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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 박사엄마 Jan 21. 2021

하나도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알아가면 돼.

내 아이의 장애 마주하기 6단계 : 공부하며 알아가기

"애기 고개가 왜 그러냐? 사경 아니냐?"

"애기 자꾸 그렇게 고개 들고 거꾸로 못 쳐다보게 해라. 애기 위에 있지 마라, 목 꺾인다."

"얘가 왜 자꾸 허공을 보고 웃냐? 실없는 녀석. 쟤 좀 못 웃게 해라."


둘째의 장애를 알기 전, 주로 지적받았던 말들이다.

'뻗침'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기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힘을 주어 등을 뒤로 휘면서 괄약근을 조이며(^^) 뻗대는 행동인데, 정상발달 아기들도 젖병을 거부한다든지 아기띠를 거부한다든지, 자기주장을 강하게 전달할 때 주로 이 뻗침을 시전 하곤 한다. 뇌 발달이 느린 아이들에게도 뻗침이 나타나는데, 이게 자기주장을 전달하기 위한 거라면 참으로 기특할 테지만, 시도 때도 없이 이유(가 있겠지만 양육자는 알 수 없으므로) 없이 나타난다는 것이 좀 다르다.

둘째도 누워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을 들어 올려 정수리가 바닥에 닿은 상태로 위쪽을 응시하고 있던 적이 많았다. 바닥과 등 사이에는 주먹 하나 들어갈 만한 공간이 생기고 고개는 거꾸로 놓였으니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위아래가 뒤집어진 이상한 나라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보기에 참 불편한 자세임에도 아이는 허공을 보고 실실 웃는 적이 많았는데, 나는 그저 아이가 웃는다고 예쁘다고 신기하다고 박수를 쳐 대고 사진을 찍고 아주 팔불출이 그런 팔불출이 없었다.

하지만 육잘알(육아를 잘 아는^^) 어른들 눈에 그게 괜찮아 보였을 리 만무하다. 온갖 잔소리를 들었다. 애 자꾸 위에 못 보게 하라고. 위쪽에서 어르지 말라고.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못하게 한다고 후다닥 안기도 하고 엎어 놓기도 하고 했지만 아이는 그 즐거운 세상을 시도 때도 없이 다시 보고 싶어했다.


어른들이 뭐라시든 나는 둘째의 행동이 마냥 예뻤다.

발라당 누워 가슴 들고 뻗치는 것도, 허공을 보고 웃는 것도, 아기띠에 안으면 다리를 계속 탈랑거리는 것도, 손을 허우적거리고 발목을 빙빙 돌리는 것도...... 아이의 장애를 알기 전의 나는 아이가 뭘 하든 그냥 마냥 다 예뻤던 것 같다. 주로 뭘 하지 않는 아이였기에 뭐라도 하면 그냥 좋았고 마냥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내가 알았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얼마나 간사한지 분명 아이는 평소 하던 대로 할 뿐인데, 그런 행동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왜 저러지?
왜 저렇게 뻗치지?
왜 저렇게 깔깔대고 웃지?
왜 팔다리를 가만두지 못하고 팔랑거리지?
발목은 왜 돌리고 눈은 왜 자꾸 안쪽으로 모으지?
이것도 장애의 징표인가? 저것도 장애와 관련된 건가?


아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의심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것도 장애 때문인가, 저것도 장애와 관련된 건가. 아이의 장애를 안 순간부터 나는 예전처럼 아이를 마냥 사랑스럽게만 바라보지 못했다. 의심과 걱정과 후회와 미안함이 섞인 복잡하고 그늘진 눈빛으로 아이의 모든 이상 행동들을 관찰했고,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졌다. 아이는 그동안 온몸으로 자신에게 장애가 있다고 떨쳐 말하고 있었는데 내가 못 알아들었다 생각하니 내 자신이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가 없었다.


왜 몰랐을까? 나는 왜 이리도 무지했던 걸까?


또다시 자책의 마음이 고개를 들었지만 애써 눌러 담았다.


뭐, 모를 수도 있지.
그래도 몰랐기 때문에 그 시절 편안하고 행복하게 잘 지냈잖아.
일찍 알았어도 뭐, 장애가 있다는 건 달라지지 않는걸.
솔직히, 발달장애인의 어린 시절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랬다. 장애에 대해 나는 너무 무지했다. 나뿐만 아니라 장애와 관련 없이 사는, 세상의 주류인 그들 대부분은 아마 장애에 대해서 잘 모를 것이다. 자라면서 장애인식개선 교육 같은 걸 받아본 적 없는 세대인 나에게, 장애인은 휠체어를 탄 몸이 불편한 사람, 눈이 안 보이거나 귀가 안 들리는 사람, 즉 신체장애인의 개념으로만 인식됐었다. 인지적인 차이도 장애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발달장애인을 장애인의 범주에 넣어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영화 <말아톤>에서 초원이의 엄마가 “우리 아이에겐 장애가 있어요.”하고 외치는 것을 분명히 봤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장애인식이 그토록 편협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장애’라는 것에 무관심하고 무지하고 그저 남의 얘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내가 이렇게 장애에 무지했던 것은 나 개인의 탓도 있겠지만 철저히 장애인을 분리하고 일상에서 목격되지 않게끔 외딴 공간에 꼭꼭 숨겨두는 사회적 분위기 탓도 있을 것이다. 힙한 동네의 카페에서 친구들과 커피 마시는 장애인, 새로 생긴 대형 쇼핑몰에서 윈도쇼핑을 즐기는 장애인, 여행지에서 셀카를 열심히 찍는 장애인 등 비장애인들이 누리는 일상 곳곳의 영역에서 이런 장애인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는가? 간혹 있을 수는 있으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은 참으로 경직되고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회이지 않던가? 지금이야 인터넷의 대중화로 많은 것이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비주류인 소수자들에게 그리 관대한 곳은 아니라고 본다. 이렇게 일상에서 장애인을 쉽게 볼 수 없으니 비장애인들이 제멋대로의 장애인식을 갖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젠 더 이상 장애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바로 내 아이가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알아야 한다. 발달장애가 무엇이고 아이가 하는 행동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아이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아이를 키워야 하며 성장 과정에서 어떤 교육과 도움을 제공해 줘야 하는지 이제 나는 알아야만 한다.

발달장애를 가진 어린아이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서 어려웠다. 하지만 다행히, 요즘은 인터넷으로 무궁무진한 레퍼런스를 얻을 수 있는 시대다.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밤마다 인터넷의 바다를 헤맸다. 전에 말한 느린 아이 키우는 부모들의 카페부터 시작해서 블로그 글들, 그리고 유튜브와 책들......

카페와 블로그를 통해서는 병원과 재활치료,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알아갔고 유튜브를 통해서는 우리 아이가 컸을 때 미래의 모습을 엿봤다. 책에서는 장애인권 문제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알아가며 차츰차츰 나의 생각도 정리해 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알면 알수록 서글프고 또 마음이 힘들었다. 병원은 뭐가 이렇게 복잡하며 세상에 아픈 아이들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이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왜 이리도 부족한 건지, 왜 장애 아이 하나가 태어남으로 인해 한 가정이 위기로 내몰려야 하는 건지, 당연한 존엄을 과연 보장받을 수 있는 건지, 그리고 내가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보지 못한 채 살아온 건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사회에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 장애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의 양육을 위해 온 가정이 희생하고 나머지 가족의 삶이 좌초되는 그 시나리오를 그대로 따르고 싶지 않았다. 장애아이가 있는 저 가정은 불행하고 힘이 들 거란 그 편견대로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불행할 줄 알았지?
노노. 두고 봐. 누구보다 평범하게 딱 그냥 그 보통의 삶을 내가 살아줄 테니까 어디 한번 해 보시지.

 

세상과 한번 싸워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나 혼자 희생해서 아이를 끌어안고 있지 않고 사회 안에서 아이가 함께 커 가도록 밖으로 데리고 나오리라 결심했다. 내 일도 진짜로 그만둘 수밖에 없는 시점이 오기까지 최대한 붙들고 살아보련다. 공부해서 지킬 거다, 나와 내 아이의 평범한 삶.


앞에서 어른들께서 계속 지적하시던 아이의 자세 문제를 비롯하여 장애아이이기 때문에 보이는 몇몇 행동들도 이제는 걱정과 의심의 눈빛으로 보지 않는다. 건강에 해가 되는 행동이라면 최대한 못하게 하고 그렇지 않는 거라면 그냥 우리 둘째의 개성으로 인정하면 되는 거다. 뭐, 애가 거꾸로 세상 좀 보면 어떤가? 보는 방식이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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