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잘 나가던 시기, 매가 약이다
학교가 잘 나가던 시기, 매가 약이다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의 교육, 나와 같은 40대나 그 이상의 나이를 가진 사람들이 받은 교육은 강화보다는 벌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당시 사회·경제적 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
6.25 전쟁이 끝난 대한민국은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변모를 꾀하고 있었다. 그래서 3R이상의 학습 능력을 갖춘 공장노동자들이 많이 필요했다. 전쟁 종료로 인구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이 시기를 베이이붐 세대라 한다.
이러한 시대적 사명으로 베이비붐 세대 이후의 학생들은 농업 중심의 경제구조와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친 이전 세대보다 더 길고 많은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학교의 공급은 학생의 수를 따라갈 수 없었고 적은 수의 교사가 다수의 학생을 지도했다. 지금도 학생 수에 비해 교사 수가 적다고는 하지만 그 시절은 지금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한 명의 교사가 많은 수의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한 것이 ‘체벌’이었다.
‘체벌’은 교사의 권위를 상징했으며 정당한 교육 행위로서 인정을 받았다. 학생이 교사에게 맞고 집에 들어오면 당시의 부모님은 “니가 잘 못했으니까 맞았겠지.”라고 했고, 그게 일반적인 분위기였다. 만약 부모님께 선생님에게 혼난 것을 들키게 되면 더 혼이 났기 때문에,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체벌을 당해도 말하지 않았다.
변명일 수도 있으나 당시는 학교뿐 아니라 가정과 군대, 사회에서도 체벌(이라고 쓰고 폭력이라고 읽는다)이 만연했다. 정의보다는 경제 발전이, 분배보다 ‘성장’이 중요한 시대였고, 개인보다는 집단이 중요했다. 정치적으로도 민주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단시간 안에 목표(경제적 성장)를 이루는 것이 중요했고, 그러기 위해서 개인을 갈아 넣었다. 집단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희생한 개인이 인정받는 시대였고, 가정을 위해, 조직을 위해, 나라를 위해 개인은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교육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수업은 철저하게 효율적인 엘리트 위주의 강의식 수업으로 이루어졌고, 교육의 성과는 졸업이나 상위학교 진급이었다. 전인적 교육은 당연히 뒷전이었다. 교사는 학생을 개별적으로 살피기보다는 강압적인 분위기로 학습을 진행했으며 뒤떨어지는 학생은 부당한 대우(체벌)을 당했다.
이런 환경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지금의 학부모 세대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체벌’에 대해 당연히 큰 반감을 느낀다. 현재의 기성세대는 ‘체벌’뿐 만이 아니라, ‘학교’라는 제도, ‘교사’라고 하는 지위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그것은 이전에 이루어졌던 효율적인 교육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상처받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전쟁은 분단을 낳았고, 식민 지배와 전쟁으로 대한민국은 초토화되었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수요도 상당했다. 정부 관료, 전문직, 회사원 등 각종 직업이 필요했고, 그러한 인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장하는 수단으로 학력이 사용되었다.
‘졸업장’만 가지게 되면 그에 걸맞은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합법적이고 정당한 신분 상승이었다. 이른바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였고, 저축을 통한 내집마련이 가능하던 낭만(?)의 시절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IMF가 오면서 이러한 낭만의 시절은 막을 내리게 된다. 취업문은 좁아져 졸업장을 가지고도 취업이 어려워졌으며, 어렵게 취업한 직장도 나의 노후를 보장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신분까지는 아니지만 이미 이전 세대가 쌓아놓은 부(富)로 보이지 않는 계급이 생긴 것도 학교가 가진 영향력(즉, 졸업장의 영향력)을 저하하는 데 일조했다.
이 와중에 사회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민주화’가 일어났다. 권위나 서열에서 벗어나 개인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고, 학교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학생은 인권을 가진 주체로 존중받았고, 학생 인권 보호를 위해 체벌은 당연히 사라졌다.
체벌을 빼앗긴(?) 학교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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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45) 모든 교과 학습의 기본인 읽기(Reading), 쓰기(wRiting), 셈하기(aRithmetic)를 말한다.
각주 46) 대한민국의 1차 베이비붐 시기는 1955년에서 1963년으로 6·25 전쟁(1950~1953) 직후이다. 전쟁 이후 국가 재건과 경제 성장기를 맞으며 출산율이 급증했으며 한 해 출생아 수가 100만 명을 넘었다.
각주 47) 1985년의 학급 당 학생 수는 초등학교 – 44.7명, 중학교 – 61.7명, 고등학교 – 56.9명이었다.
「행복한 교육」. (2020년 4월). 대한민국 교실 속 학생 수는?
각주 48) 전인 교육 (全人敎育)이란 학술 중심 교육 과는 반대로, 지식 전달에 치우친 교육에서 탈피하여, 체(體), 덕(德), 지(知)의 균형 잡힌 발달을 지향하는 교육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