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용어 TMI- 꼽주다 6

정답은 없고 해결만 있는, 불완전한 결말

by 복희

첫 번째 말 : 꼽 주다

- 실체 없는 폭력, 주어 없는 괴롭힘

꼽주다6.png 영화 '우리들'


정답은 없고 해결만 있는, 불완전한 결말


우리는 그룹 안의 친구라는 구성원 사이를 대등하다고 착각하지만, 그 안에서도 갑과 을이 있다.

가해자들은 한 건의 학교 폭력으로 벌을 받을 수는 있지만 다른 관계 안에서도 갑이 되어 다른 착취 대상을 찾는다. 피해자는 억울하게도 다른 관계를 맺을 때도 자신을 보호하고자 을을 자처하며 상처를 받는다. 결국 ‘처벌’은 ‘처벌’일 뿐이고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이런 관계의 고리는 어떻게 해야 끊어질까?


신고와 조사, 판단과 처벌 같은 제도를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적으로 폭력에 대한 민감성을 강화하고, 폭력이 은근히 묵인되거나 ‘친한 사이의 장난’으로 여겨지는 문화도 함께 되짚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학생들이 관계를 맺는 방법을 가장 먼저 배우는 곳, 그리고 앞으로의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을 습득하는 공간은 가정이다. ‘꼽’을 당해서, 친구를 사귀는 것에 미숙해서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회복하는 것을 보면 결국 가정의 따뜻한 보살핌이 있었다.


학생의 아픔에 지나치게 공감하지도 않고, 복수심에 불타지도 않으며, 가해 학생을 적대시하지도 않고, 학생의 부족함을 지적하지도 않으며 학생의 곁을 지키는 가족 구성원의 노력이 있어야 피해 학생은 서서히 자신을 회복한다. (쓰고 보니 너무 어려운 조건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사건에 휘말리는 학생들은 대부분 가정이 해체되었고, 학생들의 보호자가 우울감이 깊거나, 생계가 어려워 학생을 돌볼 수 없거나, 다문화 가정이거나 조손 가정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다문화 가정일 경우 어머니가 한국에 오래 살았어도 한국말을 잘못하고, 특히 쓰거나 읽는 것은 더욱 어려워 자녀의 보호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조손 가정일 경우에도 조부모님이 현재 학교의 분위기나 절차를 이해하지 못해 학생의 피해를 방치한다.

학생을 잘 양육하고, 안정적인 가정이라도 학생이 학교 폭력을 당하면 부모인 자신이 무언가 잘못하여 학생이 이런 일을 당했다고 자책하기 시작한다. 요즘은 학생보다 부모님이 먼저 무너지거나 우울감에 빠져 제대로 학생을 지켜주지 못하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피해 학생을 돕기 위해 학교에서 가장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상담’이다. 하지만 상담이 모든 상황에 유효한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실제로 어떤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피해자인데 왜 나만 상담을 다녀야 해요?” 그 말은 상당히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상담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 받는 것이라는 인식이 남아있다. 학생의 필요가 아닌 일방적인 조치로 하는 상담은 오히려 학생의 반감을 부르기도 한다. 배려라는 이름으로 건넨 조치가, 피해 학생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된 것이다.

실제로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2024) 조사에 따르면, 정신과 진료 이력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전체 응답자의 75.6%가 ‘정신과 방문(F코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한국 사회에 존재한다고 응답했다.

이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어도 실제 상담이나 진료를 받는 비율은 낮은 수준(약 37~39%)에 머무르고 있다. 상담은 회복의 수단이라기보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부르는 절차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지금의 학교는 ‘상담’이라는 정형화된 조치 하나만을 대안처럼 반복한다. 문제는, 학생마다 필요한 도움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어떤 학생은 조용한 교실이 필요하고, 어떤 학생은 부모와의 중재가 필요하다.

그런데 모든 아이에게 같은 해결 방식으로 상담을 권하고, 학교는 그것으로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해 학생에게는 상담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피해 학생은 대체로 가족 관계, 교우관계가 빈약하다. 사회적 관계망의 취약자이다. 그렇기에 피해 학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관계 맺기다.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느낌, 매일 아침 눈을 맞춰주는 사람, 안부를 묻는 목소리. 그 일상이 반복될 때 비로소 학생은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감각을 조금씩 회복할 수 있다.


영화 ‘우리들’을 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주인공인 선의 동생 윤은 늘 얼굴에 상처가 있다. 친구인 연우에게 맞은 것이다. 선은 이를 보고 속상해서 동생인 윤에게 “연우한테 맞으면서 왜 같이 노냐”고 다그친다. 그러자 윤은 대답한다.


“그럼 언제 놀아?

연우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연우가 때리고,

그럼 언제 놀아? 나 놀고 싶은데...”


이 장면은 결국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이 노는 것, 즉 교제라는 것이다. 학생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판단이나, 처벌 그 이상으로 같이 놀 상대를 찾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른들은 학교 폭력 사건을 보면 가해자를 찾고, 이를 처벌하고자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잘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피해자가(어쩌면 가해자조차도) 가장 원하는 것은 나를 인정하는 새로운 관계를 찾거나, 안정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저 대화처럼 청소년기에는 ‘같이 놀’ 사람이 필요하다.


가족 외에 나를 이해해 주는, 나와 공감하는 타인을 찾는 것은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숙제 중 하나이다. 이러한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으며, 평생 그런 대상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대상을 찾았다고 해도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진실하고 안정적인 관계는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몇 번의 실수와 실패를 통해 우리는 관계를 맺는 법도 배우고, 같이 노는 법도 배운다. 그리고 그것이 서툴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도 아니며, 내가 부족한 사람인 것도 아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친구나 우정이라는 관계를 대단히 소중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해서라도 친구를 만들기 위해, 우정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다. 그러다 보니 관계의 중심이 ‘나’가 아니라 상대방으로 옮겨간다.

오히려 관계 속에 있는 것이 자신을 더 지치게 하고, 파괴하는 데도 그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고 늘 외로움에 허덕인다. 역설적이지만 혼자 있을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내가 교직을 그만둘 때까지 ‘학교 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꼽을 주고 꼽을 당하는 것도 사라지지 않을 것을 안다. 이런 일들이 이전 학교에 비해 획기적으로 늘어나 “요즘 아이들이 엄청나게 문제야.” 같은 비관적인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이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던 일들이 ‘민주적 절차’의 도입으로 이제야 문제가 되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민주적 절차가 있다고 해서 이런 일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민주적 절차는 굉장히 번거롭다. 그래서 이런 문제는 정답은 없고 해결만 있다.


당사자들은 늘 만족하지 못하는 이 해결법은 불완전하고 일시적이며 개별적이다. 인간이란 게 다 다르기 때문이다. 되도록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생기면 또 생긴 대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나의 최선이 완전한 해결이 될 것이라고는 감히 장담할 수 없다.


매뉴얼은 있지만 정답은 없다. 그렇기에 이런 일은 늘 어렵다. 그러나, 교사로서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내 한 마디가, 눈빛 하나가 학생에게 닿아 새로운 만남이 되고 따스한 위로가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2023.01.03.-202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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