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작가 버스킹 프로젝트
어느 순간 제가 쓰고 있는 글들이 비슷한 양상을 보이며 더 이상 발전이 없는 듯 했습니다. 새로움이 없었죠. 동굴에 갇힌 것처럼 저만의 세계에 갇혀 숨이 막히는 듯 했습니다.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했습니다.
하여 거리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자, 는 생각을 했고 실행에 옮겼죠. 하지만 기존에 없던 걸 만들려니 힘들었습니다. 더욱이 제 뜻에 동의를 해 참가는 했지만 실행 방법에 대해서는 모두들 의견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일단 서로의 생각을 맞추기 위해 이 주일에 한 번씩 만나 즉흥적인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삼개월동안 글을 쓰면서 ‘글로 쓰는 초상화’ 개념을 만들고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 가장 큰 문제는 언제나, 늘, 공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가장 최선의 장소는 어딜까? 사전 신고나 등록 없이 거리에 좌판을 펼 수 있는 곳은 어딜까? 등 수많은 시간을 공간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첫 테스트는 글쓰기 모임을 가졌던 카페에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카페 사장님이 크게 관심을 보이며 허락해주셨거든요.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카페 손님들을 상대로 ‘글초상화’를 진행하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어설프고 서툴렀습니다. 우리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초상화를 받아 본 분이 좋아할까? 온통 걱정뿐이었죠. 하지만 초상화를 받아 든 분들의 밝은 미소를 보고 제대로 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테스트는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이젠 정말 거리로 나가고 싶었습니다. 마침 마로니에에서 ‘마로니에 예술 시장’을 오픈한다는 기사를 읽고 신청을 했습니다. 예술 시장에 나오는 예술품은 주로 공예품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야 사고 팔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걸 판다고 하니 좋은 취지라 오케이는 했지만 주최 측에서도 걱정을 많이 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우려와 근심을 한방에 떨치기라도 하듯 예상 외로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글초상화를 체험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분들도 있었고, 나중에는 예약 신청을 받아야 했죠. 감동이었습니다. 우리의 의도가, 우리의 글이 통했습니다. 그리고 9월에 있는 축제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첫 초대였어요.
신기했습니다. 이런 문화축제에서 우리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고 초대도 해주다니. 그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에게 통할까? 고민하는 쭈구리였는데 자신감이 조금씩 붙었습니다.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 건 축제 오픈부터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많은 분들이 몰렸던 것이죠.
프로젝트가 잘 되면 마냥 좋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잘 되면 잘 될수록 프로젝트의 치명적인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장사는 잘 되는데 남는 게 없다는 상인의 말처럼 프로젝트는 인기가 많은데 작가 페이는 보장해 줄 수 없더라고요.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아이디어융합공방에 참가했죠. 우리에게 없는 뭔가 다른 것을 섞고 혼합하면 더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프로젝트의 가치를 인정받아 우수상, 우정상 수상을 받았습니다만 기존에 갖고 있던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 했습니다.
당시 한 사람당 삼십 여분 진행되는데 받는 돈이 3천원 ~ 5천원이었는데 인터뷰가 길어지면 한 시간정도 소요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대충 시간당 3천원 ~ 5천원을 받는 셈이었죠. 최저 임금에도 미치지 못 하는 금액이라 작가님들 볼 낯이 없었습니다.
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선 글초상화 금액을 올리거나 시간을 줄이거나 두 가지 방법뿐이었습니다. 금액을 올리는 건 애초 기획했던 취지와 맞지 않아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기존에 A4지 한 장 가득 써드리던 초상화를 엽서에 다섯줄만 써드리는 다섯줄 글초상화를 생각해냈습니다. 이때 지금의 글초상화 틀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렇게 글 쓰는 시간을 줄이는 대신 글의 질을 높이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작가들에겐 열정 페이를 요구하게 되었고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어요.
‘KT 문화가 있는 날’, ‘청년오일장 in 부여’행사에 참여하고, 카이스트 입주작가로 있는 동안 카이스트에서도 진행하고, 지인의 도움으로 인사동 ‘추억만들기’ 카페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카페가 편하긴 했어요. 바람이 불어도 비가 내려도 막아줄 지붕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이야기하기 위해 들리는 카페 특성상 ‘글초상화’에 대한 관심이 현저하게 떨어지긴 하더라고요.
하여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거리로 나가기로 했고, 마침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하는 소소마켓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첫날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는데 그때 저희에게 관심을 보인 분이 제인님입니다.
제인님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예술작업을 한다는 예술장돌뱅이(줄여서 예장)팀의 일원이라며 비슷한 활동이라고 함께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같은 취지로 작업을 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에 고향에 온 듯 따듯함을 느꼈죠. 그 뒤 예장 팀과 함께 거리를 떠돌았습니다. 예장팀에 합류하면서 상업적인 마인드를 버렸습니다. 돈을 안 받기로 했습니다. 밀린 숙제를 한 듯 속이 시원했습니다.
그러나 먼 곳까지 가야 하는 예장 팀의 특성상 무거운 타자기를 들고 다니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여 예장 활동을 병행하면서도 정착할 곳을 찾고 싶었습니다. 글초상화가 가장 어울릴 곳이 어딜까 고민을 하다 정독 도서관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마당 넓은 도서관에 탁탁탁 타자기 소리가 들리면 참 좋을 거 같았거든요. 다행히 담당선생님이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고. 그 뒤 정독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