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사 출신인 제가 '브랜드는 상관없다'는 곳으로 왔습니다.
21년도 시작과 함께 지독하게 간절했던 이직, 새로운 동기부여, 터닝포인트...
더 이상의 두근거림은 없었다.
현업까지 오기 전 나는 브랜드사-국내 온라인팀-직급은 대리, 직책은 MD (마케팅, SNS 콘텐츠 기획 및 제작, 신제품 기획, 연예인&인플루언서 공동구매 플랫폼 개발 참여 등 '뭐(M)든지 다(D)한다'의 약자) 회사원들의 꽃이라는 탕비실 한 켠 간식 발주까지 맡았던 회사의 전반적인 살림살이 담당자였다.
내가 주로 맡았던 화장품 브랜드사에서의 업무는 덥고/중간 덥고/중간 춥고/춥고에 따라 제품 만들기, 만들어진 제품 빠르게 홍보해서 많~이 팔기, 가끔 신제품 아이디어 던지고 대박 나면 내 탓 하기! 나의 주인의식에 따라 성과가 크게 달라지는 일에 가까웠다.
그래, 지금 내가 뭘...
이 생활을 한지 약 3년 차가 넘어갈 때쯤 (물론 중간에 슬럼프도, 좌절했던 시기도, 브랜드사이지만 다른 회사로의 이직도 여럿 있었기에) 연간 반복적인 업무 플로우에 대한 지루함을 느꼈다.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기엔 SNS나 커뮤니티에서 마주하는 "저 29살인데 ***기업 서류라도 통과할 수 있을까요? 너무 늦었겠죠..?" 마치 김은경 1, 2, 3을 보는 것 같은 현실적이고 지나치게 팩트 같은 이야기들, 이런 글 몇 자에 매일 자려고 누우면 도전은 고이 접고 용기는 꼬리도 안 보이게 숨겨버리는 내가 싫었다.
'우리는 잠들기 전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는 일을 합니다'
구직 사이트, 기업 커뮤니티 등 잠깐의 짬만 생겨도 지루함과 거리를 두는 마음이 되기에 정말 수시로 둘러봤던 것 같다. 비록 지원까지는 용기가 필요했지만 한 기업의 공채 마감 'D-1', '운명' 같기도, 그냥 '운' 같기도 하지만 저 '종료 임박'이라는 글자가 뭐길래 날 빠르게 이곳까지 데려다줬다.
'옳은 일'을 한다는 담백한 슬로건을 가진 나의 새로운 업 뷰티 프로젝트 디렉터(PD) 영업이라곤 각종 채널 MD들과 수수료, 최저가 관련 입 씨름을 하는 게 전부였던 내가 마치 영업의 최전방과 같은 '특수한' 이곳에서 2월 입사, 현재까지 93건의 프로젝트 운영, 미팅을 통해 만난 약 150명의 메이커님들, 비록 선두를 달리는 실적은 아니지만 정말 열심히 달려왔다.
'귀를 자주 열면 가끔 후회하고, 입을 자주 열면 많이 후회한다'는 과거 내 첫 사수의 꽤 부정적인 조언은 이곳에서 다시금 실감했고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많은 브랜드사의 다양한 메이커님 (사업 주체 또는 실무자님)을 만나고 짧게는 두 달, 길게는 수 년 동안 소통한다. 메이커님들이 들려주는 특정 제품의 개발 스토리와 브랜드의 가치관, 앞으로의 방향성(또는 바람)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는 일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프로젝트 성공 여부의 키포인트를 짚어주는 훌륭한 힌트가 된다.
PD의 특별한 역량도 물론 중요하지만
메이커님과 함께 내야 하는 시너지는 더 중요하다.
이쪽 일이 버겁다가도 '진짜 뭐지' 싶게 과한 성취감에 취할 때가 있다. 단순히 높은 매출액이 나와 마치 밥벌이의 중량감을 덜어주는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는 정도의 개념이 아니라 세상의 '유행'을 바꾸고 '시장'을 바꿔버려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것이 당연해지게 만드는 일, 없던 게 마치 생겨나는 일처럼 말이다.
우리는 게임 속 캐릭터마다 보유하고 있는 특별한 능력치처럼 남들에겐 없는 시장을 보는 눈이라던지, 기발한 아이디어 능력이라던지, 영업력 이라던지, 심지어 빠른 위기 대처 능력까지도 PD 개인마다 자랑할 수 있는 특별한 역량이 되지만 함께 프로젝트를 이끌어갈 메이커님과의 시너지는 더 특별하고 더 중요했다. 그 시너지 속에서 때론 시장을 바꿀 신제품이 나오고 3천만 원대에서 진도를 못 나가던 프로젝트는 기억에 남을 수억 대를 기록한 프로젝트로 남게 된다.
나의 과거 TMI를 한 가지 오픈하자면, 남, 여를 불문하고 가장 강하고 아름답다는 20살, 21살 (나에게 2011년, 12년도) 전신에 붉은 반점이 생기는 희귀 피부 질환이라는 '장미색 비강진'을 약 1년 동안 앓으며 지구 상 피부 콤플렉스는 다 내 몫이었다.
편하게 화장품 쇼핑 한 번 못 하는 건 물론, 보습과 진정에 좋다는 크림을 썼다가 치료 기간이 한 달은 더 늘었던 가려운 지옥 같은 시간의 반복이었다. 스스로 위축되고 모든 게 창피했던 이 시기에 나를 죽이는 것 같이 힘들었던 가려움과 남들보다 못해본 화장품 덕질에 대한 욕구가 지금은 '샘플링'에 집착하는 뷰티 프로젝트 디렉터로 나를 먹고살게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선 내 콤플렉스와 같은 이야기들이 많은 서포터들의 지지를 받는 귀한 '스토리'가 된다. 내가 하는 일에서 꼭 이런 딥하고 흔치 않을 것 같은 '사연'이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대중들과 진솔하게 소통하며 이 제품이 세상에 꼭 나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친절하게 들려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객들의 니즈에 공감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점에서 ‘나의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는 종종 작은 감동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메이커님과 미팅 시 내가 정말 많이 하고 있는 말이다. 그리고 내 나름 대고 고수하고 있는 영업 정신(?) 중에 하나는 어떤 경쟁사 또는 비교대상(제품)과의 미친듯한 차별성만 급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 소통하고 있는 메이커님의 브랜드가 보다 '지속가능성' 있는, 나아가 소비자와의 티키타카가 끊이지 않는 '생명력'을 가진 '머스트 헤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이유로는 뷰티는 재구매가 없으면 끝이다. 아쉽게도 해당 아이템은 실패 제품이 되는 것이고 빠르게 시장을 달리 분석해 봐야 한다. 마케팅으로 심폐 소생하는 일도 한계가 있다. 국내 뷰티 브랜드는 지금도 100개 가 새로 생겼고 또 100개는 없어지고 있기 때문에.
시장과 판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최근 약 3천 명의 와디즈 뷰티 모수를 타겟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우리의 질문은 크게 '와디즈에서 뷰티 펀딩을 하는 이유'와 '앞으로 와디즈에서 만나고 싶은 브랜드'에 대한 물음이었고 놀랍게도 서술형 응답지에서 가장 많이 보였던 답으로는,
"브랜드는 모르고요, 아니 상관없고요, 진짜 좋은 성분과 효과가 있는 제품이요! 이 제품을 위해 진심으로 연구했다는 스토리를 보았을 때 펀딩 합니다"와 같은 맥락의 응답들이었다. 이미 잘 잘 알려진 스타브랜드여도 와디즈에서는 깐깐한 서포터님들의 '구독'과 '고민'을 통해 '진짜 시장성'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 점에서 우린 소비자로서, 메이커로써 와디즈는 꼭 겪어봐야 하는 필수 스텝이라는 점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다.
우창성, 김미리, 김서현, 장소현
내가 우리 파트 PD님들의 이름을 적어보는 이유
나는 올림픽을 끝까지 챙겨서 본 적이 없다. 유일하게 좋아하는 종목인 '양궁', 일단 우리나라 선수들이 너무 잘해서 지루할 틈이 없었고 복잡한 룰을 어려워하는 나에게는 '10점 쏘면 잘하는 것'이라는 심플한 룰이 최고의 스릴을 느끼게 했다.
이 경기에서 막내 선수로부터 외쳐지는 '파이팅'을 들으며 '팀워크'에 대해 생각했었고 집중해서 과녁에 조준을 하고 가끔은 처한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오조준을 해야 하는 고뇌의 모습에서 성공으로 가는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우리 동료들이 떠올랐다.
오진혁 선수는 얼마나, 아니 어떤 확신 정도면 과녁에 활이 도달하기 전 성공(금메달 확정)을 예감할 수 있었을까. 경이롭다. 아마도 수많은 시위를 당겨보고 여러 경우의 수를 계산해서 대처해야 했던 모든 경험의 순간들이 그만의 능력치로 누적된 건 아닐까
'오선수가 활을 쏘는 순간=우리가 프로젝트를 공개하는 일'과 같다고 했을 때 누적된 경험치가 바탕이 되어 오픈 후 저마다의 성공을 예감하는 "끝!"장나는 프로젝트를 우리 동료들과 함께, 그리고 많이! 만들어 내고 싶다. 간절하다. 서로의 프로젝트를 위해 한 명 한 명의 의견과 생각들에 대해 '많이 듣고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우리 파트의 가장 큰 복지라고 생각한다.
또한 오선수가 활을 쏘는 일처럼 결정적인 중요한 순간은 숱하게 찾아오기에 우리는 사소한 기여도 그냥 넘어가선 안된다. 이런 작은 차이가 모여 우리가 시장을 바꾸는 일을 하듯 큰 변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