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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 박사엄마 Sep 24. 2021

인생 긴~데 천천히 가면 안 되나요.

내 아이의 장애 마주하기 11단계: 불편한 말에 위트 한 스푼(2)

“잘 지내요? 애들은? 잘 크고?”


별 거 없는 안부 인사다. 그저 의례적인 인사말일 뿐이다. 이 말은 “나는 당신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나는 당신이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내가 당신의 아이들에게도 관심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습니다.”와 같은 의미다.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려는 의도는 요만큼도 없는, 반가움과 친근함의 표현인 것이다.

이런 질문에 우리는 보통 어떻게 대답하는가? 친하지 않은 사람, 공적으로만 아는 관계, 어색하고 애매한 사이라면 아마 그냥 “네. 잘 지내요. 애들도 잘 크고요.” 하고 나 역시 의례적으로 흘려 넘기겠지? 하지만 친한 사람, 사적으로도 어느 정도 마음을 나눈 사람, 어색하더라도 내 마음이 기우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대답할까? 만약 그게, 내가 도저히 잘 지내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내 아이가 잘 크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내 앞에 던져진 질문이라면, 어떠한 말들로 저 질문을 받아넘길 수 있을까?


둘째의 장애를 알고 한동안은 “몇 개월이에요?”(이전 편 참고)만큼이나 불편했던 질문이 “잘 지내요? 애들은 잘 크죠?”였다. 두 질문의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잠시 잠깐 마주치는 이들에게서 받는 시험이며, 후자는 알고 지내는 이들이 보낸 관심의 표명이었다. 어떤 게 더 마음을 괴롭게 했는지 굳이 따지자면 당연히 후자다. 전자는 대충 넘기거나 대답하기 귀찮으면 그냥 무시하면 된다. 하지만 후자는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화자가 어느 정도는 친한 관계라면 더더욱 마음이 어려웠다.


네. 잘 지내요. 애들도 잘 있어요. 별일 없으시죠? 하하하


이렇게 그냥 위선, 아니 위호(好)를 떨어볼까.

아니다. 그건 내가 아니었다. 나는 친한 이들에게 포커페이스를 하고 속내를 비치지 않는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빈말로는 칭찬도 할 줄 모르고 얼굴로 기분과 감정이 다 나타나서 차라리 그냥 말로 다 뱉는 게 편한 사람이었다. (대학 때 베프는 그래서, 내가 칭찬해 주면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 칭찬이 빈말이 아닌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나는 마음을 나눈 이들에게 차마 ‘나 아무 일 없이 잘 지낸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렵지만 솔직해야 했다.


그게우리 둘째가  느려요.
저는괜찮은데둘째 데리고 병원 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요.
애기가  약해서자주 아프고 자주 병원에 입원해요.
네. 이것저것 검사해 봤는데 뇌가 좀 덜 쪼글쪼글하대요.
뇌병변 1급으로 장애 등록했어요.
네. 크고는 있는데 어떻게 클지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시작했던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고 가볍게 안부를 물었던 지인들, 혹은 이미 건너 건너 대충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내게 잘 지내냐 물었을 때 나는 그들의 부담을 고려하지 않고 내 쪽의 안부를 쏟아냈다. 잘 지내지 못한다고. 내 아이가 느리고 아프고 장애를 가졌다고. 그 편이 나에게는 더 쉬웠고 속 시원했다.

하지만 준비 없이 내게 무거운 소식을 들었을 사람들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중에는 내 소식이 진짜로 궁금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을지 모른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는 사람, 무슨 말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포근한 말로 안아 주었던 사람, 침묵으로 위로해 주었던 사람. 모두 고마웠다.

그리고… ‘힘든’ 내게 희망과 긍정을 전해주고 싶었던 사람…….


좋아질 거예요.
잘 클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
힘내. 엄마가 힘을 내야지.


역시 고마웠다. 고마웠지만, 이런 희망과 긍정의 이야기가 나는 왜 또 불편한 것인지. 이쯤 되면 나란 인간은 참 속도 좁고 꼬일 대로 꼬인 불편한 인간이면서 남들한테 지 할 말은 다 해 놓고 남들이 뭐라 한 마디 한 거 가지고 불편하네 어쩌네 하는 참 모난 사람이구나 싶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애가 좋아질지, 잘 클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 말을 듣고 있자니 눈은 그대로 있고 입꼬리만 겨우 끌어올린 썩은 미소 표정으로 변하는데.

그리고. 어떻게 걱정을 안 하냐고 어떻게!!! 그리고 또. 힘은 지금도 이미 많이 냈는데 어떻게 여기서 더 힘을 내냐고. 있는 힘껏 평정심 유지해 가며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는데 힘을 어떻게 더 내냐고, 응? 그리고 왜 꼭 “엄마가” 힘을 내야 하냐고. “엄마”가 뭔데. 신이야 뭐야. 끄악.

맘 속으로 백번도 더 소리 질렀다. 내 생각해서 해 준 말에 죽자고 달려들 순 없고, 썩어 가는 표정은 감추지 못한 채 애매하게 웃으며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 짓곤 했다.


그랬다. 마음이 문제였다. 정리되지 않은 나의 마음. 아이의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나의 앞으로의 인생은 어떻게 꾸려 가야 하는지 모르겠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나의 마음. 불편한 말이 아닌, 불편한 나의 마음. 그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 내 아이의 장애를 마주한 지 n연차. 앞의 여러 단계들을 거쳐 생각도 마음도 꽤나 정리된 지금의 상태에 이르렀다. 그리고 또다시 지인과의 안부 대화에 마주한다. 아래는 실제 카톡 대화를 재구성하였다.


그: 샘, 어떻게 지내요? 애들도 많이 컸죠?
나: .   지내고 있어요.
그: 둘째도 많이 좋아졌어요?
나: 좋아졌다기보다 나름대로 열심히 크고 있어요.
그: 그래~ 그러면 됐죠 . 샘이 고생이 많다.
나: 아유 , 애들 키우는   똑같죠 .
그: 그래도. 샘이 힘들 텐데 대단하다. 애기 이제 걸어요?
나: 아직  걸어서 걸음마 연습하고 있어요.   시대잖아요. 얘가 인생 ~다고 자기는 천천히 하고 싶대요.
그: ㅎㅎㅎ 그래, 맞아요. 천천히 하면 되지. 힘내자, 샘. 좋은   거예요.
나: 힘이요? ,    내야 되나요?   내고 싶은데.
그:  ㅋㅋㅋ 맞아요, .   내도 되지 .
나: 네네. 저 힘 안 내도 잘 살고 있어요. 그냥 지금 이대로, 적당히 가늘고 길~게 살렵니다.
그: ㅎㅎㅎ 맞아요. 나도 그래. 늙어서 더 낼 힘도 없어요.


하하하하하하하. 함께 웃고 마무리.

조금은 더 여유롭게, 위트 있게, 뼈 있는 농담에 애정을 실어 지인과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마음이 되었다. 만세.



내가 여유를 찾으니 주변에서도 나를  편하게 대하는  같아서 나도 좋은 요즘이다. 정말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성장하는 존재인 것 같다. 사람들과의 어색한 대화, 감정 처리에 너무나도 미숙했던 내가, 둘째를 낳고 둘째의 장애를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한 뼘 더 자라고 성숙해졌음을 느낀다. 둘째의 장애를 마주하는 일이 세상에 태어나 겪은 가장 큰 고난이지만, 그로 인해 나의 모난 부분들이 조금씩 깎여 나가고 있음을 발견하고 나도 놀라는 중이다. 아직 고작 장애 n연차에 불과해서 이제 내 마음은 시몬스 같다(흔들리지 않는 편안함)고 단정해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여전히 어느 날은 울었다가 어느 날은 웃고, 어느 날은 무기력했다가 어느 날은 기운이 펄펄 나서 뛰어다니고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근데, 그건 장애 아이 부모 아니어도 다 그렇게 사는 것 아니었던가? 우리 모두, 다 그러고 사는 것 아니었던가. 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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