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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 박사엄마 Feb 18. 2021

장애 아이, 당당하게 프레임 안에 위치해도 돼.

내 아이의 장애 마주하기 8단계 : 아이의 장애를 세상에 공개하기

“인스타그램? 그거 예쁘고 멋진 사람들이 자기 잘난 거 자랑하려고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잘난 사람들 구경하고 싶지도 않고 보여줄 것도 없고. 그래서 안 해.”


바야흐로 SNS의 시대이다. 세상과의 소통, 자기 PR, 지금 여기에 내가 존재함을 증명하는 것까지 모두 SNS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둘째의 장애를 알기 전 나는 SNS, 특히 인스타그램에 대해 굉장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예쁜 사진만 올리는 곳, 멋진 모습들만 보여주는 허세 가득한 곳.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들은 모두 예쁘고 멋지고 힙하고 자랑스러운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이런 편견을 가진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미 많은 이들이 인스타그램 사진에 허세가 가득하다는 지적을 해 온 바 있고,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인스타그램의 사진의 진실', '인스타그램 vs. 현실 사진 비교' 등의 제목을 단 이미지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그중 어떤 이미지에서는 (저작권 문제가 걱정되어 이미지를 따오지는 못했음) 인스타그램 프레임 안과 밖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는데, 예를 들면, 갓 구워진 먹음직스러운 머핀이 예쁜 접시에 정갈하게 담긴 모습은 인스타그램 사진 프레임 안쪽에, 그리고 그걸 만드느라 너저분해진 주방의 현실적인 모습은 프레임 바깥에 존재하도록 구성된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즉,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은 눈에 보이는 이미지 중 예쁜 것, 정돈된 것, 모두가 좋아할 만한 것은 인스타그램 프레임 안쪽에 위치하도록 하며, 너저분한 것, 지나치게 현실적인 것, 보기 싫은 것, 그 어떤 감성도 끌어내기 힘든 설거짓거리라든지 빨랫더미 따위는 프레임 바깥으로 잘려 나가 누구도 볼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스타그램이 허세 덩어리라는 데에 동의했던 나는 이 앱의 존재 이유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솔직히 열혈 사용자들을 속으로 비웃었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인스타그램의 열혈 사용자가 되었다.  

시작은 단순했다. 장애를 가진 둘째를 프레임 안에 위치시키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둘째의 장애를 알고, 나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이것저것 찾아보고 공부했다. 답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전문 용어로 점철된 발달장애의 정의와 특성 및 양육, 교육 방법에 대한 정보를 찾고 싶은 게 아니라, 딱 하나, 어떤 '증거'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괜찮다고, 살 수 있다고, 장애 아이를 낳았지만 평범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고 말해 주는 누군가의 선험적 증거를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방대한 인터넷을 뒤지며 만난 정보들은 너무 어려운 말들로 가득했고, 미디어에서는 '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고 희생적인 일임을 보도했다. 내가 원하는 한 가닥 희망, 장애 아이와 그럭저럭 평범하게 잘 사는 모습을 발견하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왜 이렇게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려진 게 없지?
정보도 너무 없고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자료도 참 한정적이고.
특정 카페에 들어가야나 알 수 있는 어떤 것들, 일상적으로는 쉽게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들...
우리 주변에 흔히 존재하는 많은 아이들의 이야기 중 왜 장애 아이의 이야기는 없을까?
장애 아이들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 나는 왜 이제까지 본 적이 없을까? 


자, 이쯤에서 답해 보자. 왜 없을까? 왜 장애 아이와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일상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것일까? 위의 인스타그램 프레임 이야기로 돌아가면 답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장애 아이는 보통 프레임 안이 아닌, 밖에 위치해 왔기 때문이다. 장애 아이는 예쁘고 멋지고 자랑스러운 것, 모두가 좋아할 만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픈 것, 슬픈 것, 힘든 것, 일상적인 대화 소재로 꺼내면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것, 가벼운 농담 소재로 쓸 수 없는 것, 감성적이기보다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것, 자꾸 보면 마음이 불편해서 안 보고 싶은 것, 그냥 알고 싶지 않은 남의 얘기에 불과한 것, '힘내세요'라고 이야기해 줘야 할 것 같아서 부담스러운 것, 조심스러워서 먼저 물어보기도 어려운 것, 어르신들은 그거 뭐 자랑이라고 떠들고 다니냐고 할 만한 것......

그것이 바로 우리 머릿속에 있는 장애 아이, 나아가 장애인의 사는 모습이지 않은가? 그러니 누구나 접근 가능하도록 공개된 많은 정보들 중에는 '평범하게 그냥 사는' 장애 아이의 이야기는 찾기 어려운 것이다. 장애 아이는 주로 프레임 밖으로 잘려 나갔고 그로 인해 우리는 실제 일상에서뿐만 아니라 온라인 상에서도 장애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없다.  


내가 왜 하고 많은 SNS 중 인스타그램을 떠올렸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워낙 내 편견이 두터웠기 때문에 그 편견의 벽을 넘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예쁘고 멋진 것만 올리는 공간이라고? So what? 
장애 아이가 예쁘고 멋지지 않을 이유는 없잖아?
장애 아이도 충분히 인스타그램 프레임 안에 위치할 자격이 있어. 
봐봐. 이보다 더 인스타그램적인 아이를 나는 본 적이 없네. 
말하자. 보여 주자. 이런 삶도 평범한 거라고 적극적으로 외치자.
혹시 알아? 나처럼 그 단 하나의 증거를 찾는 사람들에게 내가 그 증거가 될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인스타그램에 발을 들여놨고, 둘째의 이야기를 공개 게시물로 하나둘 올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우리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만 알고 있던 둘째의 장애를, 세상 사람들에게 오픈하기 시작한 것이다. 

둘째와의 일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주로 올리지만 장애 아이를 키우는 나, 엄마이자 그냥 나인 내가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올린다. 우리를 둘러싼 일상이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다 고만고만한 걱정과 고만고만한 즐거움을 안고 산다는 것을 열심히 보여주고 있다.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놀랐던 점은 내가 가져왔던 편견과는 다르게, 그 공간에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치열하게 존재를 위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장애 아이의 부모를 비롯하여 다양한 소수자들이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공간으로 그곳을 활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내가 그토록 원하던 증거들을 찾았다. 나보다 먼저 이 폭풍과도 같은 단계들을 거쳐 간 선배 장애 부모들이 그들 각자의 방식으로 잘 사시는 모습을 보았고, 비슷한 시기의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친구가 되어 서로 마음 보듬으며 연대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도 또한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증거를 만들고 있다.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된 지 얼마 안 돼 두려움에 떨고 있을 누군가에게, 나의 하루하루가 한 가닥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의 일상을 여과 없이 공개한다. 

나의 인스타그램 피드들은 세상 어딘가에서 땅 파고 있을 누군가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고 있다. "장애 아이를 낳았다고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고요? 네, 저도요. 저도 그래요. 그렇지만 한번 보세요. 우리 둘째도 장애 아이인데, 누구보다 사랑스럽지 않나요? 얘 나름대로 되게 열심히 크고 있는 거예요. 미래는 저도 두렵지만 지금 당장은 생각보다 꽤 괜찮아요. 웃고 울고 남들처럼 그냥 평범하게 잘 살고 있어요. 뭐, 이 정도면 매일이 감사한 평범한 하루 아닌가요? 당신도 할 수 있어요. 저보다 더 잘 살 수 있어요."라고.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하고, 이런저런 삶의 모습들이 다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나도, 당신도, 비장애 아이도, 장애 아이도, 다 각자의 모습 그대로 존중받으며 어우렁더우렁 살면 그만이다. "장애 아이와 지지고 볶고 그냥저냥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 누구? 나요. 나 여기 있어요."라고 손 들고 있으면 누군가는 또 내 손 잡아 연대해 주겠지. 자꾸만 세상에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이유다. 


나에게는 정말로 인스타그램에 아이의 장애를 공개한 것이 큰 전환점이 되었다. 비슷한 장애 부모들을 알게 되어 여러 가지로 도움도 받고 정신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것은 물론, 독서 모임도 조직하여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잘 사는 방법을 고민할 사람들이 생기기도 했으니까. 인스타그램이 요즘 너무 상업적이 되어 살짝 짜증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마케팅의 노예가 되지 않고 연대와 일상만 나누자고 굳게 마음먹고 사용하고 있(지만 자꾸 뭔가를 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아,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장애 아이와의 일상을 오픈해 두니 편한 점이 있다. 오랜만에 연락 와 근황을 묻는 지인에게 히스토리를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 없이 그냥 나 이렇게 산다고 여기 들어가서 보라고 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말로 설명하는 건 여전히 참 힘든 일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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