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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의 음악 Oct 13. 2022

장애인 지하철 점거 시위와
경찰과 쌀포대

무관심보다 증오가 더 나은 증거 

얼마 전, 중증장애인들이 안전한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와 저상버스 도입 등) 출근시간에 전철을 붙잡고 시위를 벌였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잇슈가 되었다. 여당 대표가 나서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벌인 핵심 관계자와 텔레비전 공개 토론을 벌이기까지 했다. 여기서 이 문제를 넓게 논할 생각은 없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논했기 때문이다. 나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이동권 보장을 위해 조금 '과격해 보이는 시위'를 벌이는 대표적인 장애인 단체가 <노들야학>이다. <노들야학>은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야학교실이다. 대한민국에서 거의 유일한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배움터라 할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중증장애인들이 교육을 받을만한 곳이 잘 없다. 혼자 이동이 가능한 정도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불편하나마 일반 학교에 다닐 수 있다. 그리하여 박사도 되고 판사도 되고, 교수도 되지만 혼자서는 이동이 불가능한 중증 장애인들은 교육의 혜택을 받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성인이 되어도 한글을 모르는 중증 장애인들이 많다. 이런 장애인들을 위해 야학을 열어 최소한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노들야학>이다. 텔레비전에 나와 젊은 야당 대표와 장애인 시위를 놓고 공개 토론을 벌인 사람이 <노들야학>의 교장 선생이기도 하다. 


시위 장애인들과 경찰


<노들야학>은 대학로에 있다. <노들야학>에 나와 공부하는 중증장애 학생들은 그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런저런 시위에 참 많이 참여한다. 출근길 지하철 점거 시위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들이 버스 앞을 가로막거나 전철 선로를 점거한 채 과격한 시위를 벌이면 가장 먼저 달려와 정면 승부를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경찰들이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장애인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경찰들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때로는 멱살잡이를 하거나 거친 몸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이것이 <노들야학>의 중증장애인 학생들과 경찰의 기본적인 관계다. 

   

중증장애인들의 밥


대한민국 장애인들은, 특히 중증 장애인들은 대체로 가난하다. 장애가 중하다 보니 경제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생기는 당연한 결과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노들야학>에서는 공부하러 온 중증 장애인들에게 점심 한 끼를 제공해준다. 요리는 비장애인 자원봉사자들이 하고, 요리에 들어가는 다양한 식재료들은 후원과 기부와 구입을 통해 충당한다고 한다.  


언젠가 <노들야학>에 간 적이 있다. 7,8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그때도 지하철 선로를 점거한 채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중증 장애인들의 과격한 시위가 심심찮게 벌어지곤 했다. 당연히 그 시위의 핵심 주동자들은 <노들야학> 중증 장애 학생들이었다. 그날 교장 선생님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노들야학 복도를 지나는데 한쪽 구석에 쌓여 있는 쌀포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건물 안에서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기도 했다. 어디선가 중증장애 학생들을 위한 점심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내 시선이 쌀포대에 머무는 것을 본 교장 선생님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요 옆 경찰서에서 보낸 준 겁니다." 

"경찰서요?"

"네, 경찰서에서 쌀하고 부식 자주 갖다 줍니다."


나는 경찰과 쌀포대와 <노들야학>이 얼른 연결되지 않았다. 장애인들과 경찰 하면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노려보거나 경찰들이 시위 장애인들을 빈 쌀포대처럼 질질 끌고 가는 모습부터 머리에 떠올랐다. 그런데 그들이 <노들야학>에 쌀포대를 갖다 주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 사실이라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자주 만나다 보면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자주 '만나는 것'이다. '왜 만나는지'는 그다음이다. 경찰들이라고 시위하는 장애인들이 좋게 보일 리 없을게다. 자신들을 힘들게 하는 그들이 미웠을게다. 때로 성질 더러운 경찰 중에는 장애인들을 향한 '증오'의 감정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비록 시위자와 시위 진압자로 만나지만 중요한 것은 '만난다'는 사실이다. 그런 식으로라도 계속 만나다 보니 경찰들은 장애인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런 요구를 하는지 자꾸 듣게 된다. 왜 하필이면 그 바쁜 출근시간에 지하철을 점거해 수많은 선량한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고 욕을 바가지로 먹는지도 듣게 된다. 그렇게 자꾸 만나 자꾸 그들의 말을 듣다 보면 경찰과 장애인 사이에 있던 어떤 것들이 조금씩 사라지게 된다. 바로 '편견'이다. 


편견이 조금씩 사라진 자리에 돋아나는 새살 같은 것이 관심이다. 그러자 시위 진압은 진압이고, 장애인들이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된다. 그것이 당장에 필요한 쌀이요 부식이란 것을 알게 되자 경찰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쌀포대를 마련해 <노들야학>에 가져다주었던 것이다(경찰의 쌀포대가 정확하게 어떤 경로를 통해 형성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그 쌀로 <노들야학> 중증 장애인 학생들에게 밥을 해서 먹였을 것이고, 그들이 그 밥심으로 지하철을 점거해 시위를 벌인다면 경찰은 '배후 조종자'쯤 될 것이다.   


편견은 만나지 못할 때, 무관심할 때 가장 왕성한 생장력으로 거대해지고 강해진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놓여있는 거대하고 강한 편견이란 괴물은 이들이 서로 만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나야 한다. 이유와 형식은 그다음이다. 자꾸 만나야 한다. 그래야 편견을 깰 수 있다. 


만남이야 말로 편견을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임을 보여준 것이 경찰의 쌀포대가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시위대와 시위 진압자인 <노들야학>과 경찰을 연결해 주는 것이 쌀포대인 것이 도저히 설명이 안된다. 만약 이 말고 다른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게 알려주면 고맙겠다. 만남의 부담 없이도 편견을 깨트릴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내게도 참 유용할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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