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소파

인터뷰 열여섯

by 홍작

2017년 9월 23일


“북소믈리에가 되고 싶어요.”


열여섯님은 서른 초반의 교육직 공무원입니다. 주로 민원 상담을 하고 있는데 민원을 요청하는 분들이 원하는 모든 걸 들어줄 수 없어 안타깝데요. 그래서 사람 응대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랍니다. 일하면서 친절하다,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하네요.


열여섯님에게 공통의 질문 6가지를 드렸습니다. 좋아하는 숫자를 물으니 33이라고 했어요. 삼, 삼이 아니라 서른셋이라고 했어요. 신기했죠. 좋아하는 숫자를 물으면 두 자리의 숫자를 말씀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거든요.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이 한 자리의 숫자를 말해요. 그러니 물어봐야죠? 왜 33을 좋아하는지? 그냥 좋데요. 적당하고 편안하다고 해요. 글초상화는 개인정보를 밝히지 않지만 이 부분에서는 조금 공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실은 열여섯님의 나이가 33이었습니다. 하여 33살인 것과 연관이 있나요?라고 물었더니. 상관있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더 깊은 이야기는 듣지 못했죠. 아마도 33살의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적당히 편한 나이라고 생각하는 듯했고, 무엇보다 지금! 현재! 에 만족해하는 듯했습니다. 자기 나이에 만족하는 분이라니. 앳된 모습의 열여섯님이 현명해 보였습니다.

좋아하는 색깔은 녹색이래요. 녹색을 떠올리면 나무가 생각이 나는데, 나무를 보면 기분이 좋고 편안하데요. 질문을 두 가지만 드렸는데 벌써 같은 단어를 두 번이나 쓰셨어요. 혹 눈치채셨나요? 네 맞습니다. 편안하다는 말을 많이 쓰셨죠. 편안하다는 말을 염두에 두고 질문을 이어나갔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은 미역국이래요. 어머니가 잘 끓여주셔서 많이 먹었답니다. 생일날이 아니래도 잘 끓여주셨데요. 엄마표 미역국은 음식이 아니라 보약이죠. 한 그릇 먹고 나면 없던 병도 낫는 느낌이었어요.

좋아하는 동물은 강아지래요. 예쁘고, 사랑스럽고, 편안하고 친구 같다고 해요. 찾으셨나요? 열여섯님의 마음 상태를? 맞아요. 편안하다. 4개의 질문을 했는데 벌써 세 번이나 편안하다는 표현을 쓰셨어요. 그 점을 꼭 집어 이야기 해주자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처음 알았다고. 사람들은 자신이 한 말을 닮기 마련입니다. 아마도 열여섯님은 편안한 사람이고, 편안한 걸 좋아하다 보니 상대도 편안하게 해주는 스타일입니다. 하여 열여섯님과 있으면 나도 모르게 편안해지는 거죠. 그날 제가 느낀 것처럼요. 그리고 이 편안함이 열여섯님의 진짜 모습이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질문까지 해봐야죠?

좋아하는 식물은 다육이래요. 실은 토미라는 이름의 다육이를 키우고 있다고 하셔요. 이상하게 전 다육이가 예뻐 사다 놓으면 자꾸 죽더라고요. 진짜 키우기 힘든 게 다육이였어요. 그래서 물었죠. 키우는 노하우가 뭐냐고. 그랬더니 관심을 주는 거래요.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 수분이 모자란 지, 너무 추운 건 아닌지 알 수 있다고. 아. 그러고 보니 다육이를 집에만 모셔놓고, 꽃집 아저씨 말대로 한 달에 한 번 물 준 게 다였네요. 관심과 사랑만이 생명을 살린다는 단순한 진리를 잊고 있었습니다.

10년 후엔 어떤 모습일까요?라고 물었더니 결혼해서 아이 낳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해요. 그러다 조금 더 욕심을 내면 북소믈리에가 되고 싶다고 하셨어요. 사람들에게 맞는 책을 추천해주며 살고 싶데요. 북소믈리에라. 정말 어려운 작업 같아요. 사람들의 마음도 읽어야 하지만 그만큼 책도 많이 읽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북소믈리에가 되고 싶다니 멋져 보였어요. 아마도 이미 내공이 탄탄하니 그런 꿈을 꾸는 게 아닐까 싶네요.


열여섯님의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제가 포인트를 잡은 건 편안함이었어요. 나도 편하고, 상대도 편하게 하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민원상담을 하시는 분이라는 것에 힌트를 얻어 소파를 생각해 냈습니다. 그냥 가죽 소파면 그림이 안 그려지겠죠? 소파 중에서도 녹색 소파. 왜냐하면 인터뷰이가 녹색을 보면 편안함이 느껴진다고 했으니까요. 그렇게 편안함, 녹색, 소파를 중심으로 글초상화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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