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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 Oct 24. 2021

비가 온 후에 숲에서 만나

숲의 버섯 관찰일지

간밤에 가을비가 촉촉이 내렸다. 숲도 오랜만에 물을 잔뜩 먹어서 한층 생기가 돈다.. 솔잎이 폭신폭신 쿠션감이 아주 좋다. 언제는 안 그랬겠냐 마는 오늘 아주 걸을 맛이 난다! 그윽해진 솔 향기로 코도 즐겁다.

 주말이 지나고 출근하면 숲의 얼굴들을 좀 더 세심하게 살피게 된다. 마치 하나하나 눈을 맞추듯 얼굴을 맞대고 지난 며칠 사이의 안부를 묻는다.

 안녕, 주말 잘 보냈어? 어째 그사이에 더 큰 것 같네? 오!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인다!

 물론 입 밖으로 내뱉기에는 부끄러우니까, 조용히 속으로 마음을 전한다.


 하루 이틀 사이에 뭐 달라질 게 있느냐고 묻겠지만, 다르다. 확실히 다르다. 나도 처음엔 이렇게까지 느끼리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다. 자연 속 계절의 변화는 밀접하게 느낄 수 있겠지만 하루하루가 다를 거로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하루하루가 다르다. 하루 사이에 숲이 변한다. 어제 맞은 바람과 오늘 맞은 바람의 온도와 세기가 다르고, 어제 푸릇하고 동그랗던 이파리가 오늘 끝이 메말라 말려있다. 또 어제 못 보던 풀과 잎들이 오늘 갑자기 툭 튀어나오기도 하고, 어제까지 활짝 피어있던 꽃이 져버리기도 한다. 정말 하룻밤 사이에.


 그중에서도 나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던 건 버섯.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버섯들이 난데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가만 보니 비가 오는 날 이 녀석들이 파티를 벌이는 것 같다. 꼭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작은 버섯 송이들이 숲을 휘젓고 있거나, 마치 숲의 주인인 양 큼지막한 갓을 촥 펼치고 늠름하게 서 있다.

 덕분에 비가 오는 날이면 다음날 버섯 구경할 생각에 출근이 기다려진다. 어제 비가 온 터라 아침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오늘은 어떤 녀석들을 만날 수 있을까? 지난밤 누가 누가 파티를 벌였을까? 아니나 다를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니 아주 제대로 한판 벌인 듯하다. 마른 솔잎과 나뭇가지 사이로 새끼손가락만 한 작은 버섯들이 엄청나게 올라와 있다. 밝은 갈색의 작은 갓을 펼치고 무리 지어 있는 모습이 느타리버섯과 닮았다.


 보통 버섯을 접할 때 마트나 시장에서 채소들과 함께 접하기에 버섯이 식물인 줄 착각할 수 있지만, 버섯은 식물이 아니다. 버섯은 균류로 분류된다. 균류 중에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이나 곰팡이가 있는데, 버섯은 우리 눈에 보일 정도의 구조와 형태를 갖춘 곰팡이에 속한다. 버섯은 식물과 달리 광합성을 하지 않아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마른 낙엽이나 나무 기둥과 껍질, 밑동 혹은 동물의 사체 등 죽어가는 생물로부터 영양분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생물들의 사체는 잘게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기에 생태계의 순환구조에서 버섯이 맡는 분해자의 역할은 무척 중요하다.


 균류이기에 습하고 그늘진 곳을 좋아해서 흐리고 비 오는 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가 보다. 나뭇잎 아래, 굵직한 밑동과 뿌리 사이에서 잠자코 있다가 공기가 촉촉해지면 기지개를 켜듯 땅 위로 쑥 올라오는 것이다.

 언제 녹아내릴지 몰라 쭈그려 앉아서 관찰하고 사진을 찍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내일쯤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파티를 정리하고 후다닥 떠나버릴 테니까. 이런 서프라이즈 같은 출연에 옛날엔 버섯을 숲의 요정이라고 불렀다 한다. 찰떡같이 어울린다. 숲의 요정들!


 또 다른 숲의 요정을 만나러 떠난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아주 그냥 풀숲 사이를 샅샅이 훑어본다. 한참을 살펴보는데 소나무 밑동 아래 뿌리 사이에서 나타난 초코송이들! 동글동글한 갓의 모양도, 초콜릿을 묻혀놓은 것 같은 색깔도 그 맛난 과자와 똑 닮았다. 그런데 세 송이가 양팔 간격으로 띄엄띄엄 서 있다. 옆 밑동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무리를 보니 원래 이렇게 띄엄띄엄 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세 녀석만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다. 혹시 너희도 하는 거니? 사회적 거리 두기. 인간과 자연은 연결되어 있으니까, 함께 살아가는 공생관계니까 인간의 이슈가 자연과 무관할 리 없겠지.

 괜히 싱숭생숭해지는 마음을 애써 털어버리고 돌아선다. 해가 뉘엿거리는 걸 보니 퇴근할 시간. 다시 힘차게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모두에게 오늘의 안녕을 고하며 내일 보자고 쓰다듬듯 바라본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려고 숲을 나서는데 모퉁이에 빛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뭐야, 누가 빵 먹다가 여기에 버렸어? 다가가서 만져보니 웬걸? 빵이 아니라 버섯이다. 정말이지 꼭 모닝빵처럼 생겼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운데, 한편으로는 걱정스럽다. 저렇게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나면 곧 녹아내릴 거라는 걸 아니까. 이 녀석은 다른 버섯과 달리 초록 잎들처럼 해 바라기인 걸까? 그렇다면 너무나 애틋한 사랑이다. 빛에 자신이 녹아내릴 걸 알면서도 열렬히 마주하고 있으니까. 마치 왕자님과 설레는 사랑을 하고 물거품으로 사라진 인어공주처럼. 아련한 순간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하루, 또 그 하루 속에서도 매 순간이 새로운 숲이다. 같은 길을 이렇게 오래, 자주 걸어본 적은 처음이라 매번 다르게 떠오르는 풍경과 생각이 신선하다. 마음가짐에 따라 다가오는 순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몸소 체험하고 있다. 오늘 만난 버섯 요정들을 내일이면 볼 수 없겠지만 우리에겐 다음 약속이 있으니까 괜찮다. 내일은 또 다른 무언가가 채워줄 테니, 버섯 요정들! 다음 비가 온 후에 숲에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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