살 때 9월부터 2월까지 거의 어린이집을 보내질 않았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7살부터는 어린이집을 중단하기로 마음먹고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담임 선생님과는 잘 마무리가 되었는데, 어린이집 원장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원장님과는 평소에 인사만 나누던 사이였고 전화 통화는 처음이었다.
전화의 요지는 "왜 그만 다니냐"는 것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큰 아이(당시 초등학생)가 비대면 수업을 해서, 집에 같이 데리고 있으면서 제가 공부 봐주려고 한다. 지난 6개월 정도 제가 집에서 데리고 있으면서 공부를 가르쳐줬는데 아이가 많이 성장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아이를 왜 그렇게 키우냐. 벌써부터 무슨 공부냐. 애들이랑 같이 지내고 놀게 해야지."라고 말씀하셨다. '아이를 왜 그렇게 키우냐?'라는 말에 순간 정말 불쾌했지만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주 차분한 톤으로 이렇게 말씀드렸다. "원장님. 원장님께서 제 시어머니도 아니신데, 애를 왜 그렇게 키우냐 라는 말씀은 선을 넘으신 말씀 같은데요? 제가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순간 정적이 흐르더니, 그분이 말씀을 조심하시는 게 느껴졌고 통화가 잘 마무리되었다.
Episode #2.
어떤 분이 내 외모에 대해서 2번 지적하는 말씀을 하셨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말씀하시더라. 누군가와 내 외모를 비교하면서 내 외모를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두 번째는 나를 포함한 3명 정도 앉아 있는 자리에서 하셨다. 아무래도 계속 반복하실 것 같아, 낮은 목소리로 점잖게 말씀드렸다.
"제가 그 얘기 듣는 거 안 좋아하는 거 아시죠. 상대방이 불쾌해하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서 하시는 건 매너가 아닌 거 같은데요. 왜 매너가 아닌 걸 아시면서 계속하실까요"
순간 정적이 흐르더니, 그 이후로는 그 말씀은 안 하시더라.
대표적으로 두 가지 에피소드를 풀어봤다. 20대~30대 중반까지는 무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렇게 반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토론하듯이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 반박했다가 더 갈등이 심해지기도 했다. 내 의견이 수용되는 건 전혀 없었고 오히려 문제가 더 커지더라. 그렇게 되니 생활이 너무 피곤했다. 스트레스가 컸다. 그 이후로는 그냥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켰다.
그러다가 몇 년 전, 김주환 교수님이 쓰신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을 읽고 이 소통 방식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당시 <KRQ-53 테스트>라는 회복탄력성 지수 검사를 해 보았다. 대부분의 항목들에 대해서는 바람직하게 살고 있었지만 딱 한 가지 항목에 대해 내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화를 할 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주저할 때가 종종 있다.'라는 항목에 '그렇지. 나 하고 싶은 말 많이 삼키는데... 맞지.' 하며 소통에 취약한 모습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고치고자 그때부터 노력한 것 같다. 상대방이 선을 넘을 때, 상대방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나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가 한 이야기를 내 입으로 다시 말하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제 마음이 슬프네요. / 그런 말씀을 들으니 씁쓸한 생각이 드네요. / 저는 이런 상황에서는 ~~~ 한 말을 듣고 싶어요."등으로 내 생각을 말한다. (이는 소통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기법이기도 하다. You 메시지 기법이 아니라 I 메시지 기법이라고 유명한 화법이다.) 눈을 부라린다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어쩔 때는 웃으며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말하기도 했다.
난 이 소통 방식이 참 좋다. 상대방의 무례함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어 좋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면서 속으로 곪는 게 없어서 좋다. 그 순간은 정적이 흐를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 시간을 계기로 상대방과의 관계가 건강하게 오래 지속될 수 있어서 좋다. 많은 분들이 이 소통 방식, 솔직하면서 온유하게 이야기하는 방법을 잘 활용해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