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라는 이름의 학교 실험
혁신이라는 이름의 학교 실험
독재 시절이 끝나고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대통령을 뽑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였다. 어떠한 폭력도 없이 이루어진 민주주의의 힘이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시위를 할 수 있고, 공권력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는 대북 관련 일만 처리하는 곳이 되었고, 경찰은 이제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민중의 지팡이가 되어 국민의 민원을 처리하는 데 힘쓰고 있다. 최저임금은 만 원이 넘었고, 실업수당까지 주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학교도 그 모습이 변화하였다. 2010년 경기도에서 처음 발표한 ‘학생 인권 조례’는 이제 더 이상 학교가 체벌과 강압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찾겠다는 선언이었다.
‘학생 인권’은 학생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이다. 학생은 차별받지 않을 권리, 학습할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안전할 권리, 개성을 실현할 권리, 휴식할 권리, 정규교과 이외에 교육활동의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자치활동의 권리 등 많은 권리와 자유를 보장받았다.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폭력적인 학교생활을 보낸 학부모님들은 당연히 인권조례가 만든 새로운 학교, 새로운 교육, 이른바, 혁신교육에 지지를 보냈다.
학생들의 복장 단속 같은 것은 개성을 실현할 권리에 위배 되는 것이고, 야간 자율 학습은 정규교과 이외에 교육활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체벌은 당연히 엄격히 금지되었고 휴대전화 수거 역시 사생활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 금지되었다. 교사 위주였던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3주체가 합의를 통해 운영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대한민국의 40대 이상의 사람 중에서는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단체 기합을 받고, 지나치게 복장을 단속받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또 선생님의 기분에 따라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이 있는 지금의 4, 50대들이 원하는 학교의 모습은 바로 학생이 존중받는 학교였다. 그리고 그것의 시작이 학생인권 조례라고 믿었다.
학생인권조례가 공표된 2010년의 여름, 나는 교직 4년 차였고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2학년 담임을 하고 있었다. 학생은 8시까지 등교해서 7교시의 수업을 듣고, 2시간의 보충수업을 들은 후 석식을 먹고 자율학습을 했다.
학생들은 예체능 학원을 가거나, 기타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으면 야간 자율 학습을 빠질 수 없었다. 자유에 대한 목마름으로 탈출을 감행한 학생들은 교무실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탈출에 대한 가혹한 대가를 치렀다.
지각을 하거나, 복장 규정을 위반하거나, 휴대전화를 내지 않으면 당연하게 체벌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인권조례가 공표된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한순간에 변하기 시작했다. 당장 야간 자율(이라고 쓰고 타율이라고 읽는다)학습이 진짜 자율로 바뀌었고 ‘사랑의 매’라고 하는 이 회초리들은 들고 다니는 것조차 위협적이라며 제한을 받았다. 교사는 손에 든 매를 놓아야 했고 교무실 책상의 회초리들이 우수수 버려졌다.
학생들이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소리를 지르며 야간 자율 학습을 하지 않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현실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단단하다고 믿었던 벽이 한순간에 휙-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다. 광복을 맞은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세상이 한순간에 변하는 모습을 보았다.
휴대전화를 수거하지 않고, 복장을 단속하지 않고, 야간 자율학습을 시키지 않는,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는 학교는 교사인 나도 간절히 바라왔던 것이었다. 교사가 되어서 가장 힘든 것은 수업이나 평가가 아니었다. 휴대전화를 내지 않고 복장 규정을 잘 지키지 않고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는 학생과의 실랑이였다.
뛰어난 교사는 수업의 질도 어느 정도 보장되어야 하지만, 먼저 담임 교실이 깨끗하고, 학급에 지각이 없고, 담임 학생의 복장이 단정하며, 야자를 많이 남기는 교사였다. 비약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수업의 질보다는 청결, 복장, 자율학습 참여도가 교사의 평가에 더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면에서 전혀 뛰어난 교사가 아니었던 나는 심각하게 교사가 자신에게 맞는 직업인가 고뇌에 빠져가고 있었다. 그러다 인권조례 공표 후 새로운 학교를 만나게 되면서 교직 생활이 달라졌다. 학생과 실랑이하는 시간은 급격하게 줄었으며, 이른 퇴근으로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게 되었다.
그리고 첫 발령 학교에서 5년(인권조례 공표 전 3.5전, 이후 1.5년)을 채우고, 새롭게 학교를 옮겼다. 그리고 새학교에 처음 출근하던 날, 그 학교가 ‘혁신학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혁신학교’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그러나 첫 출근부터 혁신교육에 대한 연수를 받으며 주입식 혁신이 시작되었다.
내가 근무한 학교는 ‘혁신학교’ 중에서도 특이한 학교였다. 일반적인 혁신학교는 교사가 원해서 시작됐지만, 이 학교는 지어질 때부터 지정된, 위에서부터 내려온 혁신학교였다. 그것부터가 사실 혁신학교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니 같이 발령받은 선생님들은 모두 “혁신학교라서 온 것이 아니라, 와보니 혁신학교였더라”라고 말했다.
혁신학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 같아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아래와 같다.
혁신학교란 당시 경기도 교육감이었던 김상곤 교육감의 핵심 공략이다. 혁신 학교는 민주적 학교운영 체제를 기반으로 윤리적 생활공동체와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형성하고, 창의적 교육과정을 운영하여 학생들이 삶의 역량을 기르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교육감이 지정·운영하는 자율학교를 말한다. 여기서의 키워드는 ‘민주적 학교 운영’과 ‘전문적 학습공동체’이다.
혁신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는 의무적으로 배움의 공동체 ‘기초’와 ‘심화’ 연수를 수강해야 하고 연구 수업이나 관련된 각종 연수에 참가해야 했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교과서를 펼쳐보며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다른 과목과 연계, 통합하여 진행할 과목을 의무적으로 정하기도 했다.
이전의 학교는 학생들의 생활 습관에 깊숙이 관여했다. 지각하지 않고, 지루함을 견디며 수동적인 수업을 듣고, 복장이 단정하며,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도록 학생을 길들였다.
그러나 혁신학교는 학생들의 생활 습관 형성에서 벗어나 협동적인 배움을 만들어 가는 수업, 수업 전문가인 교사 안에서 학생 모두가 스스로 성장하는 수업으로 그 방향을 바꾸려 했다.
그렇다면 그 ‘혁신 교육’은 성공했을까?
볼드 처리한 부분은 각주표시입니다.
각주 49) 그 이후, 2014년부터 시작된 9시 등교로 인해 ‘아침이 있는 삶’까지 누리게 된다.
각주 50) 혁신학교(革新學校)는 시행지역별로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데, 서울 · 경기 · 전남은 혁신학교, 인천은 행복배움학교, 부산은 다행복학교, 충남은 행복공감학교, 경북은 ‘경북미래학교’라고 부른다.
각주 51) 먼저, ‘민주적 학교 운영’을 위해서는 두 가지를 개선하고자 했다. 첫 번째는 학교 안의 권위적, 복종적 관계(관리자와 교사, 학생과 교사와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바꾸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학생 자치를 통한 학교 운영’이었다.
당시만 해도 관리자의 파워가 상당해서 교사의 복장을 지적하는 관리자가 있는 가(예를 들면, 청바지를 입지 마라 등) 하면, 방학 육아 때문에 방학 보충 수업을 하지 못한다는 여선생님에게 교장선생님이 시부모님께 전화해서 “보충수업을 할 수 있게 육아를 도와주셔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학교는 교장선생님의 작은 왕국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관리자 평가라는 것이 생기고, 이 결과가 관리자 승진 등에 실질적인 불이익으로 반영되면서 이런 권위적인 행동은 점차 축소되었다.
예전에는 교사의 지도(체벌)로 복장이나, 생활 습관을 지도하였다면 그것을 대체할 것으로 학생 자치가 대두되었다. 교칙은 학교 운영의 3주체 교사, 학부모, 학생 간의 공개적인 대토론회로 정해졌고, 이것을 만드는 것도, 지키는 것도, 없애는 것에도 학생 의견이 전면에 반영되었다.
이전에는 학생부(지금의 생활안전부)에 한 업무였던 학생자치회 업무가 하나의 부서가 될 만큼 영향력이 커졌다. 학생들은 교사와 관리자에게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학생의 의견이 반영되는 폭도 커졌다.
수업 방식에서는 구성주의 교육 철학을 기반으로 학생이 능동적으로 지식을 ‘구성’하도록 한다. 교사는 지식을 주입하는 존재가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사고하고 탐색하도록 도와주는 학습의 촉진자다.
이전의 수업이 ‘프로그램형’으로 계단을 한 단 한 단 오르듯이 ‘목표-달성-평가’의 활동 단위에 의해 단원이 조직되어 있다면, 혁신 교육에서는 ‘프로젝트형’ 수업을 디자인한다. 이는 ‘주제-탐구-표현’ 단원에 의해 조직된 교육과정이며 등산과 같이 배움의 길이 다양하며 배움의 경험 그 자체의 발전성을 추구한다.
그리고 이런 프로젝트 수업에서 학생들은 협동적 학습으로 프로젝트를 해결한다.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의존성’과 스스로 아이디어를 아낌없이 제공하는 서로 배우는 ‘호혜적 배움(reciprocal learning)’이 성립된다.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도모해가면서 사고하는 상호작용적인 배움이 바로 ‘배움의 공동체’의 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