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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델라 Jun 27. 2019

청소하는 손녀, 밥 달라고 보채는 할머니

    원룸을 정리하고 할머니 집에 이사를 오니 삼촌들은 붙잡을 새라 가정으로 돌아갔다. 삼촌들이 제 자리로 돌아가고서 집을 살펴보니 엉망이었다.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기름때가 잔뜩 낀 주방과 옷가지들이 쑤셔 넣어진 장롱, 수납장 안 엎질러진 소금과 같은 각종 가루들, 냉장고 반찬들의 곰팡이, 화장실의 물때들. 누군가 생활하면서 한 번쯤 정리하고 닦았으면 일어나지 않을 문제였다.      


    3명의 삼촌들은 한 달씩 돌아가며 당번을 정했고 할머니를 돌봐왔다. 가정에 자녀들이 있는 집이라 외숙모들은 원래의 가정을 보살피고 외삼촌들은 할머니집에 한달간 생활을 하며 할머니를 보살폈다. 원래의 직장이 서울인 삼촌은 출퇴근을 합쳐 2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다. 출퇴근 시간이 길었기에, 퇴근 후 저녁 끼니를 대충 때우고 밤에 같이 잠만 자는 생활이 이어졌던 것 같다. 야근을 하는 날이면 계속해서 전화로 보채는 할머니 덕에 마음이 조급했을 것이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져 잠을 청했을 것이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집은 엉망이 되었다.  


    엉망이 되어 버린 집은 청소가 시급했다. 닥치는 대로 정리하고 치우다 보니 한 달이 지나갔다. 약 2년간 관리 안 된 집의 청소는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하나하나 꺼내 정리하고 닦았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냉장고 장아찌의 곰팡이였다. 잘 상하지 않는 식품의 곰팡이라니. 할 말을 잃었다.      



    그 와중에 할머니는 집 안을 뒤집어 놓는다고 투덜대기도 하고 윽박을 지르기도 했다. 치매 판정을 받고 근 10년간 요리를 하지 않으신 할머니가 ‘너랑 나랑 둘이 살면 밥은 누가 하냐?’며 성질을 부렸다. 무엇에 꽂히면 3분마다 한 번씩 열댓 번은 대답을 해야 해서 실없는 웃음이 났다. 시간을 잘라 놓은 테이프를 빙빙 되감는 것 같았다. 걸레질하고 있는 내 옆에서 서성이며 계속해서 물었다.      


   할머니 :  밥은 누가 해? 나 밥하기 싫어.

   나 :  내가 밥하지.

   나 :  밥은 내가 해요.

   나 :  밥걱정은 하지 마세요.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을 반복하다 보니 미칠 것만 같아, 같은 대답을 다른 말로 표현했다. 치매 할머니를 모신다는 게 힘든 줄은 알았지만 이런 사소한 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앞으로 어떻게 생활할까 싶어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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