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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 Dec 26. 2021

텃세 부리는 마음

무엇이든 적당히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

 갯골생태공원이 염전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창고 전시관을 둘러보시고 이곳이 염전이었느냐며 놀라시는 분들이 훨씬 많다. 갯골생태공원 한쪽에 염전 체험장이 있는데도 어쩌다 여기에 염전이 생겼는지, 두 동밖에 남지 않은 소금창고를 왜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는지 관심을 두는 사람은 흔치 않다. 소박한 소금창고 전시관이지만 천천히 둘러보면 짧은 시간에 소래 염전과 소금창고에 얽힌 역사를 알 수 있다. 


 물론 나도 소금창고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다. 며칠 안 되었지만 소금창고에서 근무하면서 전시해설사 선생님들이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해드리는 해설을 매일 수시로 들으며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역시 습득과 암기에는 반복 학습이 최고다.



 지금의 갯골생태공원은 1996년까지 소래 염전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수탈을 목적으로 조성된 대규모 염전이다. 염전에서 얻는 소금은 바닷물과 해와 바람을 이용해 천일염이라고 한다. 이전까지 우리가 소금을 생산하는 방법은 가마솥에 바닷물을 끓여서 얻는 자염 방식이었다. 하지만 자염은 소금을 대규모로 생산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일제가 이 땅에 염전을 지어 천일염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갯골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강수량이 적어 소금을 생산하는데 최적의 입지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생산된 소금은 전량 일본으로 수탈되었다. 


 농사를 지으면 농부, 어업에 종사하면 어부, 염전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염부! 염전 일이 고되 염부로 일하면 성한 곳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뜨거운 햇빛 아래서 짠 기운이 가득한 소금물을 다뤄야 하고, 간수가 완전히 빠지지 않아 무거운 소금을 나무 지게에 지고 소금창고로 옮겨야 했다. 그래도 꼬박꼬박 월급이 나와서 식구들 먹여 살릴 생각에 힘들어도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소래 염전은 소금 수입의 자유화와 인건비 상승으로 1996년에 폐염되었다. 이후 염전의 일부 땅을 관할 시에서 되찾아 시민을 위한 갯골생태공원으로 만들었다. 중간에 소래 염전이 민영화되어 사유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갯골은 현재 습지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염전 일부를 보존하여 현재도 소금을 생산하고 있지만, 체험 및 학습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소금창고 전시관은 과거 소금을 보관하던 창고를 보수 및 복원하여 소래 염전의 역사를 알리는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소금창고 전시관은 염부님들의 기증 물품과 갯골을 아끼는 분들의 손길로 만들어진 소박한 공간이다. 하지만 소금창고가 품고 있는 시간과 역사는 절대 소박하지 않다. 그렇기에 여유가 된다면 전시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3분 내외의 짧은 영상을 시청하거나, 해설사 선생님의 해설을 꼭 들어보시기를 권유 드린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니까. 우리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고, 소래 염전과 갯골의 소중한 가치를 품고 있는 공간이다. 소금창고 문가에서 휘리릭 둘러보시고는 ‘에이 볼 거 없네.’하고 돌아가시는 분들을 보면 속상하다.



소금창고에서 전시 해설을 해주시는 선생님들께서는 오랜 기간 시흥에 사신 분들이다. 고장을 아끼는 마음이 남다르신 분들이다. 선생님마다 생업이 따로 있으신데 갯골에 대한 애정으로 시간을 내어 해설과 보존 활동을 하고 계신다. 창고 내에 관람객분들이 안 계시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재미있게 듣고 있다. 선생님들께서도 스케줄 근무를 하셔서 매일 다른 분이 오시는데 다들 에너지가 넘치셔서 오히려 내가 기운을 얻는다.


 점점 변해가는 갯골의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이 갯골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건 좋지만, 그와 동시에 잃어가는 것들도 있어 마음이 참 그렇다고 하셨다. 개발과 보존의 적절한 지점을 찾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시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셨다.


 선생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했다.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변해가는 모습을 마주하며 입이 댓 발 나오곤 하니까. 마음에 안 들어! 그러면서도 동네 근처에 예쁜 카페가 생기면 대기 줄을 서가면서 기어이 다녀오곤 한다. 거참 이상한 마음이다. 이곳만은 변하지 않고 오래도록 남아주길 바라면서도 변화를 찾아다니고 새로운 걸 누리고 싶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무엇이든 적당히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어느 한 쪽도 아쉽지 않은 ‘적당’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싶기도 하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까. 누구에겐 차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부족하다. 개발을 말하는 이들도, 보존을 외치는 이들도 모두 갯골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일 거다.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는 건 더 나은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서로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분명 우리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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