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용어 TMI - 들어가며

말 많은 교사의 말에 대한 말

by 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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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은 교사의 말에 대한 말


중학교 국어에는 ‘언어의 특성’이라는 단원이 있다.

소리와 뜻은 필연적이 아니라 우연히, 제멋대로 만나기에(자의성), 사회적으로 약속을 하여 어떤 말을 정하고(사회성),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새로운 말이 생겨나기도 하고(창조성), 변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것(역사성)이다. 각각의 특성은 고유한 특성이 있어 구분되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렇듯 언어라는 것은 늘 변하는 중이다. 아니 언어만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학교에 근무한 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내 나이의 앞자리도 두 번이나 바뀌어 내년이면 20년 차가 된다.

그사이 나는 결혼도 하고, 남편의 직장을 따라 경기도에서 경상북도로 근무지를 옮겼다. 그리고 정착한 새로운 곳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건강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교사의 애환이야 요즘 대문짝만하게 언론에 나오니, 말하는 것도 입이 아프다. 그러나 교사이기에 느끼는 본질적인 애환도 있다. 그것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의 교감이 시간이 지날수록 어렵다는 것이다.

『허니와 클로버(2005)』라는 만화에서 주인공 타케모토는 졸업을 앞두고 교수님과 대화를 나눈다. 교수는 학생이 졸업하고 떠난 후에도 자신은 여전히 학교에 남아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선생은 학교의 망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교수가 학생들의 삶에 깊이 관여하지만, 결국 학생들은 떠나고 교수는 그 자리에 남는다는 현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학생은 떠나고 교사는 남는다. 그렇지만 교사가 ‘그대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언어가 변하듯 학생도 변하기 때문이다. 변화에 대한 선택은 교사 개인의 자유겠지만, ‘그대로만 남아’ 있다면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이 새로운 생명체들과의 간격이 더욱 벌어진다.

교사의 경력이 더해질수록 이 간격에 대해서도 의연해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존재가 자신과는 소통 불가인 요상하고 괴상한 상대라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나도 한때는 20대였다. 빅뱅의 권지용을 몰랐던 선생님의 일화를 듣고 깔깔 웃던 그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 이야기를 떠올리면 웃기보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럴 수 있지’라고 말이다.


어떤 일이든 20년 가까이 했다면 경력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교사란 직업은 그렇지 않다. 물론 이제 수업에 들어갈 때 떨리지도 않고, 학생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수업할 수도 있다. (교직 처음 2년 동안은 학생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

또, 어떤 학생의 내신 성적을 들으면 ‘아, 이런 대학을 써 볼 수 있겠군’ 하는 견적도 나오기도 하고, 생활기록부나 시험 원안지에서 2칸 띄어쓰기가 되어있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어떤 감각이 정교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나는 유능한 교사다’라는 평가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 오히려 경력이 더해질수록 무언가 잃었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열정’, ‘에너지’, ‘소통과 공감’, ‘고양되어 가는 느낌’ 이런 것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생명체는 태어나 성장하고, 성장을 완료된 이후에는 퇴화가 시작된다. 중년이 된 나는 아무리 좋게 말한다고 해도 성장 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매일 만나야 하는 존재는 이제 막 성장을 시작해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에너지 덩어리들이다.

그리고 이 에너지들에 공감하고, 이들을 조율하고 끌어 나가는 것이 나의 일이다. 그런데 이 일에서 나의 유능함을 느끼기에는, 이 존재들은 매번 너무나 새롭다. 새로움을 넘어서 낯설다.

매해 경력이 쌓이는 것이 아니라 리셋(reset)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 경력이 적은 교사가 학생들과 더욱 잘 교감하고 끌어 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는 학교의 위치와 규모 때문에 저경력 선생님이나 신규 선생님이 많은 편이다. 학교라는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기 위해 고민하고, 좌절하고, 상처받으며, 성장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은 나에게도 자극이 된다. ‘나도 예전에는 그랬었나?’ 혹은 ‘그땐 그랬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지금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 선생님들은 알까? 지금 학생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든지 앞으로는 그 감정보다 더 격렬한 감정을 느끼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보다 학생들과 더 밀착한 순간은 다시 찾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감정적인 교감 외 수업에 관한 능숙함은 경력이 쌓이면서 발전하지 않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물론 학생과 눈도 못 마주치던 신규 교사일 때보다는 지금이 수업이나 학급 운영에서 노련할 것이다.

그러나 유능한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 새로운 교수법의 도입, 더 어려운 내용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 수업을 잘하고 싶다는 열정, 내 수업이 잘되지 않았다는 절망감과 죄책감, 이런 감정들이 옅어진 지금이 꼭 그때보다 더 좋은 수업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수업이라는 것도 일종의 교감과 소통이라는 점에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과정도 점점 퇴화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나 요즘엔 나도 ‘한국어’를 하고 학생들도 ‘한국어’를 하는데도 우리는 서로 소통이 안 된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국어를 가르쳐서 그런지 몰라도 소통 수단의 1순위는 ‘언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말’이라는 것은, 잘 미끄러진다. 내가 하려던 진심을 말로 잘 전달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야기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특히, 나처럼 많은 전제가 필요한 말 습관을 지닌 사람은 무언가를 말하려다 삼천포로 빠지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고 심지어 내가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도 모를 때도 많다.

잘 거르고 정리하고 다듬어도 진심이나 진실은 조그마한 균열이나 오해에도 쉽게 다른 뜻으로 변한다. 그것을 예전에 국문과 교수님이 ‘말이 미끄러진다’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단어 자체가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물론 내가 청소년이던 시절에도 유행하는 신조어가 있었다. 바로 ‘짱’이라는 표현이었다. 이제는 표준대사전에도 실릴 정도로 어엿한 단어로 인정을 받은 이 말의 사전적 뜻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최고(最高)’ 혹은 ‘대장(大將)’을 속되게 이르는 말(=캡틴, ) 이라는 뜻이며, 두 번째는 ‘마음에 들지 않아 북받치는 역정이나 싫증을 내는 짓. 또는 그러한 성미’라는 뜻이다.


결국 무언가가 굉장히 멋있고 마음에 들 때에도 ‘짱’, 마음에 들지 않고 언짢을 때도 ‘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부정과 긍정을 같은 표현으로 나타내는 것은 그 이후로도 청소년들의 표현에 반복해서 나오는 특징이기도 하다.

그게 어떨 때는 ‘헐~’이라는 표현일 때도 있었고, 어떨 때는 ‘대박’이라는 말이기도 했다. 이렇게 감정을 섬세하게 나누지 않고 모든 상황에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습관은 언어 표현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나는 이것을 문제 삼아 학생들의 언어 사용을 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럴 영향력도 없다.

다만 사람들이 쓰는 단어를 조금 더 유심히 보는 고약한 집착이 있는 일개 교사로서 학생들이 나에게 내뱉고 간, 혹은 내뱉고 있는 새로운 말들에 대해 조금의 생각을 덧붙여 보고자 한다.

이것은 ‘말’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한 사람의 순수한 호기심이기도 하며, 점점 멀어져 가는 학생들과 뭐라도 소통하고 싶은 발버둥이기도 하다.


내가 교사를 하는 동안 어떤 표현은 많은 위기를 넘겨 살아남았고, 어떤 말들은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졌다. 좋아도 ‘헐~’, 싫어도 ‘헐~’, 놀라도 ‘헐~’. 그래서 학생들이 뭔 말만 하면 ‘헐~’로 대답해서 대화가 안 된다고 하는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학생을 볼 수가 없다.

그러다가 맛있어도 ‘대박’, 맛없어도 ‘대박’, 잘생겨도 ‘대박’, 못생겨도 ‘대박’이더니 요즘은 그 표현은 시들하고 ‘존맛’, ‘존잘’, ‘존멋’ 같은 표현이 더 트렌드하게 느껴진다.


어떤 말이 한 시대와 특정 집단에서 인정받고 자리 잡기까지는 다양한 요인이 있을 것이다. 사회의 변화, 사용하는 집단의 특성, 즐겨 쓰는 매체 등 다양한 요인들이 주는 영향이 잘 맞아야 어떤 말은 생겨나고, 또 퍼질 것이다.

이 글은 말 많은 한 교사가 학생들의 언어를 관찰하고, 해석해 보며, 그 틈에서 소통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시도다. 학생들이 던진 말 한 조각에 반응하고, 그 말의 생태를 기록해 보려 한다.

물론 이런 말에 대한 해석은 지극히 자의적이며 나의 정의(定義)가 오히려 학생들과의 소통에 엇박자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 안과 밖에 있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학교라는 공간과 요즘 아이들의 생각이나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덧대어 이 글을 쓴다.


2023년 겨울 이 글을 시작하며



볼드 처리한 부분은 각주표시입니다.


각주 1) “이보게 타케모토 군. 선생질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아무리 귀여워해도 상대는 졸업해서 떠나기만 하고. 늘 배웅만 하는 인생인걸. 졸업하고 나면 그다음에 만나는 건 몇 년이나 지난 뒤. 까딱 잘못하면 두 번 다시 만날 일도 없지. 대체 선생이란 건, 영원히 졸업하지 못하는 학교의 망령 같은 존재가 아닐까? 어때,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타케모토 군...”


각주 2) 빅뱅이 한창 뜨던 시절(아, 그 시절이 얼마나 옛날인가.)에 있었던 일이다. 그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갔더니 어떤 학생이 다가오며

“선생님 지용이 오빠 너무 멋있어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아, 근데 선생님이 다른 학년은 잘 몰라서...” 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이다. 그 학생은 벙찐 얼굴로,

“빅뱅의 권지용 몰라요?” 하고 반문했다고 한다.


각주3) ‘캡’이라는 말도 노래가 나올 만큼 유행한 말이었는데, ‘캡’은 사라지고 ‘짱’은 남았다.


긱주 4) 글의 끄트머리에는 글을 완성한 날짜를 표기했다. 해당 글을 쓴 시기와 글의 내용이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또, TMI 라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글을 쓰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수많은 각주를 주렁주렁 단 글이 되었지만, 이 글의 특징이라 이해해 주기 바란다.



또 다른 TMI) 이 글은 2023년부터 틈틈히 써온 원고이며, 2025년 경상북도 교육청 '책 쓰는 교육가족' 사업에 선정되어 북크크에서 자가 출판할 계획이다. 몇 군데 출판사에 송고도 해보았지만, 아직 턱 없이 부족한 글이라 결국 스스로 출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책의 내용을 그대로 브런치에 연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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