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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 박사엄마 Aug 27. 2021

일단 나부터 좀 살고 보자.

내 아이의 장애 마주하기 10단계: ‘그냥 나’로 숨 쉬는 시간 만들기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 정도면 정말 잘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장애아이를 낳았다는 자괴감과 죄책감으로 우울에 빠져 오랫동안 허우적대지 않고 그래도 빨리 이성을 찾고 새로운 일상으로 이행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오만이고 착각이었다.

나는 사실 많이 아팠다. 둘째의 장애를 안 후 1년이 넘어가도록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낮에는 이성을 부여잡고 멀쩡히 생활하다가도 밤에 침대에 누워 혼자 깨어 있는 순간이 찾아오면 남몰래 울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밤에 아이가 자지 않고 계속 울거나 짜증을 내는 날들이 계속될 때에는 머릿속이 나쁜 생각들로 가득 찼다.


“우리 집이 15층인데 여기서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
“가족들 깨우지 말고 안방 베란다에서 조용히 뛰어내려야지.”
“나만 조용히 사라지면 가족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없으면 우리 엄마가 애들을 더 이상 안 봐주시겠지? 큰애는 아빠랑 어떻게든 살 텐데 둘째는 큰일이다.”
“둘째까지 남편이 혼자 건사하려면 일도 제대로 못하고 완전 빈곤층 되겠네.”
“남은 가족들이 힘들어지니까 둘째는 내가 안고 뛰어야겠다.”
“아니야. 얘는 무슨 죄야. 얘는 어찌 됐든 얘 인생 살아야 하니까 나 혼자 뛰어야겠다.”
“아… 안 돼. 어찌 됐든 내가 사라지면 앞길이 창창한 우리 큰애 인생이 한 방에 나가떨어질 거야.”
“큰애를 위해서라도 지금은 안 돼. 애 인생 망칠 수 없어.”
“아… 근데 카드 리볼빙!!! 가더라도 리볼빙 남겨놓고 가면 안 돼. 몇 달 빠짝 갚아놓고 가야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속이 곪고 있었던 것이다.

밤마다 귀에 거슬리는 데시벨로 소리를 질러 대는 둘째를 어느 순간부터 안아주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우는 아이를 영혼 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매일 밤 이 같은 끔찍한 생각들을 순차적으로, 반복적으로 재생했다. 머릿속에서는 몇 번이고 베란다 창문을 열고 내 몸을 내던지는 시뮬레이션을 영화처럼 그려보기도 했다. 아이들을 봐주시는 우리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시는 것도 마음이 안 좋았는데, 나만 없어지면 우리 엄마도 돌봄 노동에서 해방되겠다 그런 배은망덕한 생각도 했다.

그런데, 15층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하는 사람이 카드 리볼빙 따위를 걱정하다니. 나도 참 나다. 어이없지만 큰애의 인생을 망치면 안 된다는 것과 맞먹을 만큼 카드 리볼빙을 남겨놓으면 안 된다는 것 역시 나의 무한 반복 시뮬레이션을 멈추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리볼빙이라는 게 신기한 게 한 번 생기기 시작하면 잘 안 줄어든다. 몇 년째 늘 500만 원 정도가 리볼빙으로 남아 있는데 그렇다고 모아놓은 돈 깨서 갚고 싶지는 않은 희한한 마음이다. 카드사 배 불리는 데 나 같은 멍청이가 큰 공헌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무튼 낮에는 너무나 멀쩡하게 일도 하고 육아도 했지만, 밤만 되면 나는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꿈꿨다. 큰애에게 든든한 엄마가 되는 것 외에 내가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았고, 내 앞으로의 인생에 어떠한 기쁨도 즐거움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로서, 그냥 나로서 느끼는 즐거움. 엄마로서가 아닌 ‘그냥 나’로서는 더 이상 이번 생에 기대할 것이 없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냥 엄마가 되려고 남은 생을 살아가기에는 나는 나를 좀 많이 사랑했다. 유치원생 큰애가 “엄마는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라고 물어도 “너”가 아닌, “나”라고 대답할 정도로 나는 나 자신이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그냥 나’로서의 인생은 기대하기 힘들 거라 생각하니 자꾸만 나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 불현듯, 내 머리가 지금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지금 아프구나. 나 이대로 두면 안 되겠구나.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 했다. ‘그냥 나’로서도 즐거워지는 일, 그것을 찾아야만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즈음, 나는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해 뮤지컬의 세계로 인도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유튜브를 그렇게 애용하지는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정말 전혀 몰랐다. 세상에. 유튜브에 뮤지컬 영상들이 이렇게나 많이 올려져 있는 줄은. 정말 신세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때를 돌아보면 아직도 내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계기로, 어떠한 경로로 뮤지컬 영상의 바다로 빠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뮤지컬 영상들에 빠지게 된 이후로, 어느새 나는 그 생각을 더 이상 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베란다에서 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내 모습을 무한 재생하는 것, 그것을 드디어 멈추게 된 것이다.


결혼 전, 나는 동생이랑 같이 종종 뮤지컬을 보러 다녔다. 뮤지컬 관람은 돈이 많이 드는 취미생활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니느라 쭈욱 가난했던 나와 달리, 내 동생은 교대 졸업 후 바로 초등 교사가 되어 돈다운 돈을 벌기 시작했고, 돈 많이 드는 취미생활인 해외여행과 뮤지컬 관람을 즐기는 화려한 싱글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이끌려 나도 어쩌다 공연장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나는 첫 뮤지컬의 충격과 전율을 잊지 못하고 있다. (첫 뮤지컬은 류정한 배우 주연의 ‘지킬 앤 하이드’였는데, 정말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은 경험이었고 그 후 류정한 배우의 공연은 꼭 한 번씩 챙겨 보는 적당한 팬이 되었다.) 뮤지컬을 보는 동안은 같은 공간에 무대 위 배우들과 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고, 내 온몸으로 감동을 느끼며 ‘아, 내가 살아있구나!’ 하는 느낌이 뼈 마디마디까지 전해져 왔다.  

하지만 결혼 후 바로 큰애의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자연히 공연장과는 멀어지게 되었고, 그 사이 박사 논문을 쓰고, 또 바로 둘째를 낳고 둘째의 장애를 알게 되는 과정을 거치며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 까맣게 잊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잊은 그것을 한낱 유튜브 알고리즘 따위가 깨알같이 찾아내어 나에게 추천해 주었다. “너 이런 거 좋아하잖아.” 하고 말이다.

한동안은 출퇴근길 지하철을 오가며 정말 열심히 봤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영상들을 하나씩 섭렵했고, 그러면서 이번엔 박은태 배우에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한창 보러 다니던 과거에는 몰랐던 배우인데 이상하게 계속  배우의 영상에 자주 머물게 됐다. 노래와 연기에 진심이 느껴졌고, 보고 있으면  사람이  대신 울어주고 구나 하 생각도 들어 눈물이 나면서도 마음이 위로가 됐다. 그가 부르는  영혼 바람 되어​(누르면 영상으로 연결됨) 듣고 있으면, 언젠가 사라지고 없을 내가 화자가 되어 부르는 것만 같아 마음이 출렁였다.


영상만으로는 안 되겠어. 나 저 배우의 공연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하지만 시간도, 돈도 여유가 많지 않았다.

아이 둘을 키우며, 그것도 한 아이는 장애아이라 돈도 더 많이 드는 상황에서, 게다가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는 처지라 일하는 시간 외에는 아이를 또 부탁하기 미안한 상황에서, 공연장에 갈 시간을 부러 만드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망설이고 망설였다. 그래도 결론은 어떻게든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다는 거였다. 뮤지컬 공연을 보며 가슴 뛰던 예전의 나처럼 ‘그냥 나’로 다시 살아 있고 싶었다. 

결국 나는 남편의 생일을 핑계로 둘이 데이트한다고 엄마에게 양해를 구하고 2019년 7월, 박은태 배우의 버전으로 <지킬 앤 하이드>를 다시 봤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 순간, 그곳에서의 나는 그저 ‘그냥 나’였다. 무대 위 배우들과 음악과, 내 심장 소리만이 공간을 꽉 채우는 시간. 어설픈 장애아이의 엄마도, 아이 둘을 엄마에게 맡기고 자기 일 한다고 나다니는 나쁜 딸도, 일도 육아도 어느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해 자존감이 떨어진 강의 노동자도 아닌, 그냥 온전히 내가 되는 시간.

나는 살아 있었다.


그 후로 나는 박은태 배우의 팬이 되어 그의 공연을 챙겨 보는 사람이 되었다. 덕질은 지갑에는 해롭지만 정신 건강에는 이롭다 하던데 그 말이 백번 맞다. 아이가 아무리 나를 힘들게 해도 이제는 더 이상 뛰어내릴 생각은 하지 않는다. 뮤지컬 공연은 보통 두세 달 전에 미리 티켓을 예매해야 좋은 자리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인데, 힘들어 죽겠을 때 한 번씩 미리 예매해 둔 공연 관람일이 돌아온다. 그러면 가서 또 잠시 홀로 내가 되었다가 충전하고 돌아와 다시 또 티켓을 예매한다. 그렇게 또 몇 달을 버틸 힘을 얻는 것이다.
장애아이의 엄마뿐 아니라 육아노동에 지친 많은 부모들은 그저 자기 자신이 되는 법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기필코 사수해야 한다. 그저 내가 나로서 숨 쉬는 시간을. 나의 경우 그것이 뮤지컬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베이킹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수공예나 미술 활동, 혹은 캠핑 등이 될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엄마로서의 내가 아닌, ‘그냥 나’로서의 내가 좋아하는 무엇을 할 시간이 모두에게 허락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고된 하루를 보낸 이들이 베란다에서 뛰어내리지 않고 살아 있을 이유를 찾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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