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난 게 아니야. 그저 두려울 뿐.

인터뷰 열넷

by 홍작

2017년 9월 23일


“두려움이 크고 겁이 많아요.”


열넷님은 사십 대 중반의 직장인입니다. 본인은 두려움이 크고 겁이 많다고 소개했어요. 하지만 압니다. 진짜 두려움이 크고 겁이 많다면 제 앞에 앉아 인터뷰를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우연히 거리를 걷다 처음 본 작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건 굉장히 큰 용기거든요. 하여 물었습니다. 인터뷰하는 게 괜찮은지. 그랬더니 자신이 굉장히 정적인 사람이었는데, 문화 프로그램 관련 일을 하게 되면서 동적으로 바뀌고 있데요. 그래서 용기 냈다고. 예전엔 가능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조금씩 바뀌는 자신을 보며 깜짝깜짝 놀란데요. 하지만 그 모습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즐겁다고 합니다. 아마도 열넷님은 두 번째 사춘기를 통과하는 중인가 봅니다.


열넷님에게 공통의 질문 6가지를 드렸습니다. 좋아하는 숫자를 물으니 3이라고 대답해 주셨어요. 3을 떠올리면 안정적인 느낌이래요. "안정적이다". 이 말이 조금 낯설게 들렸어요. 왜냐하면 본인을 겁 많고 두려움 크다고 소개했으니까요. 하여 고민했죠. 겁 많고 두려움이 큰 사람의 최종 목표일까? 아니면 현재 열넷님의 진짜 모습일까? 섣불리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하여 열넷님이 구사하는 단어에 더 집중해봅니다.

좋아하는 색깔은 노란색이래요. 따듯해 보여서 좋데요. 유치원의 아이들이 생각나 귀엽다고 했죠. 의외였어요. 노란색은 사람들 눈에 띠는 색인데, 두려움이 크고 겁이 많은 사람이 좋아하다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죠. 갸우뚱하는 제 모습에서 제 생각을 읽었는지, 원래는 회색이나 검은색 같은 무채색이 좋았는데 나이 들면서 원색이 좋아지고 있데요. 그래서 가끔 과감하게 원색을 입기도 하고, 원색을 입을 수 없는 자리에는 원색 소품으로 포인트를 준다고 해요. 아! 그랬구나. 이 분은 두려움이 가득했던 회색빛 어린 시절에서 기쁨과 환희가 가득한 원색의 세계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구나,라고 느꼈어요.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래요. 그것도 매운 떡볶이. 매운 떡볶이를 먹다 보면 세상 근심을 잊을 수 있데요. 그리고 떡볶이를 먹을 때마다 엄마가 생각난데요. 열넷님을 위해 자주 만들어주셨다고 해요. 엄마표 음식을 어찌 안 좋아할 수가 있나요. 엄마표 음식이 정답입니다.

좋아하는 동물은 없데요. 어렸을 때 개에 물려 죽을 뻔했다 기적적으로 살아났데요. 그 후 모든 동물을 무서워한데요. 아. 열넷님에게 말 못 할 트라우마가 있었네요. 열넷님의 두려움이 비로소 이해됩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어렸을 때 겪었다면 치유할 수 없는 큰 상처였을 겁니다. 그러니 잔뜩 겁에 질려 움츠리고 살 수밖에요. 다행인 건 나이가 들면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열넷님의 뒤죽박죽 모순적인 말들이 하나의 줄로 엮이며 이해가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식물도 없데요. 관심은 있지만 선뜻 나서게 되지 않는다고 해요. 신기하죠? 다른 것들에 대해선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셨는데 살아있는 동물과 식물에 대해서는 좋아하지 않는데요. 이것 역시 죽음의 공포와 연관되어 보이지만 그보다는 궁금했습니다.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그랬더니 신발에 관심이 많데요. 편해 보이는 신발, 내 발에 맞는 신발을 좋아한다고. 생뚱맞게 튀어나온 신발이란 말에 전 적잖이 놀랐어요. 이번 인터뷰도 참 어렵다. 초상화 쓰는 게 쉽제 않겠다 싶었죠.

그리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습니다. 10년 후 어떤 모습일까요? 열넷님은 여행을 다니고 싶데요. 스위스를 꼭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특히 알프스 산을 오르고 싶다고 하네요. 순간 자신이 점점 동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 열넷님의 말과 신발에 관심이 많다는 열넷님의 말이 하나로 이어졌어요. 두려움 크던 아이가 비로소 자신에 발에 맞는 신발을 신고 세상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어요.


열넷님의 인터뷰를 읽은 여러분들은 어떤 모습을 그려보았나요? 일단 저는 열넷님은 자신은 두려움이 크고 겁이 많다고 하셨지만. 쓰시는 단어들을 살펴보면 안정적이다, 편해 보이는 것, 나에게 맞는 것 등 주로 따듯한 말들이었어요. 하여 과거의 자신에게서 벗어나 점점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모습으로 가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이고 과감한 등산객의 모습이 그려지네요. 아마도 글초상화를 다시 쓰라고 하면 등산객에 초점을 맞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초상화를 쓰던 당시엔 동전 양면처럼 다른 열넷님의 모습에 포커스를 두었어요. 그때 전 열넷님이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두려움이 크다고 했을 때 당황했었죠.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화를 내는 사람은 어쩌면 ‘두려워하고 있구나’, ‘그 사람도 나처럼 연약한 사람이구나.’라는 걸. 수정된 글을 올릴까 생각하다 원본을 올립니다. 비록 완성도가 떨어져도 그 당시 만들어낸 즉흥성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Inked26_LI.jpg


이전 15화누군가를 위한 마음, 색동 보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