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 노력합니다.
부록 [학교도 노력합니다.]
한국에서 학교 폭력 문제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학교 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처음 제정된 것은 2004년이다. 이 법은 학교폭력의 예방과 피해자 보호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며, 각 학교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설치하도록 했다.
2012년,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을 계기로 학교 폭력 문제가 전국적인 공론화에 이르면서 법이 대대적으로 개정되었다. 이 시기부터는 가해 학생에 대한 징계가 강화되었고, 일정 수준 이상의 조치가 내려지면 생활기록부에 학폭 이력이 기재되도록 했다.
또, 가해 학생 보호자에게 의무적으로 특별교육을 이수하도록 하는 조항도 새로 도입되었다. 대구에서 일어난 사건이 굉장히 강렬하고 비극적이었기에 당시에는 학교 폭력에 대해 강경한 대응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 뒤로도 몇 차례 개정을 거쳐, 2016년에는 학폭위 조치에 대한 이의신청 제도가 마련되고, 2019년부터는 사안의 경중을 구분하여 대응을 차등화하자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학교 폭력은 단순히 ‘처벌’의 문제를 넘어서, 관계 회복과 치유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담론이 점차 확산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2020년부터는 학폭위 기능이 교육지원청 산하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이관되어 조치를 결정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학폭 조치의 기록 기준도 확대되어 학생부 기재 여부가 교육적으로 더욱 민감한 문제가 되었다. 또, 사이버폭력도 명확히 포함되며, 비대면 따돌림에 대한 대응도 강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4년, 학교 폭력 대응 제도는 한층 더 체계화한다. 가장 큰 변화는 ‘학교 폭력 조사관 제도’의 도입이다. 이제는 교사가 직접 조사하는 대신, 교육청 소속의 전문 조사관이 학폭 사안을 조사하고 학폭위에 보고하는 체계가 마련된 것이다.
또한, ‘신속대응 사안’이라는 개념이 새로 도입되어, 폭행, 감금, 자살시도 유발 등의 중대한 사안은 학교 단계를 거치지 않고 즉시 교육청이 개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들은 학교 폭력 문제를 단순히 교육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 개입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회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제 학교는 단독으로 이 문제를 떠안기보다는, 교육청, 조사관, 전문 상담 인력 등과 협력하여 대응하는 구조로 점차 전환되고 있다.
“아직 애들이니까.”, “어린 애들끼리 싸움이지, 뭐.”라고 취급하던 사회가 학교 폭력을 엄연한 폭력으로 인식하고 관심을 예방과 해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제도와 절차가 정교해지고, 외부의 전문가가 개입하고, 의의 신청을 받아들여 재심의를 하는 것 같은 절차와 제도의 변화가 과연 학교에서 교사가 하는 일을 수월하게 도와주었을까?
아래 그림은 내가 담임교사를 하던 2023년의 학교 폭력 사안 처리 흐름도이다.
이후에 학교 폭력 조사관제도가 도입된 2024년의 학교 폭력 사안 처리 흐름도이다.
사안 흐름도를 자세히 읽지 않아도, 2023년에 비해 2024년이 훨씬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가?
이 사안 흐름도의 변화를 보는 그 누구도
“2023년보다 2024년도 학교의 할 일이 줄었구나”
“교사가 학교 폭력 해결 과정에서 해야 할 일이 줄어서 수업 연구에 더 힘을 쏟을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학교는 더 조심스럽게 말하고, 더 촘촘하게 기록하며, 더 신속하게 판단해야 하는 ‘행정적 긴장 상태’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조사관 제도와 학폭위 외부 심의는 도입됐지만, 조사 이전의 갈등 중재, 학생·학부모 상담, 서류 정리, 기록 관리, 사후 보호 등은 여전히 학교와 교사의 몫이다.
제도가 복잡해질수록 책임은 분산되지 않고, 오히려 감시와 서류 부담만 늘어났다.
교사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교육자가 아니다.
학교는 보호자처럼 학생을 보호해야 하고, 경찰처럼 사안을 조사해야 하고, 검사와 변호사처럼 학생의 처분을 요구하기도 하고, 학생을 보호해야 하기도 하며, 판사처럼 공정한 판단을 해야 한다.
그리고 가해 학생에게 내려진 처벌을 이행해야 하는 역할도 하며, 피해 학생을 돌봐야 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누군가는 ‘학생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교사’라고 말하지만, 그 말 뒤에는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이유로 가장 큰 책임을 떠맡는 구조가 숨어 있다.
정부는 2024년부터 학교 폭력 사안 조사를 ‘전담조사관’이 수행하도록 했지만, 조사 일정 조율과 조사 동석은 여전히 교사의 몫으로 남았다. 이에 대해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제도 도입 취지에 어긋나며, 오히려 교사 업무가 늘었다”라고 지적했다.
전담교사관 제도에 관한 실제 설문조사에서도 교사 78.2%가 업무 증가를 염려했고, 92.5%가 민원 부담 해소에 부정적 응답을 했다. “전담조사관제가 교사를 대신한다더니, 오히려 교사가 조사관을 보조하는 구조가 되었다”는 비판은 현장의 피로감과 불신을 대변한다.(연합뉴스, 2024)
교사는 아이들의 일상을 가르치기 위해 교실에 있지만, 현실은 보고서를 쓰고, 진술을 정리하고, 처벌의 형평성을 계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아이들의 감정 곁에 머물 여유조차 주지 않는 제도 속에서, 교사의 마음도 조금씩 메말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