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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 박사엄마 Mar 15. 2021

네 동생은 걷고 말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내 아이의 장애 마주하기 9단계 : 비장애아이와 장애 이해 공유하기(1)

"엄마, 푸딩이가 빨리 걸어 다니고 말도 했으면 좋겠어. 나랑 같이 놀게."


둘째의 장애를 알게 되었을 때 둘째는 두 살, 큰아이는 여섯 살이었다.

둘째의 장애는 나에게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지만 큰아이의 인생에도 크고 작은 바람을 일으키겠구나 싶어 가슴이 아팠다. 안 그래도 유독 영민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난 큰아이였다. 평소에도 나의 작은 기분 변화를 빨리 감지하는 아이였는데, 둘째의 첫 열성 경련 때 엄마가 놀라서 소리 지르며 우는 걸 목격한 다음부터는 더더욱 내 기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내 앞에서 꼬리를 살랑거렸다. 나는 울면 코가 빨개지기 때문에 울었던 흔적을 감출 수 없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 빨간 코를 큰아이에게 들킨 날에는 아이의 질문 공세를 피할 수가 없었다.


"엄마, 울었지? 엄마 왜 울었어? 푸딩이가 너무 약해서? 푸딩이가 약해서 속상해서 울었어?"

애교 반 진짜 궁금함 반이 섞인 아이의 질문에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늘 꼭 안아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그때 다르게... "아니야, 피곤해서 그래.", "어, 푸딩이가 자꾸 아파서 엄마가 속상해.", "괜찮아, 별솜이(큰아이)가 안아줘서 괜찮아졌어." 등등의 말들로 상황을 어찌어찌 모면했던 것 같다.


아... 이 아이에게 동생의 장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창  맘이 힘들 때에는  멘탈 잡느라 큰아이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나도 지금  상황을  모르겠는데, 나보다 훨씬 어린 '아이'에게 내가 모르는 걸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는 더더욱 모르겠더라. 동생이 약해서, 자주 아파서, 병원에 자주 입원해서 엄마가 속상하고 가끔 울기도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여섯  아이를 앞에 두고 고민이 깊어졌다. 어떻게든  상황을 설명해 주고는 싶었다.


우선은 나보다 이 길을 앞서 걷고 있는 선배 장애 부모들은 어떻게 했는지 찾아보았다.

처음 내게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은 인터넷에 연재되던 류승연 작가님의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이었다. 지금은 책으로도 출간이 되었는데, 발달장애 아들과 비장애 딸을 키우는 작가가 장애인 가족으로서 마주한 다양한 이슈들을 전직 기자 특유의 예리하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풀어놓은 글들이었다. 이후 작가의 다른 책 <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를 사서 읽었는데, 이 책에서 류승연 작가는 본인도 비장애 딸 교육에 혼란을 느끼고 있다고 털어놓았다(p81-87). 말로는 장애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 놓고는, 막상 딸이 "장애인이랑 뭐 하고 놀아?"라든지 "누가 장애인 아니랄까 봐."와 같이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을 경우에는 화들짝 놀라 어떻게 내 딸이 이렇게 인권 감수성이 없을까, 어찌 이런 장애인 비하 발언이 다른 사람도 아닌 내 딸 입에서 나올까 하며 작가 본인이 고심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말했다. 사실, 딸은 '장애인'이라는 말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배웠기에 자연스레 썼을 뿐인데 거기에 예민하게 반응한 작가 자신이 오히려 인권 감수성이 더 낮았던 것 같다고. 말로는 아니라고 해도 '장애인'이라는 말에 부정적 편견이 들어 있음을 어른인 작가는 알고 있었고 순수한 아이들의 말에도 예민해지는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작가는 '장애인'이라는 말을 가치 판단 없이 순수하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고 하며 해당 이야기를 끝맺는다.   

그렇다. 백분 동의한다. '장애인'이라는 말이 가진 어떠한 함의 때문에 그 말을 함으로써 대화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나의 큰아이에게도 자연스럽게 가치 판단 없이 이 말을 쓸 수 있도록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이 해리포터에 나오는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그분, '볼드모트'도 아니니까^^)

하지만 아이는 아직 여섯 살, 내 눈에는 한참 아기였기에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는 게 가능할지 잘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문제는 나였다. 내가 준비가 안 됐었다. 그 당시 나 자신도 아직 '장애인'이라는 말을 듣거나 입에 올릴 때 가슴이 쿵쾅거렸다. 지금이야 이렇게 '장애인'으로 도배된 글을 쓸 때도 아무런 마음의 동요가 없지만 둘째의 장애를 알았던 그 첫해에는 나에게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건 정말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울지 않고 둘째 이야기를 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괜히 큰아이에게 말을 꺼냈다가 엄마 우는 모습만 더 보여줘서 애를 혼란스럽게 하는 건 아닌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이 방식은 패스. 좀 더 내가 준비되면 하기로, 우선 접어 두었다.

 

다음으로 내게 또 큰 인상을 준 것은 존경하는 인친 님(인스타 친구^^),  <KBS 인간극장>의 "영서는 축복이에요" 편에도 나왔던 영서네(@yeongseoaung0) 가정의 방식이었다.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 가정에서는 사랑스러운 첫째 영서를 비장애 동생들에게 '천사'라고 이야기해 주었다고 한다. 인스타 피드를 통해서, 어리고 해맑은 꼬꼬마 동생들이 '천사' 큰언니에게 사랑을 뿜어내는 모습을 보면 정말 너무 예뻐서 내 생애 단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다산의 욕구가 마구마구 샘솟기도 했다. (난 원래 비혼주의자였고 만약 결혼하더라도 애는 하나만 낳아야지 했었던 사람인데 정신 차려 보니 애 둘 엄마가 되었다.)

그래. 우선 이렇게 시작해 보자. 내가 '장애인'이라는 말을 감정적 동요와 부정적 편견 없이 사용할 수 있기 전까지는 우선 '천사'라고 이야기해 보자. 결심이 섰다. 그리고 그즈음 우리의 대화는 대충 이런 식이었다.


별솜: 엄마, 푸딩이가 빨리 말했으면 좋겠어. 같이 놀고 싶어.
나: 엄마도 그래. 근데 그거 알아? 푸딩이는 사실 천사다.
별솜: 그럼 날개도 있어? 날개는 어디에 있어?
나: (예상 못했던 질문에 의도치 않게 소설 쓰고 있는 나... 아무 말 대잔치 시작) 인간 세상에 오면서 두고 왔지. 사실 그래서 아직 못 걷는 거야. 원래 인간 아기들은 돌 지나면 걸어 다니고 말하고 그러잖아. 근데 푸딩이는 하늘나라에서 날아다니던 천사라서 땅에서는 걷는 법을 잘 몰라. 그래서 좀 더 오래 걸리는 거야.
별솜: 엄마 진짜야?
나: (낚일 줄 몰랐는데 딸이 낚였다. 이 아무 말 대잔치를 믿는 걸 보니 아이는 역시 순수하구나 생각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더 뻥을 친다.) 그럼~ 우리가 예쁜 아기가 태어나게 해 주세요 기도했잖아. 그래서 하늘에서 특별히 제일 예쁜 아기로 골라서 보내 주시느라고 천사를 보내 주신 거야.
별솜: 응. 그래서 푸딩이가 예쁘구나. 우리 기도가 이루어졌네.
나: 그치? 근데 천사가 인간 세상에 와서 적응하려니까 좀 힘든 건 있지? 하늘나라에서는 아픔도 없고 병도 없고 그랬을 텐데... 여기 와서 이렇게 자꾸 아프고 그러니까. (이 부분에서 살짝 울컥... 애 앞에서 울지 않도록 꾹 참아야 했다.) 우리가 잘 도와줘야 해. 푸딩이는 천사라서 인간들처럼 말하고 걷고 하려면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그래서 지금 맨날 재활치료도 하고 있잖아. 걷는 법, 말하는 법 배워야 하니까.
별솜: 푸딩이는 힘들겠다. 그럼 나중에 크면 날 수 있어?
나: 인간 세상에선 못 날지. 근데 이거 봐봐. 얘 지금 이렇게 누워서 파닥파닥 하지? (뒤로 뻗치는 행동) 그리고 앉혀 놓으면 손을 팔랑팔랑 하지? 하늘나라에서 날던 버릇이 남아 있어서 그런 거다. (제대로 사기 치기로 작정한 에미)
별솜: 어 진짜네. 엄마, 푸딩이가 진짜 천사인가 봐.
나: 응. 그치? 우와, 엄마는 다 가졌네. 천사 딸도 있고, 요렇게 똑똑한 인간 딸도 있고. 고마워 둘 다.  

  

나의 비루한 기억력이 복기해 낸 대화는 약간 미화되었을 수 있음을 먼저 고백한다. 글로 써 놓고 보니 참 내 말투가 다정하고 상냥한 좋은 엄마 같은데, 사실 평소 나의 말투는 약간 냉랭하면서도 장난기 어린, 툭툭 던지는 말투에 가깝다. 대화를 글로 읽고 다정한 엄마를 상상하지 마시라는 이야기다.

아무튼 여섯 살 큰아이는 생각보다 더 순순히 동생이 '천사'임을 믿는 눈치였고, 할머니 따라 동생 재활치료실에 갔다가 대기실에서 내 동생은 천사고, 천사가 인간세상에 와서 걷는 거 배우느라고 얼마나 힘들겠냐는 이야기를 시전 하셔서 그곳에 있던 다른 장애아이 엄마를 울리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일곱 살이 되자 아이는 빠르게 똑똑해져 갔고, 산타할아버지가 진짜로 있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물론, 산타는 믿는 아이들에게만 선물을 주는 거고 안 믿는 애들은 산타가 선물을 안 줘서 엄마 아빠가 주는 거라고 또 진지하게 뻥을 쳤고, 그 이후 아홉 살인 지금까지도 산타의 존재는 여전히 믿고 있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둘째의 '장애인' 복지카드가 도착했으며, 우리 차량 앞에는'장애인' 주차 가능 스티커가 붙었다. 또, 대기 걸어 두었던 '장애인' 복지관에서 치료 순번이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유치원 방학이면 엄마나 할머니를 따라서 동생 치료실에 동행해야 하던 큰아이는 이제 병원의 재활치료실이나 아동발달센터의 치료실이 아닌, '장애인' 복지관의 치료실에 가서 엄마나 할머니가 '장애인' 주차구역을 찾아 주차하는 것을 목도하였다.


결국, 일곱 살 봄이었나? 여름이었나? 올 것이 왔다.  

"엄마, 푸딩이가 장애인이야?" 큰아이가 물었다.  



비장애아이와 장애 이해 공유하기는 사설이 길어, 두 편으로 나누어 올린다. 사실 진짜 장애 이해 공유는 다음 편에서 시작된다. 여기까지는 나의 마음의 혼란 속에서 아이도 나도 함께 방황하며 방향을 찾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함께 배우고 대화하며 길을 찾고 있다. 아홉 살인 큰아이는 요즘 소원이 세상의 모든 차별이 없어지는 거라고 한다. 기특하기는 하나, 어린 딸에게 너무 일찍 세상의 어두운 면을 보게 한 건 아닌지 살짝 속상하기도 하다. 이 단계는 영원히 끝이란 없을 것 같다.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하지 않고 서로의 이해를 공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다음 편에서 좀 더 이야기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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