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rdinary 박사엄마 Feb 02. 2021

그래. 내 아이는 장애인이야. So what??

내 아이의 장애 마주하기 7단계 : 냉정하게 긍정하기

“아직 어리지만 뇌병변으로 장애 등록할 수 있을 것 같아. 등록은 걷기 전에 하는 게 좋대. 그래야 등급이 높게 나오니까. 복지 혜택 받으려고 등록하는 거니까 이왕이면 높은 등급이 나와야 뭐든지 유리하대.”


우리는 둘째의 장애 등록을 하기로 했다. 위의 말은 장애 등록을 결심한 내가 남편에게 했던 말이다.

우리 눈에 둘째는 그저 너무 작은 아기였고 장애가 눈에 띄게 보이지 않아서 장애 등록을 결심하기까지 참 많이 망설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 아이에게 정말로 장애가 있는 것일까?
재활받고 걷기만 하면 정상발달 아이들처럼 그냥 그렇게 자라지 않을까?
똑똑하진 않아도 그냥 착하고 맹숭맹숭한 아이로라도 어떻게든 자라지 않을까?
그렇다면 굳이 ‘내 새끼 장애인이오’ 하고 장애 등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닐까?


가장 어려웠던 것은 끊임없이 아이의 장애를 의심하는 나 자신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아이가 느리긴 해도 결국엔 정상발달로 자라 주지 않을까 하는 한 줄기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다 잘 될 거야. 아자아자 파이팅!’ 따위를 외치는 무한 긍정형 인간이 아니며, ‘노력하면 돼. 열심히 재활해서 꼭 발달 따라잡을 거야! 불가능은 없다!!!’ 하고 생각하는 열정파 노력형 인간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현실주의자에 약간은 염세적이기까지 한 냉랭하고 삐딱한 인간형에 속한다. 하지만 그런 나도 막상 아이의 장애라는 엄청나게 큰 현실 앞에서는 그 현실의 크기에 압도되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머리로는 아이의 장애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가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현실의 몸집이 아주 작게 여겨질 때까지 줄곧 도망치고 또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근거 없는 희망을 붙들고 요행을 바라거나 이미 장애인으로 태어난 아이를 ‘노오오오력’으로 비장애인으로 만들겠다는 것은 지금 당장의 현실을 개선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당장 우리는 아이의 재활 비용으로 입시생의 사교육비급 지출을 하고 있었고 국가로부터 어떠한 공적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었으며, 재활은 장기전이라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가정 경제가 파탄에 이를 수밖에 없는 아주 위태위태한 상황이었다. 자,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냉정하게 현실을 볼 시간이었다.


그래. 장애 등록을 하자.
등록하고 얼마 안 되는 복지혜택이라도 받아서 아이를 좀 더 안정적으로 양육하자.
장애 등록을 안 한다고 해서 버젓이 있는 장애가 없는 게 되는 건 아니잖아.
장애 등록을 한다고 장애인이 되는 게 아니라, 장애인이기 때문에 등록을 하는 거지.
등록을 해야 사회적 지원과 보호를 받을 수 있으니까. 이건 일종의 안전장치야.


좋다. 어렵게 나를 설득했다.

이제는 남편과 (주양육자인) 우리 엄마를 설득할 차례다. 남편에게 어렵사리 장애 등록에 대한 말을 꺼냈다. 이 글 맨 위에 쓴 대로 뇌병변 장애로 등록하자고 하며 장애 등록의 장점들을 열거했다. 남편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래요. 받을 수 있으면 받음 좋지.”

아.... 세상 심플하게 사는 이 남자, 생각하는 척이라도 좀 하라고!! 너무 쉽게 대답하는데 나는 왜 화가 날까? 왜 이런 고민은 나만 해야 하는 거냐며, 왜 나만 알아보고 나만 마음고생하냐며 싸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싸웠는지 안 싸웠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남편은 설득이 필요 없었고 이제 우리 엄마 차례였다. 엄마가 마음 아파하시면 어쩌나 하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는데 엄마도 얘기를 주의 깊게 들으시더니 단박에 오케이 하셨다. 그러고 보니 결국 내 마음이 제일 문제였던 것 같다. 나를 잘 설득하고 나니 이후의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남편이나 엄마나 왜 마음이 짠하지 않았겠는가. 나만큼, 아니 어쩌면 더 많이 남몰래 가슴앓이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 배를 타고 둘째의 장애라는 바다를 함께 건너고 있는 우리는 현실적으로 장애 등록이 이 바다를 건너는 데 쓸모가 있을 것임을 알았다. (후일담이지만 시어머니께도 말씀드렸는데 어머니는 쿨하게 받아들이셨고, 다만 둘째를 유난히 예뻐하시는 시아버지께는 이야기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엄청 마음 아파하실 거라고. 그리고 실제로 둘째의 장애 등록 사실을 나중에 아신 시아버지께서 가족 중 누구보다도 가장 심하게 가슴앓이를 하셨다고 한다. 아니, 마음이 아파도 엄마인 내가 제일 아파야지 왜 아버님이 한술 더 뜨시나 하고 살짝 성질이 나려다가도, 그만큼 우리 둘째에 대한 애정이 깊으셔서 그러신 거려니 생각하니 또 우리 아버님도 가여웠다. )


그렇게 우리는 서류를 준비해 둘째의 장애 등록을 했다.

장애등급제가 바뀌기 이전이라서 당당하게 무려 뇌병변 ‘1급’을 받았다. 솔직히 아주 누워만 있는 정도는 아니어서 1급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장애등급 체계 안에서 우리 아이는 중증 중에도 최중증이었던 것이다. 복지카드가 나오고 가족 모두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1급’의 위력이란 참...... 나도 며칠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아이는 그저 아이다.

장애 등록을 하기 전의 아이와 하고 나서의 아이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장애 등록은 그저 필요한 수단일 뿐이다. 약자로 태어난 우리 아이가 사회에서 도움닫기 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발판. 그 발판을 딛고 우리 아이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다른 이들처럼 뛰어오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은 그 발판이 너무나 허술하지만 그것을 더욱 튼튼하고 견고하게 수정하는 일들이 계속 진행 중이고 앞으로 우리 부모 세대들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나갈 것이다.


현실이 암담할수록 냉정하게 긍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긍정’은 무조건 좋게 아름답게 희망적으로 보라는 것이 아니다. 가톨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는 <세바시> 강연에서 “짝퉁 긍정에 속지 말라.”라고 한다.​(이 문장 누르면 강연 영상으로 연결됩니다.) 긍정은 무슨 일이든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진짜 긍정이란 바로 현실이든 사람이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냥 그게 그렇다는 것을 수긍하는 것, 그 모습 그대로 긍정하는 것이다.


그냥 둘째는 둘째다. 이 아이는 표준에서 벗어난 아주 느린 시간을 살도록 프로그래밍된 아이고 그것을 우리 세계에서는 발달장애라고 부른다. 아이는 발달장애를 가지고 사는 아이고 정규분포의 가운데 토막에 있는 이들과는 다르게 자랄 것이다. 정규분포의 끄트머리 어디쯤에 존재하기에 자라면서 계속 특별한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그 도움을 받기 위한 첫 번째 사회적 장치가 바로 장애 등록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필요한 것을 받았다. 끝.


So what? 그래서 뭐? 슬픈가? 불행한가? 갑자기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가 되는가? 내가 다른 내가 되는가?

No no. 아니지 않은가? 그래 뭐, 솔직히 며칠 또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댔지만 연말정산 때 우린 쾌재를 불렀지 않은가? 물론 그만큼 재활 비용 많이 썼다는 증거지만 세금 공제되니 조삼모사지만 잠시 기쁘더라.

아이도 달라진 게 없다. 숨 냄새가 환장할 만큼 달큰하고 살이 말랑말랑한, 여전히 예쁘고 사랑스러운 내 푸딩이 맞다. (푸딩이는 내가 인별그램에서 둘째를 부르는 애칭이다.) 그리고 나는,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을까 말까가 제일 고민인 여전히 게으르고 아침잠 많은 인간 그대로다.


그래. 내 아이는 발달장애인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는 그냥 나대로, 우리대로 울며 웃으며 살고 있는걸.


물론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받아들인다고 해서 희망을 아예 놓는 것은 아니다. 그 희망의 내용이 완전히 달라질 뿐이다. 아이의 장애가 재활로 ‘낫게’ 될 거라는, 언젠가는 비장애인이 될 거라는 희망은 버렸다. 대신, 장애를 가지고도, 장애와 함께 이 세상 신나고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아이가 자라는 동안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건강한 사회 안에서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길 바라는 희망, 이젠 그런 희망을 가져본다. 이게 더 이루기 어려운 희망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안 되면 내가 만들지 뭐...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다.





이전 07화 하나도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알아가면 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