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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 박사엄마 Sep 09. 2021

다섯 살인데, 우리 애가 좀 동안이라서요.

내 아이의 장애 마주하기 11단계: 불편한 말에 위트 한 스푼 (1)

“아니, 무슨 갓난아기를 데리고 나왔네.”


둘째 7개월인가 8개월인가 됐을 때 마트에 안고 간 적이 있는데, 지나가던 오지랖 넓은 행인께서 눈에서 광선을 쏘시며 이런 말을 던지셨더랬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것도 덤으로 얹어서. 그때는 17년도. 마스크 없이 다니던 자유로운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사람 많은’ 마트에 ‘이렇게나 갓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 자기들 좋자고 놀러 나온 ‘젊고 철딱서니 없는 요즘 것들’이라고 우리 부부 아니 정확히는 애엄마, 즉 나를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래. 백 번 이해한다. 둘째는 7-8개월까지 (정상발달 아이들이 백일이면 돌파하는 몸무게인) 5킬로를 못 넘었고 여전히 피부는 흐물흐물하고 얇아서 얼굴빛이 검붉었다. 살이 좀 복슬복슬 올라야 건강한 아기들의 그 뽀얀 찹쌀떡 피부를 가질 수 있을 것인데, 얘는 도통 먹지를 않았다. 분유 100미리를 먹는 데 두 시간 넘게 걸렸고 그나마도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게 더 많을 정도였으니까 뭐. 안 크는 게 당연하다. 아무튼 외형은 딱 백일도 안 된, 아기 중에서도 상아기였고, 그래, 실제로는 충분히 외출 가능한 월령이었든 어쨌든 지나가던 행인 눈에는 신생아로 보였을 것이다.

‘나 참… 본인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닌데 굳이 쏘아보며 한 마디 할 것까지야 없지 않은가.’라고 지금은 생각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저 그 불편한 시선에 안절부절 못 하고 아이를 최대한 가리고 다니다가 집에 왔던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어린 아기들에게 관심이 많다. 특히 비슷한 또래의 손주가 있는 어르신들은 더더욱 지나가는 아기들에게 관심이 많으신 것 같다. 아기를 데리고 나가면, 그저 '예쁘다~' 하는 시선으로 미소를 보내주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꼭 한 마디씩 애정 어린(?) 잔소리를 보태는 경우가 있다.  

큰애 때도 많이 들어 봤다. 그리고 그런 잔소리는 주로 반말이다. 


몇 개월이에요? 
애기가 낯을 가리나 보네. 
애기 춥겠다. 양말 신겨야지. 
애기 덥겠다. 왜 이렇게 꽁꽁 싸 가지고 다녀?
아이고. 쪼끄만 게 말을 잘하네.
이 녀석아. 엄마 힘들어. 걸어 다녀. 


옷을 많이 입히면 덥겠다고 한 마디, 덜 입히면 춥겠다고 한 마디, 애가 낯선 사람 싫어서 까칠하게 굴면 낯 가린다고 한 마디, 말 잘하면 말은 잘하는 녀석이 왜 안 걸어 다니고 안겨 다니냐고 한 마디... 그래, 큰애 때는 그래도 그런 잉여로운 관심들이 영 싫기는 했지만 그냥 그 순간이 지나면 잊히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나 둘째는 달랐다. 똑같이 지나가는 행인에게 쓸 데 없는 잔소리를 들어도 그것이 더 깊이 가슴에 남고 더 오래 속에서 부대꼈다. 그것은 어쩌면... 둘째가 보통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나의 자격지심 때문이기도 했다. 비슷한 말을 들어도 큰애 때처럼 어색하게 허허허 웃어넘기는 게 잘 안 됐다. 뭐라도 말해주고 싶은데,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도 잘 몰랐다. 


몇 개월이에요?
아이고. 신생안가 보다. 
애기가 손을 먹네. 지지야. 이러면 입모양 다 망가지는데.
애기가 눈이 쏠려요. 안과에 가 봐야겠다. 
아이고. 쪼끄만 게 이는 다 났네. 


그렇다. 둘째는 신생아처럼 계속 작았고 오래도록 눈동자 조절이 안 됐다. 내사시 경향이 계속되어 대학병원 안과 진료도 봤는데 안과적인 문제는 아니라서 차차 나아질 거라고 했다. 그리고 정말로 다른 건 다 느린데 이는 일찍부터 아주 옹골차게 났다. 두 돌 즈음에는 생긴 건 여전 히 돌 전 아기인데 입을 벌리면 이가 꽉 차게 나 있어 사람들이 놀라기도 했다. 손 빠는 거 안 좋은 거 나도 아는데 어쩌겠는가. 지금도 빤다. 

이 중 나를 제일 힘들게 한 것은 "몇 개월이에요?"라는 질문이다. 다른 여러 가지 피드백들은 질문이 아닌 이상 굳이 답할 필요는 없기에 그냥 썩소(썩은 미소)를 날려 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질문에는 어떤 식으로든 답을 해야 하지 않는가. 큰애 때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던, 그냥 대답하기 귀찮다고만 여겼던 "몇 개월이에요?" 때문에 나는 참 많이도 괴로웠었다. 

돌 전까지는 괜찮았다. 오히려 그때는 신생안가 보다... 하는 말을 더 많이 들었지 몇 개월이냐 굳이 묻지 않았던 것 같다. 돌이 지나고 15개월-18개월 사이에 우리는 둘째의 장애를 알았고, 그때쯤부터 몇 개월이냐 묻는 질문이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괜히 작아졌다. 묻는 사람은 그냥 예뻐서, 귀여워서, 또래 손주가 있어서, 혹은 아기를 그냥 좋아해서 묻는 것일 텐데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있는 그대로 말할까?  
아냐. 얘가 지금 20개월인 걸 알면 추가 질문이 이어질 거야.
20개월인데 장애가 있어서 좀 작아요. 할까?
아냐 아냐. 그냥 귀여워서 물어본 건데 괜히 분위기만 우울해질 수도 있지.
장애가 잘못은 아니잖아? 근데 왜 말 못 해?
저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말 걸었다가 괜히 미안해질 수도 있잖아. 
그냥 지나가는 사람인데 뭘 그렇게 심각하게 답해. 대충 해 대충.
필요 이상의 정보를 주는 건 불편함을 유발하는 거야. 말하지 마. 
장애 얘기 괜히 꺼내서 모르는 사람한테 동정받고 싶지 않아. 분명 나를 불쌍하게 볼 거야.   


"아... 네. 돌 지났어요." 

결국 내가 선택한 대답은 "돌 지났어요."였다. 거짓말은 아니면서 정확한 답변을 회피하는... 당시로서는 최선의 답변이 그거였다. 두 돌 조금 지날 때까진 "돌 지났어요."로 일관하며 시선을 피하면 더 묻지 않았다.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두 돌 반, 세 돌이 되어 가며 둘째는 얼굴은 여전히 아기아기 하지만 유난히 다리가 긴, 비율적으로 엄마 세대보다 진화한 몸매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누가 봐도 돌 지난 아기는 아닌 외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의 성장과 함께 나도 아이 장애 n년차 엄마로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졌다. 앞에서 쓴 1단계에서 10단계의 지난한 과정들을 거치며, 이제는 아이 장애와 함께 나름대로 잘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고 아이의 장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조금은 더 노련해진 것 같다. (물론 선배 부모들에 비하면 아직은 갈 길이 한참 멀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답한다. 


"얘가 보기보다 좀 먹었어요. 개월 수는 모르겠고 네 살이에요." (2020년 버전) 

"이래 봬도 다섯 살이에요. 얘가 좀 많이 동안이지요?" (2021년 버전)


이렇게 대답하고는 스스로 뿌듯해한다. 많이 컸다, 나 자신. 불편한 질문에 안절부절못하던 초짜 장애아이 엄마가 이제는 상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여유롭게 위트 한 스푼 얹어서 답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내년에는 이 말을 꼭 덧붙여서 말할리라 다짐한다. 


"여섯 살이에요. 많이 놀라셨죠? 얘가 저를 닮아서 좀 동안이랍니다. 하하하하하하" 


추가로, 꽤나 큰 다섯 살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가끔씩 투레질을 하며 침을 뱉어낼 때 남들 눈이 신경 쓰여 아주 미치겠다. 마스크 착용도 쉽지 않은 아이라서 늘 유아차 커버를 씌워서 다니는데, 치료 대기실이라든지 이런 곳에서 잠시 밖에 꺼내 놓으면 투레질을 할 때가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정말 미안하지만 조심한다고 해도 장애아이 제어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서 이때도 다소 미안함과 위트를 담아 주변에 들리도록 이렇게 말한다. "어어, 비말 노노. 코로나 시대에 이렇게 비말 뿌리면 안 되는 거야. 사과하자." 
이전 12화 일단 나부터 좀 살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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