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에서 지낼 기대도 잠시, 앞서 가장 큰 걱정거리는 '일'이었다. 프리랜서 생활도 이제 갓 1년이 넘었는데 타지에서 리모트 워크라니.. 생각만 해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첩첩산중 이었다. 가장 먼저 클라이언트에게 부재를 알리고 안심시켜 드리는 것이 첫 번째 임무라 판단했다.
사실상 한국에 있어도 재택으로 일을 진행하기에 나의 부재가 크게 와 닿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어쩐지 함께 일하는 프리랜서가 한국에 없다는 것은 불안감을 야기하기에 충분하리라.
떠나기 한 달하고 보름 정도 남았을 시점, 한 분 한 분 클라이언트를 찾아뵙고 업무엔 차질이 없을 거라 약속을 드렸다. 감사히도 우선 믿어주셨고 잘 다녀오라는 응원도 받았다. 다행히 눈치로 알아 채린 우선의 뉘앙스는 '기회'였다. 이 기회를 놓치면 꿈꿔왔던 디지털 노마드는 무산이다. 덕분에 건강한 긴장감을 챙긴 후 부다페스트로 향했다.
하루 두 번, 나누어 자기
1 타임 취침: 09:00 pm ~ 01:00 am
1 타임 업무: 01:00 am ~ 02:30 am
2 타임 취침: 02:30 am ~ 08:00 am
2 타임 업무: 08:30 am ~ 03:00 pm
자유시간: 03:00 pm ~ 09:00 pm
도착 후 2주간은 온 신경이 '빠른 커뮤니케이션'에 있었다. 시차 때문에 조금이라도 답변을 늦게 하면 괜히 뱉어놓은 말이 있어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안정적인 일상을 위해 찾아낸 루틴은 하루에 두 번 잠을 자는 것이었는데, 새벽 1시에 일어나는 게 조금 힘든 것 빼고는 제법 괜찮은 루틴이었다.
1타임_업무
새벽 업무 시간은 한국 시간으로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다. 때문에 보통 금주 진행 사항부터 오늘 중 진행되어야 할 콘텐츠 소재 제작 및 광고 세팅과 같은 주요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졌다. 단 잠 중간에 일어나는 것은 언제나 힘들었지만, 은은한 조명 아래 마트에서 사 온 유제품 또는 커피 한 잔 쪼르륵 마시면 그렇게 안락할 수가 없다. 가장 일이 잘되는 시간이었다.
2타임_업무
보통 8시에서 8시 30분 사이에 기상해, 빵이나 간단히 먹을 아침거리를 들고 책상 앞에 앉는다. 자는 동안 진행된 사항이나 메일 & 메시지를 확인한 후 본격적으로 새벽에 커뮤니케이션했던 업무를 진행한다. 광고 성과를 체크하고, 글을 발행하거나 소재 기획과 디자인을 하기도 하는 그런 업무들. 보통 점심시간 제외하고 4-5시간 정도 일 한다.
오후 3시 30분이면 노을이 지기 시작해 4시면 깜깜한 밤이 되는 부다페스트.
밤이 긴 부다페스트에서 자유시간은 노을을 보는 것과 야경 구경 외엔 즐길거리가 많지 않다. 적어도 여행자도 노동자도 아닌 나에겐 그랬다. 어느 날은 노을을 따라 한 없이 걷기도 하고, 부다 성에 올라 매일 봐도 진귀한 야경을 바라봤다. 거진 매일 했던 일은 '장보기'였는데 생활비를 아끼려 대부분 집에서 음식을 손수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오후에 일을 마치고, 노을을 핑계로 외출 해 편집숍 구경도 하고 장을 보고 귀가하는 일상.
부다페스트에서 지낸 두 달. 사실상 한국과 별반 다를 것 없던 일상이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 삼시세끼 챙겨 먹으며 일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루틴. 하지만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그렇게 열성적으로 노을을 쫓아다녔을까? 귀찮다며 하루 한 끼 제대로 먹기도 어려웠고, 바쁘거나 피곤하다는 핑계로 업무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하기도 했다.
여느 때보다 일상에 충실했던 나날들. 단조로웠지만 부대낌 없는 일상. 그렇게 나는 또 다음 도시를 준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