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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 박사엄마 Apr 19. 2021

네 동생은 발달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거야.

내 아이의 장애 마주하기 9단계 : 비장애아이와 장애 이해 공유하기(2)

"엄마, 푸딩이가 장애인이야?" 


큰아이 일곱 살, 올 것이 왔다. 동생이 장애인인지 아이가 묻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천사 이야기로만 둘러댈 수는 없었다. (<-이전 편 참고) 큰아이는 제법 명철한 인지가 생겼고, 사실을 동화처럼 아름답게 꾸며 이야기하는 것은 나의 적성에 영 안 맞는 일이기도 했다. ( 큰아이 말 배울 때부터 사실 베이비 토크 하지 않고 어른의 말로 키운 귀염성 없는 엄마가 바로 나였다. ) 물론, 여전히, 아직까지도,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 준비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만큼, 내가 설명할 수 있는 만큼은 보태거나 빼지 않고, 또 꾸미지 않고 직설하기로 결심했다. 


나: 응. 맞아. 푸딩이는 장애인이야. 발달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대.
별솜: 발달장애? 엄마가 천사라고 했잖아. 천사가 장애인이야?
나: (미안타, 딸아... 엄마가 뻥을 좀 쳤...) 아, 천사가 장애인인 건 아니고. 그건 엄마가 별솜이 알아듣기 쉽게 얘기하느라 그랬지. 푸딩이는 병원에서 검사해 보니까 뇌가 좀 다르대. 
별솜: 그래? 뇌가 다르면 장애인이야?
나: 다 그런 건 아닌데, 뇌가 좀 다르게 생겨서 발달이 늦는 아이들이 있거든. 그걸 발달장애라고 해. 봐 봐. 뇌가 이렇게 막 쪼글쪼글해야 되는데 푸딩이 뇌는 좀 덜 쪼글쪼글하대. 그래서 크는 게 아주 느린 거지. 지금 두 돌 지났는데도 계속 신생아 같잖아. 뇌가 달라서 그런 거야.
별솜: 그래? 아이 귀여워, 우리 푸딩이!!! 엄마 나랑 그림 그리기 대결하자.
나: 어? 어 그래. 종이랑 색연필 갖고 와. 


휴. 일단 아는 만큼 뱉어냈다. 

그리고 동생의 출생의 비밀에 대한 엄청난 이야기를 들은 큰아이의 반응은 생각보다 훨씬 시시껄렁했다. 자기 궁금한 것만 쏙 물어보고 금세 팔랑팔랑 깨발랄하게 놀잇거리를 찾는 아이를 보며 잔뜩 긴장했던 내 마음이 스르륵 풀어졌다. 하아. 나는 대체 뭘 걱정한 걸까? 

아이에게 동생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전하며 아이가 충격받을까, 상처 받을까 걱정했었던 것 같다. 왜냐고? 당연하지 않은가? 우선은 내가 그랬고, 또 내 주변 지인들에게 그 사실을 말했을 때 그들에게서 온 반응도 그랬으니까.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지고 들은 이들이 적당한 위로의 말을 찾는 동안 어색하게 흐르는 짧거나 혹은 긴 침묵. 그 찰나의 침묵도 견디지 못하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농담이든 TMI든 마구 쏟아내는 나란 사람의 호들갑. 그리고 이어지는 걱정과 위로, (가장 듣기 싫지만 맨날 듣는) 힘내라는 이야기들. 즐거운 대화 후 밀려드는 마음속의 알 수 없는 공허와 외로움, 다음에는 이 얘기 꺼내지 말아야지 혹은 사람 가려서 꺼내야지 하는 내적 결단...... '장애'라는 말을 꺼냈을 때 이게 바로 대화의 정해진 수순이었다. 

어른인 우리는 안다. "아이가 장애인이에요.", "둘째는 발달장애가 있어요."라는 말이 가지는 함의를. 살면서 수없이 많은 편견들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학습해 왔고, 우리가 보아 온 세상에서 장애인이 되는 것, 장애인의 가족이 되는 것은 슬픈 것, 힘든 것, 힘내서 이겨내야 하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 장애인이라는 거, 발달장애라는 거... 아이의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구나. 


편견이 없는 순수한 아이의 눈에서 동생이 장애인이라는 것은 그냥 하나의 문장, 하나의 사실에 지나지 않았다. 아, 그렇구나. 끝. 속상할 것도, 상처 받을 것도 없다. 그저 그냥 그렇구나, 하면 그만인 것이다. 

설명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냥 정말 아는 그대로 사실만 이야기해 주면 되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동생이 장애인이니 네가 많이 양보해 줘야 한다, 엄마가 동생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얼마나 가엾고 불쌍하니, 잘해 줘야 한다, 사랑해 줘야 한다 등등 편견에 근거한 사족을 덧붙일 필요도 없다. 그냥 fact. 그거면 된다.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지는 아이의 몫이다.




그때 당시 내 설명을 제대로 듣는 것 같지도 않았던 큰아이는 이후, '장애'라는 단어를 상당히 민감하게 감지해 내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서점에서 직접 골라 온 책이 why 시리즈 <장애와 과학> 책이었으며, 이 책을 20번도 넘게 정주행 해서 어른들에게 후천적 장애와 선천적 장애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도 했다. 또, 지나가다가 '장애' 혹은 '장애인'이라고 쓰인 표지는 얼마나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내는지 모른다. 늘 차로 지나다니던 길 한 군데에 '장애인 보호구역'이 있다는 것도 나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큰아이가 발견해서 알려 주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는 내가 읽는 책에도 관심을 많이 보였는데,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있으면 "엄마 이것도 장애야?"라고 물었다. 당시 나는 (물론 여전히) 장애에 대해, 장애인의 삶과 장애 인권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가는 중이어서 내 책장에 장애 소재의 책들이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었는데, 아이는 나의 책장도 유심히 관찰했던 것 같다. 아이가 그렇게 물으면 나는 "응. 푸딩이가 장애인인데 엄마가 장애에 대해 잘 모르니까 공부하는 거야. 알아야지 더 잘 키울 수 있잖아. 우리 별솜이를 위한 책도 별솜이 아기 때 엄마가 많이 읽었어."라고 답해 주곤 했다. 


이제, 우리의 대화에서 '장애', '장애인'이라는 말은 더 이상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분(해리포터의 볼드모트)과 같은 단어가 아니다. 일상에서 툭툭 던져지는 여러 단어의 조각들 중 하나가 됐다.  


일곱 살 겨울쯤이었나? 큰아이가 말했다. 

"엄마, 우리 유치원에서 장애인이라는 말 아는 애가 나밖에 없다." 

나는 대답했다. 

"그래? 그 어려운 단어(힘주어 발음함)를 너는 알고 있는 거네. 와 대단하다. 우리 별솜이는 동생이 있어서 빨리 알았네. 친구들한테도 네가 잘 가르쳐 줘." 


이제 아홉 살, 집에 놀러 온 큰아이의 친구는 있는 그대로의 둘째를 보며 질문한다. 

"네 동생 다섯 살인데 못 걸어?" 

보통은 내가 개입해서 느리게 자라는 아이라서 그렇다고 설명해 준다. 딸과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장애'라는 단어가 왜 또 아이들 친구 앞에서는 그렇게 입에서 안 떨어지는지. 나도 참 아직 한참 멀었지 싶다.

하지만 앞으로는 아이들끼리의 대화에 끼지 않을 생각이다. 


자, 딸아. 네 동생의 다름에 대해 묻는 네 친구에게 너는 어떻게 대답할 거니? 엄마보다 더 현명한 네가 네 방식대로 잘 이야기해 보렴. 내가 너에게 배울게. 



비장애아이와 장애 이해를 공유하는 일은 아이가 커 감에 따라 계속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일곱 살의 아이는 세상의 편견을 학습하지 않아 사실 그대로 이해하고 흡수하는 게 오히려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가 생기고, 또래집단의 행동 양식에 영향을 받고, 사춘기를 겪으면서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어른이 되어 갈 것이다. 그때마다 동생의 장애는 비장애아이에게 또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오리라 예상된다. 나는 그저, 회피하지 않고 아이의 질문에 맨몸으로 마주 서는 것, 그리고 감춰진 아이의 속내를 그저 들어주는 것, 그것만은 꼭 해주려 마음먹는다. 나의 생각이 아이의 생각이 될 수는 없겠지만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을 피하지 않아야 비장애자매로 느끼는 혼란스러운 감정과 외로움이 좀 덜어지지 않을까? 내가 장애인의 엄마가 되어 느낀 그 외로움을 장애인의 언니로서 내 딸도 언젠가 분명 느끼겠지. 그때 우리는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이전 10화 네 동생은 걷고 말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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