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생은 ‘주먹’, 여학생은 ‘꼽주기’
남학생은 ‘주먹’, 여학생은 ‘꼽주기’
앞서 말한 나의 경험에서도 그렇듯이 이 ‘꼽준다’는 행위는 유독 여학생에게 자주 일어난다. 그 이유를 나는 남녀가 교우관계를 맺는 방식과 의미의 차이에서 찾았다.
남학생은 중학교 1, 2학년까지도 그다지 ‘절친’이라는 특정한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아예 그런 개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학생보다 관계의 밀착도가 느슨하다.
남학생은 자신이 하고 싶은 행위가 우선이다. 남학생은 ‘오늘 게임을 할 사람’, ‘오늘 농구할 사람’ 같이 이벤트를 중심으로 관계를 만든다.
그리고 공동 행동을 할 때 남학생들 간에는 보이지 않는 서열이 있다. 예를 들어 ‘축구’를 한다면 축구를 잘하는 학생이 가장 인정받는다. 그룹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갖춘 학생이 리더가 되고, 그 옆에 2등 그룹, 3등 그룹, 하고 싶지만 끼워도 안주는 그룹으로 서열화가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이런 식으로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 노래나 게임이나 연주를 잘하는 학생같이 저마다의 장점으로 서열이 정해진다.
그리고 어떠한 장점도 없는, 그러면서 약점까지 있는(편부, 편모, 다문화, 경계성 지능, 우울증, 오타쿠 같은) 학생들은 당연히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못해 고립되거나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
학교 폭력의 피해 학생이 남학생일 경우 폭력을 당하는 원인이 자신의 부족함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폭력을 응당 받아야 하는 대가라 생각하여 심해지는 폭력을 대항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학생의 학교 폭력 상황은 그룹 간에 꼽을 주는 방식 식이 아니라 약자가 직접적인 폭력을 당하는 상황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여학생의 경우에는 다르다. 여학생은 철저하게 ‘관계’ 위주로 움직인다. ‘쇼핑할 사람’이라는 이벤트로 같이 할 사람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같이 쇼핑도 하고, 노래방도 가고, 인생네컷도 찍고, 도서관도 가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속할 수 있는 ‘관계’라는 공동체가 굉장히 중요하며, 그 관계 안에서 안정감을 얻는다.
그 관계는 주로 학생이 가지고 있는 특성의 동질성에서 출발한다. 학업에 관심이 많거나 외모 꾸미기나 이성에 관심이 많거나, 좋아하는 연예인, 종교, 애니메이션이 같거나 하는 공통점을 통해 관계 맺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통점을 나누면서 유대감이 더욱 깊어진다. (이 공통점은 몇 개의 특성이 교집합을 이루기도 한다) 그리고 관계가 형성되면,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으며 생활의 대부분을 공유한다.
좋은 감정도 나누겠지만 더욱 재미있고 짜릿한 것은 일명 뒷담화 같은 것들이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의 공유가 그 관계를 더 끈끈하게 만들어 준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같은 그룹의 구성원이 싫어하는 학생을 같이 싫어해(욕해) 주기도 하고, 같은 그룹의 구성원이 피해를 당하였을 때 같이 대응하면서 우정이(?) 깊어 진다.
꼽을 주고받는 듯한 행동이 그룹 간에 일어났을 때는 각각 그룹 내의 결속력이 일시적으로 강해져 자신들의 우정이 단단하고 강력한 안정적인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히려 외부의 적으로 인한 단결은 쉽게 깨진다.
타 그룹에 대한 배타성에 민감할수록, 그룹 내에서도 이질감을 쉽게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고 배척하게 된다. 그런데 세상에 나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니 ‘나’라고 하는 존재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다르지 않은가. 그러니 이 동질성이 흔들릴 때나 처음 느낀 매력이 줄어드는 상황이 되었을 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을 때 같이 다양한 변수로 관계가 흔들리게 되면 갈등이 일어난다.
안타깝게도 이런 ‘꼽’을 주고받는 것에 예민한 학생들은 대체로 불안정한 가정 환경에 있다. 심리상태도 불안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갈망하면서도 유지하는 것에 미숙하다.
남학생들이 이미 만들어진 서열에 적응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감내하는 것과는 달리, 여학생들은 자기가 속한 관계에서 자신이 느낀 고까운 점을 뒷담화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한다. 그래서 여학생들에게 유독 ‘꼽을 당했다’라는 신고나 호소가 많은 것이다. 그중에는 꼭 선생님께 이르거나, 다른 그룹에 말을 옮기는 학생이 꼭 있다!
레이철 시먼스(Rachel Simmons)의 『소녀들의 심리학(2011)』(원제: Odd Girl Out)에서는 이런 여학생들의 특징을 ‘대체 공격’이라 불렀다. 대체 공격이란 비신체적이고 은밀한 공격 방식을 말하며, 이는 뒤에서 흉보기, 소문 퍼뜨리기, 따돌리기, 조종하기 같은 관계를 이용한 심리적 공격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학생들이 이런 공격 방식을 택하는 이유를 착한 소녀 이데올로기 때문이라 분석했다. 사회가 소녀들에게 ‘착해야 한다’는 기대를 강요하기 때문에 소녀들이 자신의 분노나 경쟁심을 표현하지 못하고 억압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억압된 감정은 결국 가까운 친구를 대상으로 한 은밀한 공격으로 나타나며, 이는 피해자에게 깊은 심리적 상처를 남기게 된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꼽주기’라는 폭력 방식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반적인 현상인 것이다.
해가 갈수록 학교 폭력 신고 수는 늘어가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정현 국회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학교 폭력 신고접수 건수’에 따르면 학교 폭력 신고센터와 경찰청 112신고로 접수된 학교 폭력 신고 건수는 지난 2020년 3만 3,524건에서 2023년에는 5만 7,788건으로 3년 만에 72% 이상 증가했다. 확신할 수는 없으나 이 중에 상당수는 앞서 말한 꼽주기 같은 상황에 해당(그리고 더해지는 쌍방 신고)하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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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8) 그래서 나는 남학생이 공부를 못 할 경우, 농구나 축구, 안되면 게임이나 밴드부같이 무언가 공동으로 할 수 있는 행위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잘할 경우를 제외하는 이유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잘하는 학생들끼리 또 어울리기 때문이다.
각주 19) 보통 축구를 잘하는 학생은 운동신경이 좋고, 승부욕이 강하며 체격도 좋다. 축구는 상당히 몸싸움이 격렬하므로, 축구를 잘한다는 건 꽤 힘도 세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소위 노는 애들은 축구부에 있다. 모든 축구를 잘하는 아이들이 문제아라고 불리지는 않지만, 소위 문제아라 불리는 아이는 축구를 잘하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